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혼란 그리고 기회, 커브 구간을 파고든 사교육
사교육의 성장 배경엔 무엇이 있었을까?
사교육을 키운 건, 바로 '공교육'이었다.
사교육은 어느 날 저절로 거대한 산업이 된 것이 아니다.
그 급성장은 공교육의 불안정성, 잦은 제도 변경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되었다.
쇼트트랙 경기를 떠올려 보자.
직선 구간에서는 선수들의 속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커브 구간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커브 구간에서 누가 더 빠르게, 더 민첩하게 치고 나오는지가 그 경기의 승패를 결정하게 된다.
기존 질서가 갑작스러운 변화나 혁신으로 깨질 때, 그 틈을 파고들어 새로운 시장이 여는 이는
반드시 나오게 되는 법이다.
우리의 교육상황은 어떠했는가? 공교육이 익숙한 직선구간을 느긋하게 돌며 낯선 곡선구간에서
우물쭈물 하는 동안, 사교육은 민첩하게 그 곡선을 파고들었다.
그 ‘곡선’은 다름 아닌 끊임없이 바뀌는 교육제도였다.
학력고사 폐지, 수능 체제 개편, 논술 폐지나 신설, 절대·상대평가의 반복, 학생부 전형,
입학사정관제, 내신 반영 방식 변화, 수시·정시 비율 조정, 고교학점제 도입 등등
매번 교육제도가 바뀔 때마다, 공교육은 ‘뒤늦은 적응’을 했고, 사교육은 ‘선제적 대응’으로
대책을 상품화하며 시장을 선점해왔다. 교육의 주도권이 사교육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웠고, 학부모는 불안했고, 교사들은 준비되지 못했고, 학교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두의 불안은 증폭되었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학교만을 믿어선 안돼'
라는 걱정은 사교육으로 이어졌다.
제도의 불안정성은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최고의 연료였다.
사교육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한다.
공교육은 개별성과 유연성보다 형평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특성 상 빠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공교육은 전체 학생, 교사, 학교체계의 준비 상황을 감안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교육은 다르다. 제도 변화 시 즉각 이윤 추구를 위해 변화에 올인할 수 있다.
사교육은 ‘불안’을 파는 산업이었다.
‘지금 이거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져요’ 라는 공포 마케팅이 핵심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교육은 이미 실증(實證)의 단계로 진화했다. 끊어낼 수 없는 존재이다.
어느 학원,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성적이 몇 점 오르고, 어느 대학에 합격하는지가
데이터로 증명된다. 불안에서 출발한 시장이 신뢰 기반 산업으로 굳어졌다.
사교육은 그 나름의 기능이 있고, 그것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담당할 영역이 엄연히 구분된 제도 밖의 보조 교육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둑을 무너뜨려선 안된다.
공교육은 사회 시스템과 연결된 공공영역이고, 사교육은 이윤 추구 산업이다.
경계가 무너지면 교육은 공공성을 잃고 상품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도의 안정성과 본질 회복’
공교육이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제도 변경을 최소화해야 한다.
만일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반드시 공교육 현장의 이해와 준비 이후에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번히 사교육에 당할 수 밖에 없다.
수학능력시험의 본질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름에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다.
대학에서 학문을 이어갈 수 있는 기본 학습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즉, 수능은 원래 기초 학업 성취 수준을 확인하는 자격시험이다. 누구나 대학 교육을 받을
최소한의 학업 능력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우리가 이 제도도입 시 모방했던 미국의 수학능력시험을 살펴보자.
미국의 SAT와 ACT는 고등교육에 필요한 읽기·수리·추론 능력을 측정해 대학이 학생의 준비 정도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두 시험 모두 연중 여러 차례 시행되고 재응시가 자유롭다.
무엇보다 점수만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 않고, 고교 성적·추천서·비교과 활동과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즉, 시험은 준비가 되었는가를 확인하는 도구일 뿐,
모든 응시자를 0.01점 단위로 줄 세우는 장치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수능은 더이상 '자격'을 묻지 않는다.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는지, 누가 더 많은 문제를 더 빨리 맞히는지,
끝없는 순위 결정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교육은 본래의 목표를 잃었다.
학생도, 학교도, 사교육도 점수 경쟁이라는 좁은 골목에 갇혀 버렸다.
지금의 수능은 ‘출발선’이 아니라 ‘도착점’
수능은 국가고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소수만 통과할 수 있는
선발 레이스다. 지금의 수능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라 기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 구조에서 공교육은 경쟁 구조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학교 수업은 수능 문제를 따라가고, 내신 문제도 필연적으로 수능형으로 변형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공교육은 본래의 목표를 잃고, 수업은 파편화되어 평가가 목적이 되고,
교육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수학능력시험’의 민낯이다.
현행 제도운영의 문제점
현행 수능은 단 한 번, 연 1회 시행된다.
수험생의 컨디션·심리 상태·학습 진행 상황이 제각각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 하루의
결과로 대학 수학 능력을 검증한다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시험 당일 건강 이상, 가족사, 사고 등 예기치 못한 변수에도 곧바로 결과에 직결되며,
특정 시점 학습이 늦은 학생은 안정적인 도전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구조이며,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 시 재도전까지 1년을 기다려야만 하다보니,
모든 고등학교 교육이 이 한 번의 시험에 맞춰 왜곡되고 있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전환한다면
이제 수능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순위 경쟁의 종착점’에서 ‘기회의 출발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만드는 것이다.
응시 자격: 중등 이상의 학력 보유자(검정고시 포함)
시행 횟수: 연 3회(4월 말, 7월 말, 10월 말)
응시 방식: 과목별 응시 및 상위 등급 확보를 위한 재응시 가능
성적 처리: 절대평가 등급제
유효기간: 2~3년
이 구조에서는 학생이 여러 번 응시하며 더 높은 등급을 목표로 도전할 수 있다.
첫 시험에서 기준 등급을 받았다면 그대로 대학에 지원할 수도 있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음 시험에서 등급을 올릴 기회를 얻는다.
‘한 번의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줄어들고,
학생은 준비와 도전의 시간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왜곡을 거두어 내는 변화, ‘킬러문제’의 종말
지금의 수능에서 킬러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해진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들을 세밀하게 줄 세우기 위해, 누구나 틀릴 법한 극단적인
난이도의 문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평가 등급제에 재응시를 허용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격 기준선만 넘으면 대학 지원이 가능하고, 상위 등급도 여러 번의 기회를 통해 확보할 수 있으므로
모두를 걸러내는 ‘압축형 한 방’ 문제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킬러문제가 사라지면 학생들은 무작정 ‘최고난이도 대비’를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시험은 본래 목적대로, 기본 학력과 과목 이해도를 측정하는 도구로 돌아간다.
변별력 집착에서 벗어나기
현행 수능은 변별력을 위해서라면 교육과정의 경계를 넘는 문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위 1%를 가려내기 위해, 나머지 99%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극한의 난도를 강요한다.
하지만 절대평가+등급제 구조에서는 이미 등급 자체가 성취 수준을 보여주고,
재응시를 통해 상위 등급 확보가 가능하므로 굳이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울 필요가 없다.
변별력이라는 명목 아래 사교육을 부추기고, 학생과 교사를 불필요한 압박 속에 몰아넣던
구조가 무너진다.
시험은 ‘누가 더 우월한가’를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기준에 도달했는가’를 확인하는 장치로
자리 잡게 된다.
난이도의 안정화
한 번의 시험으로 전국 수험생을 세밀하게 줄 세워야 하는 구조에서는 출제 난이도를
해마다 조정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진다. 조금만 어렵게 내면 ‘불수능’, 조금만 쉽게 내면 ‘물수능’
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절대평가+등급제+재응시 체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시험의 목적이 변별이 아니라 기준 성취 확인이므로 교육과정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난이도를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매년 난이도 변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혼란이 줄어들고, 학생과 교사 모두
예측 가능한 시험 속에서 학습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수능 자격화가 만드는 변화
수능이 자격시험이 되는 순간, 학교 서열이 완화되며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가 시작된다.
몇 등인지가 아니라 ‘자격을 취득했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진짜 명문학교의 정의도 달라진다.
점수 분포도가 아니라, 상위권 학교의 진학률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고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학교의 가치가 된다.
고등학교는 입시 훈련을 넘어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고,
학생들은 그제서야 학교 안에서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비로소 아이는 자아로서 숨을 쉬게 된다.
고등학교는 ‘입시 전쟁터’가 아니라 교육의 터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후술할 내신 폐지의 기반도 된다.
수능 편중 현상 우려
일부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보다 수능 준비에만 몰두하는 수능 편중 현상을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이 자격시험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제도에서는 대학이 단지 수능 등급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수능은 대학 입학의 최소 기준
역할을 할 뿐, 대학은 그 위에서 자체 전형과 평가 요소를 결합해 학생을 선발한다.
수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의 전 교육과정이 수능 대비 일색으로
흐를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공교육은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지표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공교육이 지금처럼 선발의 전 과정을 떠안으면, 결국 시험 난이도·출제 방식·사교육 의존 같은
부작용이 반복된다.
국가는 공인된 시험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정말 학생들의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만을 공증한다. 그 이후 선발 프로세스는 철저하게 대학의 몫이다.
자아 성장과 도전의 시간
절대평가 등급제는 실패를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언제든 다시 응시할 수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길을 걸을지를 탐색할 여유를 얻는다.
수능이 ‘줄 세우기’가 아니라 ‘기회의 문’이 될 때,
고등학교 시절은 다시 꿈을 찾는 시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우리는 왜 시험을 ‘기회’가 아니라 ‘결과’로만 사용해 왔을까?
만약 수능이 자격시험이 된다면, 공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학생들은 어떤 얼굴로 교실에 앉아 있을까?
궁금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