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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인사이드 아웃

아담과 이브

by 무이무이

아담은 새벽의 공기 속에서 눈을 떴다.
에덴의 빛은 매번 조금씩 달랐다. 오늘은 구름이 얇아 빛살이 유리알처럼 고르게 쏟아졌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바람의 온도, 향기, 공기 속에 섞인 미세한 습기까지 느끼며, 속으로 그 느낌을 하나, 하나, 단어로 붙여본다.

그것이 그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담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름으로 정의했다.
동물의 발자국 하나,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 산 등성이의 바람, 구름밑 그림자,
그리고 어디선가 굴러온 돌멩이 하나까지도 —
그는 그 모든 것을 발견하는 즉시 기록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그는 자신의 손가락과 혀끝으로 세상을 정리했다.

그는 점토판 위에 손톱으로 작은 흔적을 남기며 중얼거렸다.
“여기 있는 네 다리 달린 작은 것은… 사슴.
꼬리가 길고 몸이 미끈거리는 것은… 도마뱀.
이건… 아침의 공기, 아니, 새벽의 콧김.”

아담의 음성은 마치 기도처럼 조용히 낮게 울렸다.

그에게 이 일은 사명이었으나 본능에 가까웠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는 불안했다.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저 알 수 없는 흐름처럼 흘러가 버릴까 두려웠다.
이름을 붙이면 마음이 잠시 가라앉았다.
그것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위에 무거운 돌 하나를 놓아두는 것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그 돌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다.

처음 발견한 새의 깃털 색을 구분하고, 아직 이름 없는 꽃의 향기와 꽃잎의 색을 묘사하고,
밤하늘에서 처음 떠오른 별에게 작은 음절 하나를 선물했다.
그는 마치 에덴동산 자체를 ‘읽어내려는’ 존재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읽어내는 순간,
에덴은 조금씩 질서를 갖추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질서는 동시에 그를 더 깊이 묶어두고 있었다.
아담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오직 기록하고, 붙잡고, 정리하는 것만으로 살아 있었다.
그것이 즐거움이자, 그의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그는 즉시 돌판에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맑고 급박하게 울리는 소리였다.
아담은 고개를 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이브가 뛰어오고 있었다.
숨결이 격하고, 두 눈은 무언가 확신에 찬 듯 반짝였다.
그 손에는 피와 같이 붉은 과일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곁에서 아담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브는 처음엔 감탄했다.
와, 저건 진짜 대단한 집념이다.
비슷한 동물들을 하나하나 구분해 내고, 바람의 방향과 냄새까지 기록한다니.
세상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손에서 지도를 얻는 것 같았다.
존경심 같은 게 솟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 존경심은 피로와 회의로 바뀌었다.
아담의 옆에서 그를 도와 이름을 붙여보다가,
이브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나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냥 동물이 있으면… 동물이네, 예쁘다, 귀엽다 하면 되는 거잖아.’

산이 보이면 “아, 멋있다.”
비가 오면 “아, 소리 좋네.”
그게 다 아닌가?
세상은 그냥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담의 끊임없는 기록질은 이브의 눈에 답답한 강박처럼 보였다.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꼭 저렇게만 있을까?
… 아니, 저건 오히려 너무 돌아가는 길 같아.
세상의 이치를 한 번에 알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야.’

그 생각은 처음에는 막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막연함은 강렬한 충동으로 자라났다.
이브의 마음속에서, 아담의 돌판보다 훨씬 뜨겁고 위험한 불씨가 타올랐다.




어느 날, 아담이 평소처럼 이름 짓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이브는 기록을 돕다 말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담,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멀리 가지 마.”
아담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새로운 식물의 이름을 붙이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브는 살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발길은 저도 모르게 에덴의 중심부, 금단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먹지 말라고 한 걸까?’

이브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호기심은 불길처럼 타올랐다.
아담의 이름 짓기가 채워주지 못한 어떤 갈증이 그녀를 몰아붙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알고 싶어지는 게 인간 아니겠어?
나는… 알아야겠어.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담은 평생 손톱으로 점토판만 새기고 살다가 죽어도 모를 거야.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릴수록,
이브의 걸음은 그 금단의 나무를 향해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나무 아래에서…
풀숲을 헤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궁금하지 않니, 이브?”

저음의 미끌거리는, 하지만 묘하게 간지러운 곳을 긁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뱀이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들,
아담도 모른 척하는 것들…
그 답을, 너는 바로 지금 가질 수 있다.”

이브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순간, 모든 경계가 사라졌다.
두려움조차도, 그저 호기심에 삼켜졌다.






햇빛은 풀밭사이 모래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멀리서 이브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선혈처럼 붉은 과일이 쥐어져 있었고, 그녀의 목에는 뱀이 살아 있는 장신구처럼 감겨 있었다.
그녀의 숨결은 가쁘고, 그 눈빛은 기쁨과 흥분이 감춰지지 않았다.

이브가 말했다.
“아담! 네가 하고 있는 그 이름 짓기를… 잠시 멈춰봐.
내 얘기를 들어야 해.”

아담은 점토판 위에 빽빽하게 새겨놓은 글자들을 손으로 가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끝에는 아직도 막 새긴 ‘사자’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담 :
“이브야,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야.
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기록하고, 이 세계의 질서를 세워야 해.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규칙을 만들어야 해.”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뱀이 목에서 살짝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뱀의 비늘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뜩였다.


이브 :
“하지만 아담, 정말 그런 방식만이 답일까?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고, 모든 동물의 걸음걸이와 새들의 날갯짓까지 기록한다고 해서…
그 모든 빅데이터가… 우리를 진짜 우주의 본질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그 모든 걸 뛰어넘는 길을 찾았어.”
그녀는 손에 쥔 붉은 과일을 치켜들었다.

아담의 눈이 놀람과 분노로 흔들렸다.
“그건 유혹이야! 그건 속임수야, 이브!”
그의 목소리는 무화과나무들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우리는 꾸준히 배워야 해. 규칙을 깨닫고, 모든 현상을 관찰해야 해.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우주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
단 한 번에 그곳에 도달하려 한다면… 그건 탐욕일 뿐이야.”

그때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울리는 듯 낮게 흘러나왔다.

뱀 :
“아담, 네가 지은 이름들을 봐라.”
뱀의 눈은 돌판 위의 글자들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법칙을 만들며, 세상을 붙잡아두려 하는 행동. 결국 너를 틀 안에 가두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만든 그 이름들마저도 영원하지 않을걸?

네가 ‘사자’라 부르는 그 존재를, 내가 ‘타오르는 불꽃’이라 부르면…
그 이름은 이미 사라지고 다른 이름으로 바뀐다.
이브가 또 다른 이름을 부르면? 또다시 바뀌지.

너의 이름들은 언제든 흔들리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점토판 위의 글자도… 언젠가는 바람에 깎여 지워질 것이다.”

아담은 움찔했지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도 그 기록들이 없으면, 우리는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을 거야.”

뱀이 낮게 웃었다.
“혼돈은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담.
진짜 문제는… 그 이름들이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브의 손에 쥔 붉은 과일을 향해 몸을 미끄러뜨리듯 다가갔다.

뱀 :
“이 과일을 보아라. 이 선악과를 보아라.
이 과일은 세상을 둘로 나눈다.
‘선’ 아니면 ‘악’.
‘진실’ 아니면 ‘거짓’.

아주 간편하지.
이렇게 실체화된 세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모호함이 없고, 흔들림도 없다.
선과 악이라는 두 축은 세상을 하나의 질서 속에 묶는다.

네가 붙인 수많은 이름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만,
이 과일은 그 이름들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이브가 속삭였다.
“아담,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길이야.
공부하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아도,
이 과일 하나로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될 수 있어.”

아담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손끝이 떨렸다.

아담 :
“아니… 그건 알게 되는 게 아니야. 무수한 가능성을 포기한 채, 스스로 문을 닫고 결정해 버리는 것일 뿐이야.”

뱀의 눈빛이 번뜩였다.
“결정은 곧 창조다.
아담, 네가 붙인 이름들… 그건 모래 위에 글을 쓰는 것과 같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야.
하지만 내가 제안하는 건… 바위에 새기는 일이다.”

그리고 뱀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이 과일을 먹어라.
그러면 너희들이 원하는 세상이 열리고,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뱀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래 위로 유유히 미끄러져 사라졌다.
마치 불씨를 던져놓고 연기 속으로 몸을 감춘 듯, 그 존재의 흔적만 남은 채였다.

바람이 스쳤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담과 이브만이, 붉은 과일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었다.

아담 :(숨을 고르며)
이브… 만약 우리가 이 과일을 먹었는데, 뱀의 말이 틀렸다면 어떡하지?
그저 그놈의 속임수라면?
아니, 설령 그 말이 맞더라도… 우리가 그걸 먹음으로써 어떤 세상에 들어가게 될까?
우리가 그렇게 해서 우주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걸 알아낸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지?”

아담의 목소리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의 손끝은 아직 과일을 향하지 못했다.

이브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목에 걸린 뱀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흥분과 결의로 번뜩였다.

이브 :
“아담, 내가 책임질게.
이걸 먹어서 어떤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 해도…
모두 내가 지고 갈게.
너는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네 곁에 있으니까.”

아담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아담 :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아.
책임을 진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이브의 목소리가 차츰 달라졌다.
처음의 뜨거운 충동에서, 이제는 서늘한 이성의 칼날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낮게 속삭였다.

이브 :
“아담, 한 번만 생각해 봐.
왜 우리에게 이 과일을 먹지 말라고 했을까?
그 이유가 정말 단순히 우리를 위해서였을까?
만약에…
만약에 누군가가 이 과일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어떤 ‘비밀’을 우리에게 감추고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아예 먹지 말라고 한 건 아닐까?”

아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마음 한편에서 작게, 그러나 강하게 어떤 의심이 피어올랐다.

이브 :(한 발 더 파고들며)
“설령 뱀의 말이 틀렸다 해도,
이 세상에선 항상 ‘금지된 것’ 뒤에 진짜 진실이 숨어 있지 않던가?
만약 이 과일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계가…
그저 누군가가 꾸며놓은 무대일 뿐일 수도 있다는 걸.”

아담은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

아담 :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이 무대의 주인이 있다면,
그 존재는 왜 우리에게 그걸 감추려 한 걸까?”

이브는 붉은 과일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 빛을 아담의 얼굴에 비췄다.

이브 :
“바로 그걸 알아내야 해.
아담, 우리가 진짜 자유로워지려면…
이걸 먹는 수밖에 없어.”




아담과 이브는 마침내 과일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브 :
“아담, 우리 이제 진짜 알게 되는 거야.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아담은 잠시 숨을 고르며 과일을 바라보다가, 마치 운명처럼 말없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브도 따라 한입 베어 물었다. 달달한 과즙이 혀를 감싸며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눈앞의 세상은 순식간에 분열되었다.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기쁨과 슬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좋음과 나쁨으로 세계가 갈라졌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냥 ‘있음’이었다.
풀잎은 그냥 풀잎이고, 비는 그냥 비였다.
심지어 벗고 있는 몸조차 그냥 자연스러운 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옷을 입는 건 좋은 것, 벗는 건 나쁜 것.
순종은 선, 불순종은 악.
모든 게 칼로 베어 자르듯 나뉘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벗은 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담 :
“이브, 왜 네가 이렇게… 벌거벗고 있는 게… 이렇게 부끄럽게 보이지?”

이브 :
“그러게, 아담… 갑자기 너무 창피해.
우리…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아. 너무 잘못된…”

그들은 부랴부랴 나뭇잎을 따서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모든 선택이 그들에게 도덕적 무게를 지니게 됐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규칙을 어긴 죄책감과 후회라는 감정이 난생처음 겪는 파도로 몰려왔다.

조금 전까지는 단순히 행동이었을 뿐이던 것이,
이제는 ‘이건 선이다, 이건 악이다’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과일을 먹은 순간부터 그들은 헤어날 수 없는 무한 루프에 갇혔다.

선을 선택하면 그 순간 악을 피해야 한다는 압박이 몰려온다.
악을 선택하면 영원한 죄책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그 죄책감을 씻으려면 또 다른 ‘선한 행동’이 필요했다.

이제 인간의 의식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평가받고 심판받고 선택해야만 하는 의식으로 바뀌어버렸다.

혼란스러워하던 아담이 입을 열었다.

아담 :
“이게 네가 말한 진리냐, 이브?
세상의 모든 비밀에 한 번에 도달한 것이라는 게…
결국 이런 무게였단 말이야?”

이브는 당황하며 말했다.

이브 :
“내가 아무리 충동질했어도, 넌 이성적으로 판단했어야지!
네가 ‘아니’라고 했다면 나는 먹지 않았을 거야.”

아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담 :
“네가 처음부터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이건 다 네 잘못이야. 내가 아니라!”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책임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 행동 자체가 또다시 죄책감을 불러왔다.

‘책임을 떠넘기는 건 나쁜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나는 악한 사람이다.’

선과 악의 무한 루프 속에서, 그들은 더 깊숙이 갇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의 내면 속에는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저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
그리고
선택했지만 늘 부족하다는 죄책감이 처음으로 자리 잡았다.

아담과 이브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선악과의 진짜 본질이라는 것을.






아담과 이브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네가 그랬잖아!”
“아니야, 네가 잘못했어!”

손가락이 서로를 가리키고,
눈빛은 분노와 죄책감,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뱀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나뭇가지 위에 몸을 살짝 걸친 채, 그들의 싸움을 관람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뱀은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대신 혀를 살짝 내밀며 ‘스스스스’ 하는 작은 소리만 냈다.
그 소리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즐기는 관객의 박수 같았다.

뱀의 독백 :
“그래, 바로 그거다.
내가 원하는 건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 자체가 아냐.
내가 원한 건 그들의 마음속에 선과 악의 선을 긋는 것.
그 선 하나만 있으면, 그들은 영원히 그 틀 속에서 싸우겠지.”

뱀은 몸을 또아리 치며 나뭇가지를 천천히 휘감았다.

뱀의 독백 :
“이성은 끝없이 옳음을 주장하고,
본능은 끝없이 욕망을 끌어당긴다.
나는 그 사이에 ‘갈등’이라는 불씨만 던져 넣으면 돼.
그 불씨는 스스로 타오르며, 결코 꺼지지 않지.”


뱀은 자기 다리를 떼어내며 말했다.

“나는 다리도 필요 없다.

너희처럼 목표를 향해 달릴 필요가 없으니까.

갈등은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너희가 스스로 나를 불러들이니까.”


뱀은 혀를 날름거렸다.

흙을 한입 털어 넣는다.

“나는 흙만 먹어도 살 수 있다.

너희는 흙에서 태어났지.

너희의 두려움, 욕망, 불안, 그리고 죄책감까지…

그 모든 것이 흙의 맛을 머금고 있다.

그러니 너희가 살아 있는 한, 너희들 몸에서 떨어지는 흙만 있다면, 나는 결코 굶주리지 않는다.”


뱀은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곧 나의 끝없는 만찬이니까.”






아담과 이브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서로를 설득하려 애쓰지만, 그 시도 자체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뱀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보이는 인간의 실루엣이,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생명체가 하나의 몸 안에서 끝없이 다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뱀은 흐느끼듯 낮게 웃었다.


뱀 :

“그래, 싸워라. 끝없이 싸워라.

너희가 화해할 때조차, 그 화해조차도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 될 테니.”

그 말과 함께 뱀은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몸을 감추었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보이지 않는 틀]은 여전히 아담과 이브의 마음속에서 작동했다.

아담은 [이성]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들로 세상을 정리하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았다.

이브는 [충동]을 따라 움직였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달콤한 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뱀은 [틀]을 세웠다.
그 틀은 가장 오래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상의 복잡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단순한 선과 악, 옳음과 그름으로 잘라내어
쉽게 판단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였다.

뱀은 세상을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세상을 [자신만의 틀에 맞추어] 바라보도록 속삭인다.
그리하여 아담과 이브는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고,
끝없는 갈등 속에서 서로를 태운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너희가 만든 그 수많은 이름,
그 끝없는 줄다리기…
그것이 곧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다.

인간의 뇌는 아래 그림과 같이 3개의 상징적인 특성이 서로 강력하게 상호작용하여 착시와 착각 왜곡을 만들어내는 오묘하고도 심오한 내장기관이다.

뇌구조 참고 이미지 : 아담,이브,뱀,선악과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면서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 세상을 보는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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