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아벨
카인은 땅을 파서 먹고사는 농사꾼이었다.
몇 년째 농사에 실패하고 있었다.
한 해는 홍수가 나 씨앗이 모두 떠내려갔고, 다음 해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 쩍쩍 갈라졌다. 또 다른 해에는 병충해가 들끓어 수확이 거의 없었다.
마땅한 농기구도 없었다. 그는 주먹도끼로 땅을 갈아엎었고, 이 일을 몇 년째 해왔는지 이제 감각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잘 되기만 하면 가족을 먹이고, 남는 곡식으로 집을 넓히고 털옷을 살 수도 있었다. 풍년이 들면 인부를 불러 더 넓은 땅을 일굴 생각도 했다.
손에는 못이 박히고, 등은 굽어 허리가 아팠지만, 카인은 자신이 땅을 파는 재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 자신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밭을 포기하면 먹고사는 것조차 막막했기 때문이다.
아벨은 카인의 동생이었다. 그는 양을 키우는 목자였다.
양은 대부분 방목되어 스스로 풀을 뜯었고, 특별히 돌보거나 수를 늘릴 필요도 없었다. 아벨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을 관찰과 사색으로 채웠다.
밤이 되면 그는 별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읽었다. 타로나 점성술이 아니라, 별자리의 움직임과 계절 변화를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 내일과 다음 계절의 날씨를 예상했다.
거의 노숙을 하다시피 자연 속에서 살아온 덕에, 아벨의 천문학적 지식과 관찰력은 남달랐다.
한량처럼 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철학적 사고와 미래를 보는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부적인 소질 덕에, 아벨은 세상과 삶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카인은 새벽부터 밭으로 나왔다.
새벽이슬에 젖은 흙을 맨손으로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올해도 농사를 망치면, 굶어 죽기 딱이다… 휴, 안 되겠어. 이번만큼은 아벨을 만나보자.’
사실 진작 아벨과 상의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기사,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카인은 알고 있었다. 아벨은 밤낮없이 양을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며, 어떤 땅이 비옥할지, 별을 보면서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가 언제일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아벨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는 없었다.
농사는 자기 일이었긴 하지만, 양을 키운다는 핑계로 농사일은 돕지 않고, 한량처럼 떠도는 아벨이 조금 얄밉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벨이 양을 키우지 않으면 단백질 섭취는 꿈도 못 꾸니, 양을 키우지 말고 농사나 도와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한 카인이 자기 전문 분야를 아벨과 공유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카인은 밭에서 손을 털고 아벨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양 떼 사이에 앉아 있는 아벨이 보였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인은 주저하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아벨, 너 말이야… 나는 솔직히 네가 부럽다.”
아벨이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숨을 고르며 이어갔다.
“나는 몇 년을 땅만 파헤치며 농사에 매달렸어. 씨앗을 언제 뿌려야 할지, 김은 언제 매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 나름 연구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확신이 없어. 그런데 너는…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날씨를 기가 막히게 맞추잖아. 천문학 지식도 남다르고. 솔직히 그런 네가 부럽기도 하고, 또 내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아벨은 잠시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형, 나는 그냥 걷고, 밤이면 돌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볼 뿐이야. 나는 땅을 파거나 씨를 심지 않아. 그렇지만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은 늘 내 주변에 있어. 별, 바람, 풀 냄새… 그것들이 늘 나를 바라보고, 나도 그것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거야.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늘 곁에 있던 걸 배운 거지. 그래서 나는 오히려 감사해.”
카인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
“나도 너처럼 내가 원하는 걸 가까이 두고 바라보지. 내 몸에는 흙냄새가 배어 있고, 내 눈은 늘 땅만 바라봐. 하루 종일 땅을 뒤지고 또 뒤지지. 그런데 땅속에서 나오는 건 늘 누렇게 말라버린 새싹뿐이야. 혹은 딱딱한 자갈이거나. 내가 애써 얻어내는 건 잡초와 돌덩이뿐이지. …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대체 내가 흙을 바라본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흙이 날 외면하는 걸까.”
아벨은 잠시 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이 세상은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아무리 땀을 흘려도 그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영감과 도움, 그리고 환경과 운이 따라줘야 하지. 그 모든 게 합쳐질 때 비로소 열매가 맺히는 거야. 거기에 형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반드시 풍성한 결실이 있을 거라고 믿어. 하지만 한 가지—형이 만약 그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면,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이나 내가 우주로부터 그냥 받은 천문학적 감각을 인정한다면… 그때는 아마 형의 밭에서도 더 이상 메마른 새싹만 자라지는 않을 거야.”
카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아벨, 그만해라. 나를 가르치려는 말투, 솔직히 듣기 거북하다. 나는 동생한테 훈계 들으려고 온 게 아니야. 지금 내가 필요한 건 그런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언제 씨를 뿌려야 하는지, 언제 거둬야 하는지, 또 어느 밭에다 뿌리는 게 좋은지—그걸 말해달라는 거다. 콩이 나을지, 귀리가 나을지, 그런 구체적인 것.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철학이 아니라, 당장 올해 농사가 잘 되느냐 망하느냐 하는 거다.”
아벨은 한동안 입술을 다물었다. 눈빛만이 흔들렸다.
“형… 그렇게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 사실 나라고 모든 걸 확신하는 건 아니야. 귀리를 심어야 할지, 콩을 심어야 할지, 밭을 어디로 골라야 할지… 들이 나을지, 중턱이 나을지, 나도 아직은 시간과 징조가 필요해. 별을 본다고 해도, 확실히 단정 지을 수는 없거든.”
카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 알려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 나 가본다.”
그는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벨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형! … 삼일 뒤야! 삼일 뒤에, 기러기들이 내려앉았다가 떠난 동쪽 땅을 봐! 그곳에 귀리 씨앗을 뿌려! 기억해, 동쪽 땅이다!”
카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멀어지는 그의 등 뒤로, 아벨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메아리처럼 따라붙었다.
카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기분이 나빴다. 아벨을 찾아간 걸 괜히 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괜히 시간만 버렸어. 적어도 같이 땅을 보러 다니며 별이라도 함께 바라보며… 올해 풍년이 될 확신을 조금은 들려줄 줄 알았는데. 성의조차 없잖아.’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자존심은 더 상했고, 마음은 괜히 허전했다.
삼일 후,
카인은 밭에서 일을 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탁! 축축한것이 그의 콧잔등에 떨어졌다. 새똥이었다.
문득 아벨이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삼일 뒤, 기러기들이 앉았다 떠난 동쪽 땅에 귀리 씨앗을 뿌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잃을 게 뭐 있겠는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카인은 동쪽 땅을 찾아갔다. 황무지처럼 버려진 땅에 새들이 떠나고 난 뒤였다. 그는 무심히 씨앗을 뿌려두고, 그 일을 잊어버린 듯 다시 원래 밭을 파는 데 열중했다.
시간은 흘러 일주일, 또 삼 주가 지났다. 동쪽 땅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땀방울이 밴 밭을 뒤집고, 잡초를 뽑고,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벨이 숨차게 달려와 외쳤다.
“형! 동쪽 땅… 그 황무지가 푸르게 변했어! 혹시 형이 씨를 뿌린 거야?”
카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난 동쪽 땅에 발도 디딘 적 없어!”
입은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뭔가, 오래전 무심히 던져놓은 그 씨앗이 떠올랐다.
두 형제는 결국 동쪽 땅에 도착했다.
거기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누렇게 메말라 있던 땅이 푸른 물결로 뒤덮여 있었다. 바람이 불자 귀리 새싹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은빛 파도를 만들었다.
아벨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형, 이거… 형이 뿌린 씨앗 맞지? 이렇게 싹이 난 건 처음이야. 황무지가 이렇게 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카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동쪽 땅에 발도 디딘 적이 없어.”
입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차갑게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아벨이 이미 알고 있다는 걸 그는 직감했다.
아벨은 가만히 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형 손길이 아니면 이렇게 될 리 없어. 흙이 말해주고 있어. 이건 분명 형이 뿌린 씨앗이야.”
그 말에 카인은 뒷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고 콧잔등에 땀이 났다. 거짓말이 들켜버린 것도 모자라, 동생이 마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그 태도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아벨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형, 이번 농사는 정말 잘 됐어. 이렇게 싹이 튼 건 처음이잖아. 드디어 형의 씨앗이 큰 결실을 맺게 될 거야.”
그러나 카인에게 그 말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비아냥처럼 꽂혔다.
‘내가 뼈 빠지게 파낸 밭에선 잡초밖에 안 났는데… 겨우 동생 말 한 번 믿고 흘려 뿌린 씨앗이 이렇게 자라다니. 이건 뭐야? 내가 그동안 노력한 걸 무시하는 거냐?’
새싹은 초록빛으로 자라났지만, 카인의 마음속에는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수확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아벨이 일러준 때에 맞춰 추수하자, 동쪽 밭은 말 그대로 물결처럼 일렁였다. 흑요석 낫을 대자 귀리 줄기가 한꺼번에 쓰러졌고, 손에 닿는 감촉은 묵직하고 촉촉했다. 카인은 그날 하루 종일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불러 모으고, 마을사람들과 어르신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였다. 술잔이 돌고, 굽던 고기가 접시에 오르며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카인은 모닥불 옆에서 자꾸만 손을 문질렀다. “이게 다 내 결과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카인이 축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카인은 잔치상 위에 세워진 작은 재단에 곡식 단을 올리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있고, 조금은 으스대는 어투다.
“이 곡식은 내 손으로 일군 것입니다.
나는 씨앗을 뿌리고, 돌을 골라내고, 잡초와 싸우며 흙을 다스렸습니다.
내가 이마에 땀을 흘린 만큼 땅은 나에게 응답했습니다.
우리가 굶지 않고 이렇게 배부른 잔치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와 같은 이들의 땀과 의지 덕분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수고와 나의 곡식에 감사를 올립니다. 이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잔치자리에 앉은 이들은 박수를 치긴 했지만, 어쩐지 그 박수는 형식적이고 영혼이 없었다. 사람들 눈빛 속엔 “그렇지, 카인은 늘 저런 식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벨이 축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아벨은 잠시 형을 바라보다가, 새끼양의 통구이를 재단에 올린다.
그의 말투는 차분하고, 카인을 존중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땅이 우리에게 열매를 준 것은, 형의 수고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손길 덕분입니다.
저 들판에 내려앉은 기러기들의 흔적, 그들이 남긴 작은 똥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 흔적은 어느 땅이 기름지고, 어느 계절이 적절한지를 말해주었습니다.
형이 뿌린 씨앗이 이렇게 자라난 것도, 그 자연의 신호 덕분이었지요.
그러니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풍성함은, 형의 노력과 더불어 자연의 은혜,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낸 시간의 선물입니다.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올해 처음 태어난 양의 새끼를 올려 드립니다.
우리가 먹고 즐기되, 그 근원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누구도 몰랐던 땅의 비밀을 풀어놓은 아벨의 말에 놀랐고, 새끼양의 구수한 향내는 잔치 자리를 금세 들뜨게 만들었다.
박수는 훨씬 길고, 뜨겁고, 환호가 섞였다.
카인은 웃는 듯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형이 뿌린 씨앗이 이렇게 자라났다”는 아벨의 말은 칭찬처럼 들렸으나, 그의 귀에는 비아냥으로 꽂혔다.
동쪽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고 했던 자신의 거짓말도 자꾸 생각났다.
사람들의 박수는 자신의 수확보다 양고기에, 그의 이름보다 아벨의 이름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카인의 내면에서 “왜 모두가 나로 인해 먹고 나를 통해 마시면서, 나를 보지 않는가”라는 외침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증오로 바뀌어 갔다.
해가 막 솟아오를 무렵, 카인은 서둘러 아벨을 불러냈다.
어제의 잔치가 남긴 불편한 속쓰림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싱긋 웃으며 동생을 맞이했다.
“아벨아, 네 감각은 정말 뛰어나다. 이번엔 콩을 심고 싶은데… 어느 밭이 좋을지 같이 나가보지 않겠니?”
아벨은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형. 같이 가. 형이 풍년을 맞이하길 나도 바라니까.”
둘은 들판으로 나섰다. 바람은 잔잔했고, 땅은 이슬을 머금어 반짝였다.
아벨은 한쪽 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 이쪽은 물길이 잘 통하고, 바람이 적당히 드나드네. 콩은 여기서 뿌리면 잘 자랄걸.”
아벨은 땅의 결을 만지며 미소 지었다.
“봐, 형. 여긴 흙이 살아 있어. 씨앗이 금방 숨을 틔울걸.”
그 순간 카인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검게 부풀어 올랐다.
그 미소가, 그 목소리가, 자신의 노력 위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든 공로가 자신에게서 빛을 잃고 아벨에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카인은 발밑의 돌 하나를 슬쩍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가, 그의 분노와 꼭 맞물렸다.
아벨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흙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형, 여기라면…”
아벨의 말은 끝내 맺히지 못했다.
돌이 번개처럼 내리 꽂히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벨의 몸이 휘청 쓰러졌다.
피가 이슬 맺힌 흙 위로 스며들며, 새벽의 빛과 뒤섞였다.
카인은 헐떡이며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다가, 땅바닥에 웅크려 앉아 중얼거렸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을…
왜 네가 빼앗으려 하느냐…
왜… 네가 숟가락을 얹으려 드느냐…”
그의 목소리는 점점 떨렸고, 흙 위에 피는 더욱 진하게 번져갔다.
새벽의 바람조차 그 자리에서 숨죽인 듯, 고요했다
카인은 차갑고 습한 흙 속에 아벨을 묻었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 땅을 파는 일이었으니, 숨겨진 비밀처럼 흙 속에 모든 것을 감췄다.
사람들에게는 아벨이 또 양을 데리고 여기저기 별을 보러 떠났다고 말했다.
아벨은 원래 들판을 떠돌며 살던 인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부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카인의 농사가 잘되든 못 되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 자기 삶을 살아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카인 자신에게 그 사건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매일 밤, 악몽이 찾아왔다. 꿈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아벨을 어디에 두었느냐. 아벨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
귀속으로 파고드는 그 환청에 카인은 소리쳤다.
“내가 아벨을 지키는 수호자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러나 환청은 멈추지 않았다.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다… 네 동생의 피가…”
죄책감과 공포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결국 카인은 그 땅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은 그가 떠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홀로 떠난 카인은 먼 놋이라는 땅에 성을 쌓고, 그 안에서 혼자 지내며 죄책감과 환청 속에 갇혀 살아갔다.
카인은 아벨의 축사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에서 자존심의 좌절을 겪는다. 인간두뇌는 물질적 성공 후에 내면의 순수한 배경을 지워버리려 한다.
그 지움이 곧 자기 세뇌의 시작이다: “이건 내 성과다. 다른 요소는 사소하다.” 운이나 남의 도움, 유리한 배경의 사실을 자기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한다.
창세기 원본에서의 ‘신의 음성’(“네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다”)은 내적 심판이다. 노력으로 얻지 않은 것을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운 좋게 얻은 성과를 수치스러워하는 마음이다. 외적으로는 그러한 운의 결과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는 마음이다.
창세기 원본에서 "내가 아벨의 수호자입니까?"하고 어이없어하는 장면은 카인의 방어적 반응이다. “내가 모든 것을 일구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의 노고까지 알아야 하나." 현실을 부인하고, 죄의식을 회피하려 한다. 방어기제 발동이다.
창세기 원본에서 카인은 추방되면서 신의 징표를 받는다. ‘너를 해치는 자는 일곱 배의 벌을 받을 것이다’
살인자를 보호하는 이상한 약속 같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벌이다.
즉. 사람들은 관심 없는데,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다.
카인은 결국 외부와 단절된 성(자기만의 요새)에 갇힌다.
밖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거짓 성공 신화·자기 방어·죄책감을 끝없이 돌려보며 더 깊이 고립된다.
나는 지금 내면에서 아벨을 죽이고 있는지 항상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