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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두 큰 광명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라

by 무이무이

우주의 첫째 날 태어난 빛은 130억 년을 날아 우리 몸속까지 스며듭니다. 그 빛이 우주를 숨 쉬게 했고, 넷째 날 마침내 광명체들이 등장했습니다. 과학은 그 빛의 흔적을 추적하며, 고대인들은 어쩌면 "창세기"를 통해 그 비밀을 암호처럼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지으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지으시고.”


창세기의 이 구절을 곰곰이 살펴봅시다. 전통적으로 큰 광명은 해, 작은 광명은 달로 해석되지만, 창세기 어디에도 ‘해’와 ‘달’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빛나는 존재들은 ‘궁창’에 있다고 되어 있죠.

궁창—이것은 단순히 하늘이 아니라, 우주의 그물망 구조, 즉 코스믹 웹(Cosmic Web)이라 불리는 거대한 우주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앞서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6화에서 이 궁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두 개의 ‘큰 광명’은 무엇일까요? 만약 창세기를 지구의 창세기가 아니라, 우주의 창세기로 확장해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훨씬 더 장엄하고 거대한 빛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태양, “큰 광명”의 민망한 자기소개

양은 스스로 대단한 줄 압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자기 덕에 사는 줄 알고, 매일같이 떠올라선 뽐내듯 굴죠.

“나 없으면 너희 전부 얼어 죽어!”

맞는 말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인류는 감기 걸리기도 전에 그냥 동사합니다.

하지만 태양아, 솔직히 말해보자. 네가 우주 스케일에서 얼마나 하찮은지 아는가?


태양의 진짜 스펙

※ 질량: 태양계 질량의 99.8%를 독점 → 동네 유지급

※ 반지름: 69만 km → 지구보다 109배 크다지만, 우주급 모임에 가면 “작은 별” 테이블에 앉는다
※ 밝기: 태양의 밝기를 기준값 1로 잡겠습니다.
즉, 태양은 우리 집에서는 왕이지만, 우주로 나가면 진짜 “동네 반장” 수준입니다.


다른 별들과 비교하면?

※시리우스

밝기: 태양의 25배

태양 입장: "아직도 백열등 켜니?" 소리 듣는 꼴


※베텔게우스

반지름: 태양의 1000배, 밝기: 약 100000배

태양은 그 안에 들어가도 보이지도 않는 고장 난 꼬마전구


※UY 스쿠티

반지름: 태양의 1700배, 밝기: 약 340000배

태양은 그 곁에 서면, 마치 개미 눈에 비친 별빛 같은 존재


※퀘이사 (3C 273 기준)

밝기: 태양의 1조 배

비교 순간 태양은, 그저 저~기 산간 오지 가로등도 아니고 가로등 불빚아래에 날아든 날벌레의 더듬이 끝에 불과

그러니까 태양이 창세기의 “큰 광명”이라 부르기엔 좀 민망합니다.

마치 동네 치킨집 간판 불빛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하죠.

물론 그 치킨집 불빛은 우리 동네에선 정말 중요합니다. 밤길 귀갓길을 밝혀주고, 닭냄새에 군침도 돌게 하니까요.

하지만 지구 바깥에선? 그냥 서울 불빛 지도에도 안 찍히는 작은 점일 뿐.
그래서 창세기의 “큰 광명”을 굳이 태양으로 해석하는 건,
하나님이 우주적 드라마를 찍으셨는데,
관객이 “아, 이건 우리 동네 공원 불빛 얘기구나!”라고 오독하는 셈입니다.

그럼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야, 내가 퀘이사도 만들고 블랙홀도 만들었는데,
니들은 태양만 보고 ‘큰 광명!’이라고 우기냐?”

태양은 우리 인류의 삶에 있어서는 절대적이고 위대한 별입니다.
하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은 그냥 “지구 맞춤형 보일러”에 불과합니다.

“큰 광명”이라는 칭호?
그건 퀘이사쯤 돼야 어울리는 타이틀이죠.

태양은 그저 — 시골마을 골목길 노란 가로등.
우리 벌레들이 그 아래서 앵앵거리며 사는 동안,
우주는 저 멀리서 광폭한 스포트라이트 쇼를 벌이고 있습니다.


퀘이사의 장엄한 진짜 스펙

※ 태양보다 1조 배 이상 밝음 → 은하 수천 개의 빛을 합쳐도 못 따라감

※ 지름이 수광년에 달하고, 수백광년 길이의 에너지 제트를 뿜어냄 → 우주 공간을 찢어발기는 광선포
※ 태초의 빛 → 빅뱅 이후 수십억 년 전의 우주 지도를 보여주는 “시간의 창”
※ 초거대 블랙홀의 굶주림이 만들어낸 괴력 → 은하 생성과 소멸의 심판자

그래서 퀘이사는 이렇게 불립니다.
“우주의 등대.”
“창조 이후 가장 오래된 빛.”
“은하들의 탄생과 죽음을 결정하는 우주의 불가사리.”




달, “작은 광명”의 수줍은 고백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태양의 빛을 빌려 반짝이며, 지구 곁을 도는 충직한 위성일 뿐이죠.
그래서 창세기에서 달을 “작은 광명”이라 부른 건 꽤 정직한 묘사입니다.

하지만 달은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태양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연인들의 시와 노래, 밤하늘을 쳐다보는 철학자들의 고독,
사람들이 첫 발자국을 내디딘 다른 세상.
밤의 무대에서 달은 언제나 주연이었습니다.


그럼 다른 밤의 배우들은 어떨까요?

※ 별들 : 우리 눈에 반짝이지만, 사실은 수백만 광년을 건너온 빛.
※ 행성들 : 태양빛을 반사하며 은근슬쩍 별 행세.
※ 은하수 : 2천억 개의 별이 모여 만든 장엄한 강.
※ 혜성 : 얼음과 먼지가 남긴 꼬리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방랑자.

밤하늘은 이렇게 수많은 조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주연은 따로 있죠.



밤의 왕좌 — 블랙홀

사람들은 흔히 블랙홀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대의 감옥,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심연.
그러나 놀랍게도, 블랙홀은 단순한 종착지가 아닙니다.

별의 잔해가 사라지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은하의 구조가 짜이고, 미래의 별들이 태어날 조건이 마련됩니다.
죽음의 문턱이 곧 잉태의 자궁이 되는 것이죠.

이 의외성 때문에 블랙홀은 신비롭습니다.
끝과 시작, 소멸과 창조, 파괴와 재탄생이 하나의 현상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별도, 은하도 할 수 없는 일을 블랙홀이 수행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밤의 왕은 달도 별도 은하수도 아닌,
바로 이 끝에서 시작을 준비하는 존재, 블랙홀입니다.




별세계

6화, 7화, 9화에서 그동안 이야기 했던 우주의 거대 그물망 구조와 원심분리에 의해 그물망 중심에 생긴 중력장의 끈들을 이해한다면 이 블랙홀들의 축방향이 그물망의 끈과 같은 선상에 걸려 있는 것이 전혀 신기하지 않을 수 있다.( 위 그림은 초거대퀘이사군 _ 출처: 위키백과 )



우리가 이제부터 상상할 장면은, 퀘이사와 블랙홀이 우주의 낮과 밤을 만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먼저 퀘이사를 떠올려 보세요. 퀘이사는 단순한 별이 아닙니다. 우주의 가장 밝은 빛이자, 강력한 중력장으로 주변을 흔드는 존재죠. 이 퀘이사의 힘은 보이지 않는 중력장의 끈들을 흔듭니다.


그 진동이 퍼져 나가면서, 잠자고 있던 블랙홀들을 자극합니다. 블랙홀은 은하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깨어난 블랙홀 주위로 가스와 별들이 모이면서 나선형 막대은하가 서서히 만들어집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하며 별과 빛을 휘감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천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 움직임 속에는 주기와 반복,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퀘이사가 중력장을 흔들고, 블랙홀이 은하를 탄생시키는 과정은, 우리가 하루를 살고 계절을 겪고 해와 달을 보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낮과 밤, 일자와 연한, 삶 속 사건과 징조 모두 결국 이런 우주적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즉, 우리의 하루와 한 해, 그리고 삶의 반복은 우주가 은하를 만들고 별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질서 안에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이 과정을 이해하면, 우리 삶의 사건과 흔들림도 더 이상 혼란이 아니라 우주가 만들어낸 필연적 리듬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퀘이사와 블랙홀이 만드는 낮과 밤은 단순한 천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우주와 우리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전해주는 장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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