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는 알고 보니 복제인간이었습니다.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by 무이무이


철새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연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인류라는 거대한 의식의 흐름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부모님의 생육과 번성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만육천삼백오십삼 일째 날이다.
아침 출근길, 차창 밖으로 새벽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이미 수많은 차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빨간 신호등이 나타나자, 놀라울 정도로 모든 차가 동시에 멈췄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서 ‘정지’ 버튼을 눌러 도시를 얼어붙게 만든 것만 같았다.

운전자들의 얼굴에는 큰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무표정, 혹은 무심. 하지만 그 무표정 속에는 놀라운 동기화가 숨어 있다. 지각하면 안된다...
초록불이 켜지자, 한순간에 엔진음이 다시 살아나며 줄지어 움직인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문득 소름이 돋았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각자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이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 그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출근길 사람들은 줄지어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말은 거의 하지 않지만, 발소리는 하나의 거대한 심장의 박동처럼 일정하다.
누가 “지금 움직이라”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를 움직인다.
회사로, 공장으로, 학교로, 병원으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그 흐름은 반대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다시 하나같이 집으로 돌아간다.
낮 동안 일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에 든다.
아침이 되면 또다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출근, 일, 점심, 퇴근, 집, 식사, 휴식, 수면.
조금의 변주가 있을 뿐, 거대한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마치 개미들이 보이지 않는 냄새길을 따라 이동하듯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집단의 질서를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진짜 자유의지일까?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그리고 국가에서 전인류라는 거대한 의식체로 확장되는 이 흐름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의지라고 치부할 수 없는 집단의식이다.
이 거대한 의식체는 이제 스스로를 인식하며,
우주 속 또 다른 의식체를 찾아 나서는 본능적 행위를 시작한다.
신을 믿는 행위도, 신을 믿지 않는 행위도 사실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거대 의식이라는 흐름 안에 함께 존재하는 일부일 뿐이다.
마치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동물 세포가 각자의 위치에서
간세포가 되었다가, 심장세포가 되었다가, 뇌세포가 되듯이.

멀리서 본다면, 개개인은 마치 신경세포 하나, 세포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인간은 하나의 뇌처럼,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창세기의 여섯째 날이 떠오른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구절.
그 ‘형상’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인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의식의 패턴, 즉 우주를 창조한 거대한 질서를 복제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별 인간은 하나의 미세한 의식의 조각일 뿐이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집단의식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이 복제한 진짜 ‘인간’ 일 수 있다.

그 의식 안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포함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와 흐름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의식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창조되었는지를 묻기 위해
우주를 향해 눈을 돌린다.

그때 문득,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새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연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인류라는 거대한 의식의 흐름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팔천백사십육 일째 날이다.

오늘 아침, 사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마음 한편이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그 작은 말실수 하나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가 몰려왔다.


회사에 도착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육천사백팔십사 일째 날이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를 멀리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쓸쓸함과 긴장이 교차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경쟁의 압박 속에서, 스스로도 모르게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모든 사소한 갈등과 경쟁, 질투와 미묘한 상처들은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인류라는 거대한 의식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나는 작은 파동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해진다. 후회와 자책이 뒤섞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느껴지는 경외감과 놀라움이 교차한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스스로를 옭아매던 모든 순간이 결국에는 흘러가 버리는 조그마한 파편임을 깨달을 때, 묘한 소속감과 안도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수많은 파편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만든 아주 미세한 파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흔들림을 주고, 그 작은 변화가 또 다른 파동을 불러오며, 결국 거대한 의식의 방향마저도 조금씩 틀어놓는다.

그렇기에 나의 분노, 나의 욕망, 나의 상처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큰 강의 물결 속에서 미묘하게 섞이고 울려 퍼진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한없이 작지만 동시에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벅찬 확신이 찾아온다.


확실한 건, 여기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작가들이 브런치스토리라는 거대한 우주를 함께 엮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우주는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으며, 서로의 글과 마음이 맞닿을 때 비로소 빛난다.

keyword
이전 11화제11화. 두 큰 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