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다섯째 날
여기서 우리는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하나의 실체화된 우주가 태어났으나,
그 우주는 상자 안에 들어있던
무수한 가능성의 함수를 모두 실현하는
진정한 창조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를 여는 순간을 역재생하여,
상자 안에서 이과정을 보듯이 생각해 봅시다.
지구가 45억 년 동안 걸어온 길을 떠올리면,
그 상자 속에는 정말 다양한 가능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우주는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안에서 무수한 가능성의 상태를
체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에는 생물이 번성하고 새는 땅 위 하늘을 날으라.”
“큰 바다 생물과 물에 번성한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창세기에는 공룡, 거대한 곤충, 삼엽충,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프테라노돈,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존재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바다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자 바로 지상낙원, 에덴동산 같은 인간삶의 터전이 펼쳐진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살기 딱 좋은 지구의 이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창세기는 그 시절을 깜빡 잊은 것일까요, 아니면 창조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다섯째 날의 창조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지구 환경의 한 장면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우주가 걸어온 장대한 역사를 함께 읽는 것이 어떨까요? 창세기 다섯째 날 구절은 매우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능성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로 깊고 넓습니다.
앞서 2화에서 이야기한 우주 초기의 초대칭 상태, 3화에서 다룬 초대칭의 깨짐과 함께 등장한 광자 에너지의 전우주적 강타를 떠올려 보세요. 고대인들은 수천 년 전, 별과 바람, 파도와 생명을 관찰하며, 우주의 발생과 원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다섯째 날의 새와 바다 생물 창조 또한, 단순한 생명의 등장을 넘어, 우주와 지구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가능성과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죠.
먼저 지구라는 행성부터 봅시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푸른 별은 언제나 이렇게 생명을 품고 있었던 “심히 보기 좋은(?) 별”이 아니었습니다. 수십억 년 전, 지구는 불타는 용암지대였고, 끊임없는 운석 폭격 속에서 생명의 싹은커녕 안정된 땅덩이조차 없었죠. 말 그대로 지옥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우주를 떠도는 혜성들이 얼음과 유기물을 싣고 도착했으며, 초신성 폭발에서 흩뿌려진 원소들이 대기와 바다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마치 누군가의 정교한 계획처럼 보이지요? 사실은 우주의 창조원리, 즉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가 ‘현실’로 붕괴한 결과였습니다. 양자역학적으로 말하자면, 지구라는 행성은 잠재된 확률의 바닷속에서 하나의 파동함수가 붕괴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이 현실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실체가 드러난 우주와 행성은 고정된 형태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도 또다시 수많은 변동과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펼쳐집니다. 마치 큰 나무가 하나의 씨앗을 남기자, 씨앗이 나무로 자라 수많은 가지를 뻗고 잎과 열매가 생겨나듯이...
빙하기와 간빙기의 교차, 산소 농도의 변화, 대륙 이동,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같은 사건들은 단순히 지구의 환경을 바꾼 요소가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자극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지구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이 단순히 내부적 요인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날아오는 작은 천체들의 영향과 우주적 환경의 교란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태로 유도되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다섯째 날 창조에서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영역을 확장하듯, 소행성과 혜성 같은 작은 천체들도 중력장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지구에 충돌하거나 근접하여 지구의 궤도, 기후, 지형, 화학적 구성까지 미묘하게 흔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구는 마치 전혀 다른 행성으로 변신하듯, 여러 얼굴을 갖게 됩니다. 한때는 불덩이 같은 용암과 화산으로 뒤덮인 시기도 있었고, 다른 시기에는 초거대 파충류와 거대한 곤충이 지배하는 숲과 늪의 왕국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시기에는 해양 생물이 넘쳐나고 산소 농도가 급격히 변화하며 생명체가 빠르게 적응하거나 멸종하는 장면이 반복되었습니다.
모든 변화는 외부 천체들의 자극과 내부 지구의 반응이 맞물리면서 일어난 것이며, 이러한 연속적 자극이 지구를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로 끊임없이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인류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 즉 안정된 기후와 풍부한 식량 자원이 갖춰진 지구는 사실 지구 역사 전체에서 매우 최근에야 나타났습니다. 70만 년 전 전후로 인류의 직계 조상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것도 불과 1만 년 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는 지구가 얼마나 극적이고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야 인간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새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듯, 작은 천체들이 우주 공간을 누비며 지구에 충돌하거나 영향을 주는 그 자유로운 궤도의 움직임이, 지구를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온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성경 속 다섯째 날을 생각해 봅시다. 그날 하늘의 새와 바다의 생물이 등장합니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하늘은 언제나 더 신비롭고 우선적인 영역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람이 불고, 별들이 움직이며, 운명을 점치는 징조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속 서술에서 ‘하늘의 것’이 먼저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시적 장치가 아니라, 우주론적 상상 속에서 하늘이 지닌 우월성과 자유로움을 반영합니다.
특히 새들의 창조는 상징적입니다. 새들은 중력에 묶인 땅 위 생명체와 달리, 하늘을 가르고 이동하며 자유롭게 영역을 확장합니다. 우주적으로 비유하자면, 소행성이나 혜성, 유성 같은 천체들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태양계와 은하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원소와 물질을 옮기고, 때로는 생명의 씨앗을 행성에 뿌리는 존재로 작용합니다. 다섯째 날에 새들이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자유로운 이동성’과 ‘새로운 가능성의 운반자’라는 속성 때문입니다.
바다의 생물 창조 또한 단순한 서술이 아닙니다. 고대 우주론에서 깊은 바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힘, 혼돈의 근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전승에서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현대 우주론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는 우주 구조를 지탱하는 암흑물질과 중력의 그물망을 연상케 합니다. 우주의 심연, 즉 보이드(Void)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 그곳을 둘러싼 필라멘트 구조는 마치 우주의 바다와 그 바닷속 생명체들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다섯째 날 바다 생물의 창조는 곧 우주 심연의 에너지와 질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다섯째 날의 핵심 주제는 ‘다양성’입니다. 우주가 하나의 가능성에서 현실로 드러난 뒤에도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수많은 갈래와 형태, 생명과 사건을 끝없이 창조해 내는 과정. 새들과 바다 생물은 그 다양성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씨앗을 뿌리는 존재들, 우주의 심연에서 코스믹웹을 떠받치는
존재, 두 세계를 대표하는 생명체가 등장함으로써 지구와 우주는 마침내 본격적인 생명의 무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화에 다룰 여섯째 날, 비로소 땅 위를 거닐 생명체와 인간의 등장, 즉 중력장을 운행할 은하들과 "복제 의식"의 등장에 앞서 준비과정인 다섯째 날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의 실체로 드러난 세계가 그 안에서 다시 무한한 가능성을 피워내며, 생명과 우주의 다양성을 꽃피우는 순간. 다섯째 날은 그 거대한 창조의 교향곡 속에서 첫 번째 비상(飛上)과 첫 번째 심연(深淵)의 울림을 선포하는 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는 지구, 사람이 있는 지구
물이 없는 지구, 물이 가득한 지구
차갑게 얼어붙은 지구, 불타오르는 뜨거운 지구
산소가 많은 지구, 질소가 지배적인 지구
공룡이 하늘을 나는 지구,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지구
이 모든 가능성의 지구가 마치 무대 위의 연극처럼,
하나씩 장면을 바꿔가며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코스믹 웹(Cosmic Web),
즉 우주의 거대한 뼈대가 있었습니다.
이 코스믹 웹은 가능성의 무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격이자,
우주가 끝없이 실험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질서의 구조물입니다.
지구는 그 견고한 코스믹 웹 위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하나씩 현실화하며
자신을 완성해 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며,
다섯째 날의 다양성이 의미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