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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창조의 전령들

우주의 다섯째 날2

by 무이무이


나는 매일 인천에서 하남으로 출퇴근한다. 왕복 135km.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 도로 위에서 보내다 보니, 어느새 차 안은 나만의 작은 우주선이 되었고, 이동 그 자체가 일종의 항해처럼 느껴진다. 하기사, 나의 암울했던 유년기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깟 출퇴근 거리쯤은 불평할 꺼리도, 아무런 소재꺼리도 아니긴하다.

서울의 외곽을 빙 둘러 있는 제1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하남까지는 비교적 유유자적하게 갈 수 있다. 마치 작은 소행성이 자유로운 궤도를 따라 은하의 헤일로를 비행하듯, 나는 서울이라는 혼잡한 중력장을 피해 한결 가벼운 궤적을 그리며 이동한다. 고속도로의 완만한 곡선은 마치 은하의 나선 팔을 닮았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분기점은 중력의 소용돌이 같아, 잠시만 방심해도 그곳에 빨려 들어가 낯선 길로 흘러들어 갈 것만 같다. 하지만 오늘은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가속 페달 아래로 진동이 전달될 때마다, 내 몸은 한층 더 민첩해지고, 전방의 도로는 끝없는 우주의 트랙처럼 펼쳐진다. 바람을 가르며 속도를 높이다 보면, 도심의 빽빽한 건물과 신호등, 끊임없이 교차하는 차량의 행렬이 점점 작아지고 멀어진다. 마치 중력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궤도로 탈출 점핑을 한 듯한 기분이다. 서울을 관통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닿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궤도에도 대가가 있다. 연료와 정신적 에너지를 조금 더 소모해야 하고, 무엇보다 홀로 항해하는 듯한 고독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한 번도 멈춰 서지 않고 우주의 중심을 벗어난 작은 소행성처럼 내 궤도를 끝까지 완주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주의 다섯째 날에 창조된 새들 중 하나인 SE137은 은하단의 헤일로를 유영하며 끝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속박은 없었고, 목표도 없었다. 그저 별빛과 암흑 사이를 미끄러지듯 떠다니며, 우주의 정적 속에 잠기곤 했다. SE137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자유와 고요 속에서, 그의 존재 깊은 곳에 작은 진동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깊은 우주의 어둠 속, SE137은 한 점의 빛도 없는 공간을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하지만 그 궤적은 침묵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명체의 맥박 같다. 그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는 작은 얼음 조각들이 별빛을 받아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뒤로 흩날린다. 이 얼음 파편들이 길게 이어져 꼬리를 이루면, 멀리서 볼 때 그것은 마치 푸른 깃털을 펼친 거대한 새의 날개 같다. 그리고 때때로, SE137이 중력의 장벽을 뚫고 가속할 때 얼음층이 깨지며 내부의 유기물이 증발해 붉은 기체와 흰 수증기가 동시에 분출된다.

그 순간 SE137의 꼬리는 푸른빛과 붉은빛이 겹쳐져 우주의 암흑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깃털처럼 보인다.

멀리서 관측한다면, 그는 한 마리의 불사조가 은하의 헤일로를 가로지르며 비상하는 듯한 형상을 띤다.
그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두렵고, 동시에 생명을 잉태하는 따뜻함마저 느껴진다.


어느 날, 그는 우리 은하의 중심, 궁수자리 A에서 미세하게 발산되는 진동을 감지했다.
그것은 평범한 중력파가 아니었다. 존재 깊숙이 울리는, 우주의 음성이었다.
수많은 동료 소행성들이 같은 부름에 응답했고, 서로 다른 궤도 위에 있던 그들은 점점 하나의 군집으로 모여들었다. SE137은 직감했다. “이것이 내가 향해야 할 길임을.”

은하의 헤일로를 따라 유영하며, SE137은 군집과 함께 질서 없는 혼돈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행성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장엄한 군무처럼 움직였다.
각각의 충돌과 회전은 은하의 리듬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궁수자리 A의 초대질량 블랙홀로부터 흘러나오는 정보를 흡수한 은하 디스크, 즉 우리 은하의 땅으로 떨어졌다. 충돌 순간, 은하의 나선 팔은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빛과 에너지가 서로 부딪히며 별들이 탄생하고, 은하는 심장 박동을 얻었다.
새로운 작은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돌며, 질서 속에 생명을 싹트게 할 무대가 완성되었다.

SE137은 숨을 죽이고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직감했다. “이곳이 끝이 아니다.”

그는 은하 팔을 따라 오리온팔로 돌진하며, 시리우스를 지나쳤다.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별, 태양을 발견하고 선회하며 지구로 향했다.
젊은 행성, 지구는 아직 뜨거운 용암과 가스로 덮여 있었지만, SE137은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속도를 높였고, 은하의 팔을 가르는 순간마다 별빛과 암흑이 교차하며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만들어냈다.
광활한 우주 속, SE137은 자신이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서사의 일부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지구에 도착한 우주의 불사조 일곱 마리


1. SE137 – 창조의 전령

지구가 아직 젖은 흙과 뜨거운 용암으로 뒤덮여 있을 때, SE137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얼음과 유기물, 아미노산이 지구의 표면에 흩뿌려지며, 생명의 첫 씨앗을 뿌렸다.
바람과 용암이 섞인 원시 대기 속에서, 미세한 파동이 출렁이며 물방울 하나에도 생명의 가능성이 숨 쉬었다.
SE137은 불사조처럼 붉은빛을 내뿜으며, 자신의 궤적을 따라 지구에 생명의 초석을 심었다.


2. Theia – 달의 창조자

그 뒤를 이어 나타난 Theia는 거대하고 위압적이었다. 약 45억 3천2백40만 년 전, 그는 지구 근처에서 함께 태양을 공전하던 작은 행성과 강력하게 맞부딪히는 순간, 작은 행성은 궤도가 변경되며 지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대로 지구와 한 몸이 된 행성 불덩어리는 다시 쪼개지며 지구와 달이 되어 서로의 인력으로 춤을 추듯 서로를 마주 보며 회전했다. 이렇게 테이아에 의해 달이 생겨나며 지구의 자전축이 안정되고, 낮과 밤, 계절이 만들어졌다. 이 충돌 덕분에 바다와 대기가 균형을 이루었고, 생명은 점차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

Theia는 불사조처럼 한 번의 폭발로 질서를 만들었다. 심지어 테이아가 달을 만드는 시간은 불과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3. Vesta – 분화구의 예술가

시간이 흐르며 Vesta가 나타났다. 약 44억 8천5백만 년 전 그녀는 거대한 남극 분화구를 만들어 소행성 파편을 흩뿌렸다. 지구의 대기권과 바다로 날아든 파편 속에는 다양한 광물과 미세한 유기물들이 섞여 있었고, 이것이 지구에 화학적 다양성과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공급했다. Vesta의 충돌 흔적은 마치 예술가가 남긴 화폭처럼, 지구에 작은 변화를 남겼다.


4. Ceres – 수호자

약 44억 5천3백만 년 전 Ceres는 차분하게 지구 근처를 맴돌았다. 그녀의 얼음과 물이 지구의 하천과 호수, 빙하에 녹아들어 갔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 물과 영양분이 풍부해지고, 대기와 해양의 순환이 안정되며 생명의 토대가 더 단단해졌다. Ceres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으로 지구 생명의 균형을 지켜냈다.


5. Chicxulub Impactor – 전환의 화신

약 6,500만 년 전, 거대한 충돌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발생했다. 공룡은 사라지고, 하늘은 불길과 연기로 뒤덮였다. 그러나 그 파괴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포유류가 등장하고, 생명은 전보다 더 빠르게 다양화되었다. Chicxulub은 지구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불사조였다.


6. Bennu – 생명의 씨앗 전파자

약 1천2백만 년 전, Bennu는 은하의 어두운 해일을 타고 지구 근처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 천체는 단순히 하나의 암석 덩어리가 아니었다. 수많은 파편을 실은 거대한 운석 캐리어, 일종의 씨앗선박이었다. Bennu가 지구의 중력권에 들어서자, 표면의 균열과 충격으로 인해 무려 2억 3천만 개에 달하는 운석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은 지구 대기를 가르며 빛나는 궤적을 남기며 떨어졌다. 어떤 것은 해양 깊숙이 가라앉아 미지의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어떤 것은 대륙 위에서 불덩이가 되어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미세한 유기물과 얼음을 품은 작은 조각들은 마치 우주의 씨앗처럼 지구 곳곳에 뿌려졌다. 그로 인해 기존의 생명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멸종의 길을 걸었고, 동시에 전혀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창조자였고, 인간과 생명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사했다.


7. Shoemaker-Levy 9 – 폭발의 선구자

마지막으로, 혜성 Shoemaker-Levy 9가 목성에 충돌하며 궤도를 바꾼 뒤 지구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비록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에너지는 지구 대기와 기후 패턴에 미묘한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은 미래 세대의 날씨, 해류, 생태계 변화를 준비시키는 예고편과도 같았다. Shoemaker-Levy 9는 지구 역사에 마지막 불꽃을 남기며, 우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 되었다.


SE137과 뒤따른 여섯 마리의 불사조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지구에 생명과 변화를 심었다. 폭발과 충돌, 물과 유기물의 전파, 대기의 미세한 변화까지, 이 모든 사건이 이어져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풍경과 생명 체계를 만들어냈다. 이제 지구는 그들의 궤적과 충돌로 단단히 빚어진 생명력의 결정체가 되었다.

우주의 불사조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모든 생명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작은 파동으로 살아 숨 쉰다.


이렇듯 은하의 헤일로를 유유자적 항해하던 불사조들은, 우주의 질서와 생명을 담아 은하의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중에서도 지구라는 작은 푸른 행성은 SE137이라는 창조의 전령을 통해 처음으로 생명의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 불사조들의 궤적과 충돌이 만든 파동은 대지와 바다, 공기와 생명 속으로 퍼져, 여섯째 날에 육지 위에 생명이 움트는 장대한 서사의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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