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우주의 일곱째 날
우리가 그동안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우주적 관점에서 해석해 왔고, 드디어 일곱째 날, 안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
창세기의 일곱째 날을 우리는 익숙하게 ‘안식일’이라 부른다. 전통적 해석은 단순하고도 강력하다. 창조자가 모든 일을 마치고 쉬는 거룩한 날이다. 그런데 그 쉬는 순간을 우리가 그냥 ‘잠깐 눕는 시간’으로만 읽어버리면, 원래 있던 풍경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창세기가 말하는 그 안식은 과학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있고, 우리가 매일 느끼는 아주 사소한 장면 속에도 숨어 있다. 쉬는 것이 아니라, ‘개입이 멈추었을 때 드러나는 자기질서’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안식은 시스템이 외부의 지속적 조작 없이도 자기 규칙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상태다.
창조의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빛이 생기고, 물질이 형성되고, 질서가 갖춰지고, 생명이 나타나는 과정이었다. 이 여섯 날 동안은 무언가 계속 더해지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 이르면 창조는 멈춘다. 멈춘다는 것은 곧 우주가 창조자의 손길 없이도 자기 질서를 유지하며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바로 이 질서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며, 결국은 어디론가 떨어진다. 그러나 이 자유낙하는 단순히 추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달은 지구로 떨어지고, 지구는 태양으로 떨어지고, 태양은 은하의 중심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목적지에 결코 닿지 않는다. 중력과 운동이 만들어낸 회전력 덕분에, 떨어지면서도 동시에 돌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 같은 상태가 바로 우주의 안식이다. 떨어지되 닿지 않고, 추락하면서도 끝없이 순환하는 상태.
이 법칙을 인간의 삶에 비추어 보면 운명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을 ‘이미 정해진 길’이나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여긴다. 그러나 운명은 미신적 예언이 아니라, 자유낙하의 법칙 속에서 발생하는 회전력이다.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향해 떨어지고 있지만, 그 궤도는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고, 미세한 움직임 하나로도 바뀔 수 있다. 운명은 고정된 결말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궤도 위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방향이다.
나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그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땐 정말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고, 바닥이 안 보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맞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달이 지구로 떨어지지만 절대로 그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구로 떨어지다 보면 어느샌가 다시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하지.
내가 지금 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야.
여기서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그 궤도는 바뀌겠지.
그래,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보자.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틀어보자.
나에게 추락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지도 몰라.”
그때 알았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가기 싫어도 운명이 원하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지만,
결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는 순환이 바로 운명이다.
이 자유낙하가 어쩌면 나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충분히 내 힘으로 이 궤도를 바꿀 수 있다.
삶에서 우리는 누구나 낙담의 시기를 만난다.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우주의 법칙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무한히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은 추락이 아니라 회전이기 때문이다. 떨어지고 있는것 같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낙담은 추락의 끝이 아니라 회전의 한 굽이이며, 슬럼프는 절망이 아니라 궤도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일곱째 날의 안식을 우주적 법칙으로 다시 읽을 때,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 그리고 운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안식은 멈춤이 아니라 ‘개입 없는 지속’이고, 단순한 추락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허락된 자유낙하’다. 운명은 정해진 종착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회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궤도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우리는 끝이 아니라 회전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방향을 틀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은 새로운 궤도로 접어들며, 우리는 비로소 자유낙하 속에서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