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떡볶이
검은 건 짜장이오, 하얀 건 떡이라.
학교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 피아노 학원. 두 번째 미술학원. 세 번째 태권도 학원. 그중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당첨됐다. 정문을 나와 장미넝쿨이 감긴 연두색 펜스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모퉁이 상가에 자리하고 있는 조그만 학원이었다. 원장선생님 한 명과 20대 중반 정도 되는 선생님 한 분으로 총 두 명이 운영하셨다. 내부는 좁은데 피아노가 하나씩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벽지가 발린 방이 여러 개라 130cm의 눈으로 보면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의 추억은 대부분 학원에 있다. 후문 분식집에서 오렌지 슬러쉬를 사 온 친구가 있으면 '너도 B형이야? 그러면 마셔도 돼.'라는 허락을 받기도 하고, 같은 디자인의 슬리퍼를 내 거인 줄 착각해 다시 와 달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계이름을 다 맞혀서 빨간색 달팽이 모양을 받으면 오전 받아쓰기에서 깎였던 점수에 침울해졌던 마음이 다 날아갔다. 학생들이 유독 몰리는 날이나 콩쿠르 시즌이 되면 한 방에서 두 명씩 번갈아 연습을 해 서로의 연습장에 그려진 사과, 포도, 애벌레 10 마리를 하나씩 차감해 주며 새 친구를 사귀었다.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함박눈 예보가 내렸다. 선생님들은 내일은 눈이 많이 온다고 하니 하루만 수업 대신 눈사람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간식으로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눈과 떡볶이를 만난다는 설렘에 밤잠을 설치며 투명한 냉기에 코가 쨍해지는 아침 방울 달린 목도리를 고쳐 매고 방수 장갑도 꼭꼭 꼈다. 2배 마시멜로를 위해 참는 아이처럼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바른생활을 공부하니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빙판길을 짧은 달리로 건너뛰며 피아노 학원으로 내달렸다.
노란 셀로판지처럼 투명한 햇빛이 밤새 두텁게 쌓인 눈을 살짝 녹여 뭉치기에 딱 적당했다. 흙과 돌멩이가 없는 깨끗한 곳을 찾아 눈이불을 돌돌 굴려 큰 눈공위에 작은 눈공을 올려 눈사람을 만들고, 젓가락질 연습에 쓰였던 검은콩으로 얼굴을 생성한다. 양쪽에 눈을 꽁꽁 빚어 만두머리를 해주고 분홍색 리본을 달아주기도 했다. 선생님 두 분의 지휘아래 머리, 배, 몸통이 있는 키가 큰 눈사람 하나, 머리와 몸통만 있는 키가 작은 눈사람 하나를 문지기처럼 학원 앞에 세워두고 잔뜩 빨개진 볼을 한 채로 학원으로 들어갔다.
눈이 잔뜩 묻은 장갑과 부츠를 터는 동안 선생님들은 떡볶이를 데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추위에 잔뜩 상기되어 데친 토마토의 형태가 된 땡글한 얼굴들을 보며 꺄르르 웃는 동안 커다란 접시에 담긴 빨간 떡볶이와 까만 떡볶이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을 이끈 것은 빨강보다 더 강렬한 블랙홀 같은 까만 떡볶이였다. 지금이야 다양한 떡볶이 프랜차이즈와 찜닭 브랜드에서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이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을 위해 흔하게 출시하는 메뉴이지만 나는 짜장 떡볶이라는 것을 여기 피아노 학원에서 난생처음 보았다.
짜장이 골고루 스며든 기다란 떡볶이는 꼭 피아노의 검은색 건반처럼 보였다. 포크로 쿡 찌르면 샵(#)과 플랫(b)의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잘게 다진 베이컨과 양파가 잔뜩 들어간 짜장 떡볶이는 짭짤하고 달콤해 어린이의 미각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떡 역시 빠져있는 이빨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잔반 없는 수요일 특식으로 나오는 짜장밥보다 맛있었다. 이런 맛있음을 이제야 알다니, 그동안 떡볶이를 고추장으로만 정의했던 나를 반성했다. 분명 나는 세 개 정도 집어먹은 것 같은데 친구들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금세 동이 났다. 가루짜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쓰신 걸까. 선생님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걸까. 비닐봉지에 꽤 오랜 시간 있었을 텐데 떡이 불어 터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학교가 기초학력을 담당한다면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은 아이들의 정서를 담당했다. 어디든 1학년은 직전 단계와 차이가 별로 없다. 즉 유치원생에서 키만 조금 자란 상태란 말이다. 와르르 몰려오는 조랭이떡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분투했던 선생님들. 청춘의 나이인데도 체력이 바닥을 기는 나로서는 그저 그 시절의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해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기 위한 연구까지 하셨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때 그 피아노 학원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궁금하다. 선생님들이 만들어주신 추억 덕분에 여전히 겨울의 눈과 떡볶이를 기다리는 어른으로 자란 제자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