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늙지 않는 별, 장국영을 다시 부르며
매년 4월이 되면 무심코 달력을 본다.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가벼운 농담 뒤에 숨어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 하나를 떠올리기 위해서다.
장국영. 그가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진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나의 10대, 20대는 그와 함께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보여준 그 쓸쓸한 정서가 나의 청춘을 지배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홍콩 영화는 우리 세대의 교과서였다.
친구들이 주윤발의 트렌치코트와 성냥개비에 열광할 때, 나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장국영을 보았다.
그는 영웅이면서도 늘 위태로워 보였다. <영웅본색>의 송아걸은 정의를 외치지만 어딘가 결핍되어 있었고,
<천녀유혼>의 영채신은 순수해서 더 애처로웠다.
남들은 그를 '꽃미남 스타'라 불렀지만, 내 눈에 비친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길을 잃은 소년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정서였다.
막 성인이 되어 군 입대를 앞두고, 혹은 사회라는 정글에 막 발을 들이던 90년대의 우리들에게
그의 불안한 눈빛은 묘한 동질감을 주었다.
1989년, 그가 찍은 초콜릿 광고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To You"라는 CF가 나오면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광고 속 모습조차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빗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돌아서던 그 뒷모습.
당시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그는 우리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위로했지만,
정작 본인은 위로받지 못한 채 외로움 속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들어 다시 본 <아비정전>은 사뭇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10대 때는 그 대사가 그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직장 생활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린 지금, 그 대사는 비수처럼 꽂힌다.
쉴 곳 없이 날개짓을 해야만 하는 운명. 어쩌면 그건 '아비'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그는 <해피 투게더>나 <패왕별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파괴하고 전시했다.
배우로서의 정점이었겠지만, 인간 장국영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떠났고, 홍콩 영화의 시대도 저물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중년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데, 화면 속 그는 여전히 스물, 서른의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다.
그 불공평함이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고맙다.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가장 뜨거웠던 내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펼쳐볼 수 있으니까.
내년에도 4월의 바람이 불 것이다. 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이 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떠올린다.
화려한 스타가 아닌, 그저 외로움을 많이 탔던 한 남자인 그를 말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발 없는 새가 되어 떠돌지 말고, 편안하게 깃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