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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의 박물관

프롤로그(연재 예고)

by 유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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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건 늘 비슷한 방식으로 사라집니다.


소리가 먼저 줄고, 다음엔 냄새가 옅어지고, 마지막으로는 “그게 원래 있었나?” 하는 표정만 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허전함이 아니라, 어색함이 먼저 찾아옵니다. 익숙했던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생활은 멀쩡히 굴러가는데, 마음 한쪽만 살짝 헛도는 느낌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그 헛도는 감각을 모아 둔 작은 박물관입니다.


1980~90년대에 분명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지금은 희미해진 것들. 공중전화의 수화기, 동전의 온도, 연필로 되감던 테이프, 현상소 봉투 속에 며칠을 눕혀 두던 24장의 시간, 외상 장부의 공백 같은 풍경들이요. 여기서 전시되는 것은 물건이지만, 진짜로 기록하고 싶은 것은 그 물건이 가능하게 했던 마음의 문법입니다. 기다림, 예절, 망설임, 신뢰. 빠르지 않아도 괜찮았던 속도 말입니다.


매 회차는 독립된 이야기로 열립니다. 주인공도, 장소도, 사연도 조금씩 다릅니다. 다만 하나는 같습니다. 모두가 어떤 “사라짐” 앞에서 잠깐 멈춰 서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멈춤이 끝나고 나면, 독자분들 마음에도 비슷한 질문 하나가 남았으면 합니다.

없어진 것들 틈에서, 아직 남아 있는 마음은 무엇인지. 곧 전시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루에 두 편씩, 열 편의 단정한 전시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첫 전시품은 아마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공중전화의 동전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연재는 ‘통금의 추억’입니다. 저도 기억은 가물하지만,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 시절의 장면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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