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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상사병'에 걸린 그들

'상사'라는 이름의 까다로운 '내부 고객' 응대 매뉴얼

by 유블리안


이 글은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아닌, 우리를 지키기 위한 기록입니다.
존경하기 힘든 상사 앞에서 매일 무너지는 직장인들에게, 이 글이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직장 생활 27 차. 그동안 수많은 상사를 거쳐 갔다.


개중에는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갔을까?" 싶은 사람이 아주 조금 더 많았다.


​능력이 없으면 인품이라도 훌륭하든가, 인품이 별로면 업무 능력이라도 탁월하든가.


슬프게도 최악의 상사는 이 두 가지 미덕을 모두 비켜 간다.

우리는 매일 아침, 존경심이 1g도 생기지 않는 그를 향해

"팀장님, 존경합니다(혹은 사랑합니다)"라는 눈빛을 억지로 발사하며 출근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섣불리 떠나기에 내 월급과 커리어는 너무나 소중한 것을.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그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를 바라보는 '나의 정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멘토를 기대하지 마라, 그는 '고객'이다


​우리가 상사 때문에 괴로운 가장 큰 이유는 무의식 중에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리더라면 배울 점이 있어야지', '상사라면 나를 이끌어줘야지' 하는 기대 말이다.


이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나는 상사를 '나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까다로운 내부 고객'으로 재정의했다.


나는 프로페셔널한 서비스 제공자다. 고객이 인격적으로 훌륭할 필요는 없다.

극히 일부의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인격모독을 해도,

우리는 미소 지으며 응대한다. 그것이 서비스 이자 비즈니스니까 말이다.


​상사가 엉뚱한 지시를 내리면,


'아, 이번 고객님은 요구사항이 참 난해하군. 하지만 원하는 대로 납품해 드려야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 비굴함은 사라지고, 차가운 프로의식만 남는다.



감정의 스위치를 꺼라 (Feat. 영혼 없는 리액션)


​존경할 수 없는 상사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것만큼 가성비 떨어지는 감정 소모는 없다.


그의 짜증, 비꼬는 말투, 변덕스러운 지시를 내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그저 '지나가다 튀는 흙탕물' 정도로 여겨야 한다.


​필요한 것은 '영혼 없는 리액션'과 '정확한 업무 처리'다.



감정을 섞지 말고 팩트 위주로 소통하라.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거나 주눅 드는 대신, 건조하게 기록하고 대응하라.

사무실은 내 자아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 내 생존을 증명하는 곳임을 잊지 말자.



최악의 상사는 최고의 '오답 노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훌륭한 상사보다 최악의 상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처절한 교훈이다.


​"후배의 공을 가로채면 저렇게 경멸받는구나."


​"감정적으로 화풀이하면 조직 전체의 사기가 이렇게 꺾이는구나."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나의 '오답 노트'에 기록해 두자.


먼 훗날(혹은 가까운 미래에)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되었을 때,

이 오답 노트는 나를 꼰대가 되지 않게 막아주는 가장 강력한 예방주사가 될 것이다.


결국 남는 건 '나'다


​상사는 계절처럼 왔다 간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평생 가는 관계는 아니다.


태풍 같은 상사가 지나가면, 가뭄 같은 상사가 오기도 한다.

그 자연재해 같은 흐름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야 할 것은

결국 '나의 평판'과 '나의 실력'이다.


​상사가 싫다고 일을 대충 하면, 망가지는 것은 상사가 아니라 내 커리어다.


그러니 존경할 수 없는 상사 앞에서도 당당하자.

나는 당신을 존경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니까.

​오늘도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팀장님, 존경은 못 해 드려도

납품(업무)은 확실하게 해 드립니다.

자, 결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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