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탐방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손네벨트 하우스(Sonneveld House)다.
학부 시절 전공과 교양에서 수없이 언급된 데 스틸과 더치디자인은 빨강, 노랑, 파랑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작업들이 많아, 오랫동안 네덜란드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 삼원색이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
그런데 교환국으로 네덜란드가 결정된 뒤, 다양한 건축물을 찾아보다가 손네벨트 하우스를 발견했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꽤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스틸과 오렌지색의 조화가 인상적인 거실 사진을 보자마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저장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많은 과제와 다른 나라 여행을 핑계로, 로테르담을 가겠다는 다짐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12월의 추운 어느 날, 드디어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내가 살던 흐로닝언에서 로테르담까지 기차로 약 2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로테르담에 내리자마자 흐로닝언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꽤 놀랐다.
흐로닝언은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도 얼룩무늬 젖소와 양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의 건축 정수의 도시답게 고층 빌딩과 암스테르담이나 흐로닝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의 건물들이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건물들 사이에서도 네덜란드 특유의 디자인스러움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네덜란드에 살면서 소소하게 행복했던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색감이었는데, 네덜란드는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색감을 정말 잘 쓰는 나라였다.
건물이나 가구에서 무채색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난색과 한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완성하는 미감을 보여주었다. 이 나라에서는 무채색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올 화이트 인테리어나 무채색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로테르담에서도 네덜란드 특유의 재치 있는 색감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눈에 거슬릴 포인트가 하나 없는 완벽한 색감의 조합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네덜란드의 색 구경은 나의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손네벨트 하우스로 가는 길조차도 이미 전시의 일부 같은 느낌이었다.
1933년에 지어진 손네벨트 하우스는 기능성과 미학을 동시에 담아낸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기능주의 건축물이다.
손네벨트 하우스를 소개하기 앞서, 네덜란드의 모더니즘과 기능주의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건물이 있는데 바로 로테르담에 위치한 '반 넬레 공장'이다.
반 넬레 공장은 담배, 커피, 차 등의 원재료를 가공하는 공장으로, 이러한 공정을 반영하여 건물 꼭대기에서부터 한 공정을 거칠 때마다 한 층씩 내려오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커튼월과 길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유리 컨베이어는 지금 보아도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다. 게다가 이 건물은 공장 안에서 노동의 사회적 측면을 개선시켰다. 1931년에 완공했을 당시, 반 넬레 공장을 보고 르 코르뷔지에는 이렇게 평가했다.
‘모든 것이 외부를 향해 열려있다. 이는 건물 여덟 개 층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다. … 인간적인 기업 경영의 모든 단계에 개인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반 넬레 공장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반 넬레 공장의 이사가 손네벨트 하우스의 주인인 손네벨트였기 때문이다.
반 넬레 공장을 설계한 건축가 Van der Vlugt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했고, 덕분에 반 넬레 공장에서 적용된 기능주의 개념이 손네벨트 하우스에도 완벽하게 적용되었다.
손네벨트 하우스의 1층은 두 딸을 위한 공간과 하인들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처음 본 공간은 딸들의 서재 공간이었다.
큰 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공간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전체적인 색감이 창밖의 자연과도 잘 어우러져 도저히 1933년의 주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공간에 놓여진 크롬이 들어간 테이블과 의자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산업디자인 회사 gispen에서 제작한 가구이며, 왼쪽에 큰 소파는 건축가 Van der Vlugt가 직접 제작했다. 두 딸은 이 공간에서 음악 감상, 독서, 친구들과 모임을 주로 했다고 한다.
이 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소파이다. 이 소파는 단순한 소파의 기능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양옆에 시스템 스피커와 노브를 내장시켜 이곳에서 재생된 음악이 집안의 모든 공간에서 들리도록 특별히 설계되었다.
손네벨트는 미국 출장 중 머물렀던 고급 호텔에서 다양한 신기능을 일찍 접했는데, 특히 보스턴의 스타틀러 호텔에서 모든 객실에 라디오가 설치된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집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 곳에서 재생한 음악이 집안 전체에 울려 퍼진다는 발상은 지금 봐도 획기적이다.
이처럼 건축가 Van der Vlugt는 손네벨트 가족과 긴밀히 소통하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반영했다.
딸들의 서재를 나오면 하인의 방들이 나온다.
기능주의 건축은 단순히 미적인 측면을 넘어 사회적 개혁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세기 초 유럽의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비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며 기본적인 삶의 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기능주의 건축은 사회 주택과 노동자 계층의 생활 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졌다. ‘공기, 빛, 공간’은 기능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노동자들을 비좁은 집에서 해방시키고 더 건강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손네벨트 또한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단순히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하인들 또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그의 회사인 반 넬레 공장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하인들의 방은 자신들의 방 못지않게 넓고 쾌적하게 설계되었으며, 독립적인 화장실과 위생 시설까지 제공되었다.
처음에는 설명 없이 들어갔을 때 하인의 방인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깔끔하고 쾌적했고, 공간을 통해 건축주의 진보적인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네덜란드에는 샤워 시설을 완벽히 갖춘 집이 드물었는데, 하인의 방과 연결된 화장실을 보니 건축주의 배려가 곧바로 느껴졌다.
욕조 옆에 매립된 비누 받침대나 타일 줄눈과 정확히 맞춘 세면대 선반 같은 디테일은 1930년대 주택 설계에서는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인의 방은 2층의 식당과 지하의 세탁실과도 연결되며, 서비스 동선 역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 집의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실과 서재 공간이 나온다.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이 반영된 건물의 특성이 이 층에서 확인된다. 철골 구조와 콘크리트 바닥으로 구성되어 내력벽이 필요 없었고, 넓은 창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최적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위해 이 층에서는 고정 벽 대신 슬라이딩 패널과 커튼을 사용하여 공간을 나누었다.
필요나 용도에 따라 슬라이딩 벽을 치면 완벽하게 공간이 분리되었는데, 손네벨트는 저녁 시간에 거실과 서재를 구분해 흡연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낮 시간 동안은, 가로로 긴 창을 통해 거실–식당–서재까지 밝은 빛이 한꺼번에 들어와 집 안 전체가 화사했으며, 기능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빛, 공기, 공간 세 가지 요소를 집안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가구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디테일을 볼 수 있었는데, 서재에 놓인 주황색 의자 중 머리 받침대가 있는 것은 남성용, 없는 것은 여성용이었다. 이는 당시 올림머리를 하던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었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단순한 공간의 합리화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자에 맞춘 세밀한 설계로 확장되었다.
서재와 거실을 지나면 다이닝룸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차분했던 베이지 톤의 거실·서재와 달리, 다이닝룸은 노란 바닥과 빨간색 상·하부장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도 고정 벽은 없었고, 커튼으로 공간을 구분할 수 있었다. 큰 창을 통해 환기도 용이했다. (손네벨트 손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 적 할아버지와 공놀이를 하다가 이 다이닝룸의 유리를 종종 깨뜨리곤 했다고 한다.)
식탁 위에 세팅된 형광 노랑의 그릇 세트는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와 그의 제자가 디자인한 ‘Breakfast Service’ 컬렉션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그릇들 덕분에 다이닝룸의 분위기가 한층 더 밝고 화사해졌다고 느꼈다.
다이닝룸을 나오면 작은 세면 시설과, 주방으로부터 음식과 그릇을 준비할 수 있는 개구부가 있었다.
주방은 ‘프랑크푸르트 키친’(1926)을 네덜란드식으로 재해석한 ‘홀란드 키친’으로, 최소한의 동선과 레이아웃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주방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는데, 다이닝룸과 바로 연결된 구조를 보았을 때 음식을 옮기기보다는, 아마도 구매한 식재료를 올리고 내리는 용도로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3층은 가족들의 방과 게스트룸이 있다.
두 딸의 방은 가구 형태나 구조는 같지만, 색상은 완전히 달랐다. 첫째는 파란색을, 둘째는 노란색을 좋아했기에 각자 취향에 맞는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두 방 사이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하인의 방과 구조가 거의 같아서 인상 깊었다.
사업가였던 손네벨트의 집에는 늘 손님이 많았기에, 게스트룸도 꽤 넓었다. 방 안에는 세면대가 놓여 있었고, 붙박이장을 통해 짐을 보관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흰 벽 덕분인지 게스트룸에서는 병원 같은 느낌도 받았다.
손네벨트 부부의 침실은 집 규모에 비해 소박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네벨트 부인을 위한 커다란 화장대였고, 침대는 게스트 룸의 침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실과 드레스룸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여행을 즐기던 부부를 위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큰 트렁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과감한 청록색 타일의 부부 화장실이었다. (건축가도 만류했던 이 독특한 타일 색상은 손네벨트의 취향이었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미국에 출장을 자주 나간 손네벨트는 출장길에 머물던 한 호텔의 샤워기와 마사지기에 충격을 받아 이를 집에도 들여왔다. 화장실에는 두 개의 세면대, 욕조, 그리고 수압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부부가 외출했을 때, 딸들이 몰래 들어와 목욕을 하고 흔적을 지운 뒤 아무 일 없던 듯했던 귀여운 일화도 들었다.
손네벨트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든 생각은 정말 잘 만들어진 현대예술 같다는 것이었다. 공간 분리와 동선, 인테리어와 소품, 기능주의 건축 이론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짜여 있었다.
특히 초기 설계 도면에는 벽면의 색감과 가구의 색감, 소품 위치까지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디테일한 설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 인상 깊었다. 사실 슈뢰더 하우스나 다른 근대 건축물에 비해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실제로 다녀온 경험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오래남는 건축물이다.
1930년대에 지어진 공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감각적인 손네벨트 하우스는 좋은 디자인이 삶에 어떤 울림을 남기는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