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네덜란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3 원색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디자인사의 한 축을 이루는 ‘데스틸(De Stijl)’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어인 데스틸(De Stijl)은 영어로 ‘더 스타일(The Style)’을 의미하며,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고도 불린다. 이는 1917년부터 1931년까지 네덜란드에서 형성된 미술과 건축 분야의 사조로, 당대의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은 디자이너이자 미술 이론가였던 테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 1883–1931)가 발간한 <데 스틸> 잡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몬드리안, 리트펠트 등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하는 장을 만들어냈다.
데스틸의 이론은 크게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형태의 단순화 : 수직과 수평의 직선, 직각 구도
색채의 제한 : 빨강·노랑·파랑의 3 원색과, 검정·흰색·회색의 무채색
동적 평형 : 대칭이 아닌 비대칭 속에서 조화와 균형 추구
당시 회화와 예술의 전통 속에서 원색은 빨강·노랑·파랑(RYB)으로 인식되었으며, 데스틸은 이 RYB 체계를 예술의 ‘순수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초록·주황·보라 같은 혼합색은 배제하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단위인 원색만을 사용함으로써, 개인의 감정을 넘어선 보편적 질서와 조형의 언어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원색 체계는 네덜란드를 넘어, 이후 바우하우스와 현대 디자인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데스틸은 회화와 디자인에서 출발했지만, 그 조형 원리와 색채 이론은 결국 건축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철학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된 곳이 바로 위트레흐트의 ‘슈뢰더 하우스(1924)’다.
버스에서 내려 발밑의 표식을 본 순간, 책 속에서만 보던 그 앞에 내가 실제로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코너 끝에 자리한 슈뢰더 하우스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놀라울 만큼 강렬했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집은 뭔가 다르다고 느낄 만큼 분명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슈뢰더 하우스의 마당 앞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입장 전 잠시 들른 그곳은 내가 지금껏 가본 카페 중 가장 작았다.
창고에 가까운 크기였지만, 파벽돌 마감과 리트펠트의 가구, 그리고 3 원색으로 꾸려진 디테일 덕분에 공간의 밀도가 놀라웠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봄이 되면 개구부를 열어, 슈뢰더 하우스의 마당까지 카페로 확장된다고 했다. 언젠가 그때 다시 와 잔디 위 지그재그 체어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의자에서 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드디어 슈뢰더 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차근차근 구경을 시작했다. 직전에 보았던 손네벨트 하우스의 규모 때문인지, 그 집과 비교하자면 슈뢰더 하우스는 과장되게 작고 소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1920년대에 이런 형태의 주택을 짓도록 허락한 건축주의 진보적인 태도는 그 자체로 놀라웠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 How do you want to live?”
슈뢰더 하우스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리트펠트가 작업하던 위트레흐트의 거리는 이미 질서 정연했다.
인근의 집들은 모두 비슷한 외관을 갖고 있었고, 각 가족의 개별적인 삶보다는 거리 전체의 통일성을 우선시한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면 집들은 깔끔한 하나의 질서로 읽혔지만, 그 속의 삶은 모두 같은 틀 안에 갇혀 있었다.
리트펠트는 그 통일된 거리의 질서 속에서 삶을 다시 정의하고자 했다. 그는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서 펼쳐질 삶의 방식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2층이었다.
탁 트인 시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상층부는 가족의 낮과 밤을 아우르는 생활의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일반적인 주택과 달리 2층에 식사공간, 거실, 침실 등 주요 생활공간을 배치함으로써, 슈뢰더 하우스는 위쪽으로 삶을 끌어올린 것이다.
트루스 슈뢰더는 고정된 벽 대신, 상황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원했다. 리트펠트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2층 전체를 이동식 벽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당시 건축 규정상 주택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한의 구획된 방이 있어야 했다. 열린 평면을 고수한 슈뢰더 하우스의 2층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다락방’으로 등록해야만 했다.
다락방은 규제가 느슨해 벽을 나누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 서류 위에서는 다락방이었지만, 실제로는 가족의 하루가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는 집의 중심이었다.
이동식 벽 덕분에 공간은 순식간에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기도 하고, 다시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합쳐지기도 했다.
고정된 벽을 쌓는 대신, 삶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슈뢰더 하우스는 ‘내부 공간이 외부로 확장되는 새로운 건축’의 실험이었다.
가구 역시 같은 원리를 따랐다. 침대가 접히면 소파가 되었고, 낮에는 덮개와 쿠션을 얹어 거실 가구로 변신했다. 수납은 최소화되었으며, 개인의 소지품은 꼭 필요한 것만 사용되었다. 물건이 공간을 점유하는 대신, 비워진 공간이 삶을 이끄는 방식이었다.
당대 사람들에게 이 집은 너무나도 낯설고 도전적이었다. 트루스 슈뢰더의 딸은 어느 날 울며 집으로 돌아와 “이 미친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두 자매는 좁은 공간을 나누어 쓰는 데다, 낮에는 그마저도 공용공간으로 변했으니 사춘기 소녀에게는 충분히 예민하게 다가올 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네덜란드 최초의 여성 건축가 중 한 명이 되어 리트펠트와 함께 일했다.
슈뢰더 하우스의 철학은 외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직선과 직각만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매스를 다양한 방향으로 분절시켜, 마치 몬드리안의 회화를 건축적으로 확장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입면은 평면적인 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깊이를 가진 면들과 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입체적 구성이다. 여기에 빨강·노랑·파랑의 원색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어 구조적 요소를 강조하고, 흰색·회색·검정의 무채색이 배경이 되어 균형을 잡는다.
이러한 원리는 곧 데스틸이 추구했던 조형 언어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고, 직선과 원색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로 보편적 질서를 표현하려 했던 데스틸의 이념이 슈뢰더 하우스에서 건축적 형태와 생활공간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데스틸이라는 사조가 회화와 가구의 경계를 넘어 실제 삶으로 옮겨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