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건 그저 외로움 때문일까?

# 봉득씨 이야기

by 제이비

취직해서 처음 맡은 업무 중 하나가 김치 배달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포장된 김치가 담긴 비닐봉지를 120가정에 가져다주는 일이다.

나중에 비닐봉지에서 종이상자로 바뀌긴 했지만, 포장의 형태가 바뀐다고 일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김치는 발효식품이고, 120가정을 돌려면 사회복지사보다 택배기사의 마인드 셋을 갖춰야 한다.

그 시절,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김치 배송원이었고, 매일매일은 도시락 배송원이었다.

어떤 서비스든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비로소 집으로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김치든 도시락이든 받는 분들은 의식주가 풍족할 리 없고, 기본적으론 거동이 쉽지 않다.



김치를 배달하러 갔던 집들의 대다수는 임대아파트이거나 쾌쾌한 곰팡내로 코끝이 매운 다세대 반지하 혹은 3층이다. 그때는 대체로 현관이 열려있고, 불러야 사람이 나오기 일쑤였다.

사는 사람이 현관 나오기도 쉽지 않아서, 개인정보보호니, 사적공간이니 따지다가는 일이 되질 않는다.

보통은 대답하든 말든 문을 열고 들어가 냉장고에 김치를 넣어주는 그것까지가 배송의 끝이다.

한 120집 정도를 매달 그렇게 하고 나면, 사람이 좀 무감각해진다.



김봉득 씨는 그런 의미에서 신입 사회복지사였던 나에게 좀 신기한 사람이었다. 아니 신기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이 몹시 이질적이었다. 매번 잠긴 현관문에 김치를 걸어둬야 했으니까.

그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매일 집에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사람에게 김치를 굳이 배달해 줄 필요가 있나?

그러나 원래 신입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작은 의문을 뒤로 한 채 나는 성실하게 매 달 한 번씩 김봉득 씨네 집 현관에 김치를 걸어두었고, 우리는 6개월간 단 여섯 묶음의 김치로 연결된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정의감으로 포장된 나의 의심과 함께. 비로소 봉득 씨 얼굴을 본 건 6개월 뒤다. 의심은 확신이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봉득 씨는 사지 멀쩡한 중장년이자, 구 단위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나 같은 1년 차 사회복지사 나부랭이와 안면을 틀 이유가 딱히 없을 정도로.

복지관의 서비스 중에는 영원토록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김치도 그랬다. 지역의 어느 고마운 교회에서 몇 년이나 후원해 주던 김치는 어느 날 갑자기 후원금이 끊어졌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김치는 비싸고 복지관은 가난하다. 김치가 싼데 복지관이 부자라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김봉득 씨는 노발대발했지만, 화를 낸다고 김치가 어디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쉬우면 복지가 뭐 그리 어려울까?. 애초에 그가 매번 집에 없으면서도 김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구청 사무실에서 거하게 한판 자진모리장단을 춘 덕분이긴 했지만, 그건 한 번쯤 되는 일이지, 지속되지 않는 방식이다.


복지관에선 김치가 끊긴 이후로도 어쨌든 봉득 씨를 도와주긴 했다.

가스레인지도 없고, 자전거도 없는 봉득 씨는 늘 필요한 것들이 머릿속에 둥실 떠오르는 사람이고 또 자신의 욕망을 돈이 생길 때까지 인내할 정도로 성숙하신 분은 아니다. 결과적으론 복지관과 구청과 동주민센터가 배구공 토스 훈련 하듯이 그분을 떠넘겼다. 아..아니 보살폈다.



주로 구청과 주민센터 쪽으로 갔던 공이 몇 년 전부터는 복지관 쪽으로 넘어왔는지, 봉득 씨는 최근 복지관을 자주 찾는다. 그는 60대가 되었고, 이제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데 나이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도 적극적인 태도로 상담에 임하는 편이다.



하루에 소주를 얼마나 마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때론 데이터로 증빙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가 취해있지 않을 때도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난 20년간 술 냄새가 나지 않는 봉득 씨와 대화를 나눈 때가 거의 없다. 다행히도 간은 튼튼하신 것 같다.

봉득 씨가 취했건 말았건, 하는 일이 그런 일인 사회복지사들은 봉득 씨가 올 때마다 한 시간씩 붙잡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음주 후 양치를 하지 않으면 구취가 난다. 술 땀 냄새와 함께. 근무 환경이 실시간으로 안 좋아진다.



한 시간은 아마도 봉득 씨가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마지노선인 것 같다. 신기하게도 한 시간 이내에 대화를 끝낼 수도 없고, 한 시간 이상은 잘 이어지지도 않는다. 애초에 대화가 아니기도하고...

다만, 자주 와서 한 시간씩 말하려면 주제가 달라질 리 없다. 우리는 돌림노래를 배우는 어린이가 된다. 사회복지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김봉득 씨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신기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그 옛날의 김치를 기억해 내기도 했다. 물론 나라는 존재가 아닌 현관에 걸려있던 김치를 기억한 거지만, 약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24봉지의 김치를 현관에 매달아 놓고 갔을 뿐, 얼굴은 그래봐야 두 번쯤 본 사회복지사를 십여 년 뒤에 기억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또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반가워하기도 하고, 그때 김치를 준 사람이냐며 새삼 친밀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어떻게 떠올리는 걸까?

나는 오직 24봉지의 김치만으로 그의 경계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

그의 외로움은 시절 인연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덜어지는 걸까?

최근의 그를 마주하면 여러 생각이 든다.


평생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며 멋대로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개과천선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언제라도 복지관에 와서 뿔난 휘파람새 마냥 또 한 시간 동안 돌림노래를 불러제낄 것 같다.

그의 외로움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상담을 핑계로 사회복지사들을 신경쇠약 직전까지 가도록 하기 일쑤고, 하는 말마다 언어 폭력과 성희롱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사회복지사들은 보통 이런 상황을 참거나, 참다가 일을 그만뒀다. 다른 방법이랄게 마땅히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우리도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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