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사치

by 민교

인생길은 누구나 멀다


아침 산책길에 지나는 노인복지관 앞엔 복지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노인이 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찌는 듯한 더위도 무시하고서 3시간가량을 기다리는 그 마음은 어떨까.


지켜본 건 아닌데, 오랫동안 혼자였다. 시간이 지나 한 두 분이 더 계실 때도, 서너 분이 계실 때도 있지만, 거의 혼자였다. 인상도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발음도 분명했는데, 가까운 공원에 갔다가 와도 문이 열리려면 시간이 남아 안타까웠다. 느 일요일, 복지관 근처의 가게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지팡이가 보였다. 누구랄 것 없이 저분도 삶이 녹록지 않았으리라.



♧ 하여사는


한 곳에 오래 가면 굳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고도

인사를 할 수 있다. 집에 오는 방향이 같아서 말을

하게 된 하여사는 여든이 가깝다는데, 정말 60대

후반으로 보인다. 균형 잡힌 몸도 그렇고, 옷도,

생각도 젊다. 가끔은 혼자 기차를 타고 가까운 곳에 다녀오기도 한다는 하여사의 살아온 이야기는 참 어른의 모습이다.


하여사와 하여사보다 연배인 김여사와 셋이 벤치에 앉았는데, 김여사가 평소와 다르게 아우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서 속이 많이 상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팔순이 넘은 남편이 아직도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마구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두 사람이 일을 하는데, 어지럼증으로 잠깐 쉬었다 하자니까, 빨리 일을 마치고 술자리에 가고 싶었던 남편이 소리를 지르면서 하던 일을 바닥에 던지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일은 한 때는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주문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일이었다. 일이 까다롭고 예민한 남편과 한 조를 이루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


하여사는 김여사의 넋두리를 듣고 집으로 오다 혼잣말하듯

"그래도 싸울 남편 있는 게 낫지. 나는 싸울 남편이 어딨었노. 스물둘에 시집가 스물여섯에 아들, 딸 낳고 방 좀 넓혀간다고 낮밤이 없었는데,

자고 났더니 갔더라고."

너무 덤덤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충격이었다. 스물여섯이라니! 나는 그 나이에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이 지겨워 어찌 알게 된 유럽 횡단열차를 탈 궁리를 했었다. 하여사는 국제시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했다. 남매를 결혼시키고 일흔에 자유부인이 되어 예쁜 옷도 사고, 이곳저곳 가는 게 최고의 낙이라고 했다. 바쁜 자식들이 엄마를 여러 곳으로 모시고 가지는 못해도 멀리 사는 친손녀가 할머니 집에 와서 응석 부리고 갈 때가 제일 좋다는 하여사님의 젊고 건강한 사고방식이 좋다.



♧ 백수건달이라


집이 가까워 가끔 국제시장에서 길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파시는 분이 다른 분이 오시자, 하여사를 '백수건달'이라고 했다. 백수건달이라니.

젊었을 때 그 고생을 하고, 여든이 가까운 데도

여기저기 다니시는 모습에 백수건달이라는 말은 놀라웠다. 거기서 커피나 다른 차를 마시는 분들은

서로 자신이 계산한다면서 돈을 꺼냈다. 급하게 차를 마시면서도 일 이야기만 하는 초로의 여인들은 건강해 보였지만, 하여사는 '저 사람들은

죽는 게 쉬는 거다.'라고 했다. 같이 힘든 시간을 헤쳐온 많은 이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 일손은 모자라도


아침, 나이보다 한층 젊어 보이는 하여사는 아는 사람이 알바 소개해준다고 했다면서 씁쓰레이 웃었다. 국제시장의 여러 식당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노고로 이어지지만, 50이 넘으면 손이 늦어서 식당일도 못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손에도 수요공급이 맞질 않는데, 팔순이 가까워도 쉼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라니.



♧ 한 달 살이 가는 친구


많은 생각이 오가는 금요일, 또래 친구는 동남아 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고 추석연휴가 지나서 만나자고 한다. 친구야, 재밌는 한 달 살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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