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바람 / 강소이

긴 추석 연휴가 이제 점을 찍으려 한다. 전도 부치지 않고, 며칠째 책상 앞에 앉아 몇 달 동안 써모은 시를 정리하고 편집을 마무리했다. 등짝이 아프고, 전자파로 눈도 아프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몰입한 것일까?


이 가을이 익어가는 게 쓸쓸하지 않도록,

가을 제단에 시를 바치면

시 항아리에 시로 가득 채우면

쓸쓸하지 않을 거라고 외우면서

나는 묵주기도도 건너뛰고,

미친 듯이 시를 쓰고 정리까지 마쳤다.


시를 쓰는 동지를 불러 편집본을 보여주었다. 뿌듯하다.

그러나, 기도를 게을리했다고 고해성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아들이 내게 놀린다. 글바람이 나서 도서관에만 찾아가는 우리 엄마! 그래서 얼굴이 동안이신가? 추석에 전도 안 부쳐주시고...


글바람이라는 말.

시인의 아들이라 신조어를 창조하는 능력이 탁월하네!

글바람...

참 기분 좋은 말이다.

춤바람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치마바람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복부인이 아나라서 다행이고.

정주영 현대그룹 총수 보다, 윤동주 시인이 더 멋진 걸 어쩌겠냐? 복부인이 되지 않고 시인이 되어서 다행이다. 여기서 "인"은 둘 다 사람 "인"자를 쓰는데, 나는 복부인이 되어 외제차를 타고, 샤넬 핸드백 살 돈이면, 책을 내겠네. 그리고 도서관마다 비치해서 많은 이들이 읽게 하겠네.

그게 나의 꿈이고 이 세상에 온 나의 아리따운 여정이라네. 이런 결을 가진 친구들이 내 곁에 모여 주었으면.... 좋은 친구, 글펜을 많이 가진,

사람 부자 되고 싶은 가을.

가을이 또 익어간다.

연휴 내내 가을비가 여러 번 내렸으니, 내일 아침 미사 때는 포도주색 베레모를 써도 될 만큼 쌀쌀할 것이다.


주님, 이 가을에도 더 성숙해지게 하소서.

한 구절이라도 좋으니,

누구에게나 공감받을 시 한 알 낳게 하소서.

아멘


** 참으로 철이 없습니다**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쌀도 되지 않고 밥이 되지 않는 시를 왜 쓰냐고요. 그 시간에 한푼리라도 더 벌으라고요.

누군가 꾸짖을지도 모르죠.ㅠㅠ


그렇죠. 윤동주 시인은 10원도 벌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합니까? 정주영 회장은 엄청나게 버셨을 텐데... 경제의 귀재이셨을 텐데. 그런 분도

있으셔야죠.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윤동주 같은 이도 있어야죠. 예술혼을 위해서는... 신께서는 누구도 칭찬하지 않으실지도 모르죠. 신께서는 얌전히 주님만 따르는 이를 예뻐하시겠죠?

신이시여,

글바람 나서 기도를 게을리하는

베레모 시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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