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나는 딸, 아들, 딸, 딸, 딸, 아들로 이루어진 형제들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머니와 부모님, 형제들, 몇 년씩 묵고 가는 먼 친척들까지 함께 살았다.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있었고, 집 안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겉으로 보기엔 따뜻한 대가족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늘 외로운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너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분명 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제일 좋은 병원에 가서 널 낳았지.
그런데 딸이라서 엄청 실망했단다.”
엄마는 그 일로 할머니에게 많이 혼났고,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에게 짐이었구나.'
엄마는 막내인 남동생과 셋째 언니를 유독 더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늘 엄마 마음속에서 가장 먼 자리에 있는 아이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감정은 단 하나였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버지는 종갓집 장남이었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신 할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평소에는 자상하고 자식들을 아끼는 분이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에게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크게 혼났다.
엄마도, 형제들도 예외는 없었고, 밥상이 엎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조용히 숨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이 내가 익힌 생존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그렇게 혼낸 적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당하지 않기 위해’ 늘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철저히 조용하게, 더 얌전하게,
나를 감추는 법을 배워가며 버텼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너무나 차가운 존재였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늘 두려운 존재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나로 버티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인정받고 싶은 간절함은 있었지만
차가움과 강력한 통제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야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버티는 일이
내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 모든 서러움과 외로움,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조차도
결국 나를 ‘나답게 살아내는 법’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버틴다.
다만 예전처럼 억지로 참으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사랑하기 위해
버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것이 나의 ‘버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