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꽃밭
서천꽃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위치한 꽃밭으로 망자들이 극락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날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산자인 나는 그 길을 찾아갈 수가 없다.
소백산 칼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제2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을 향해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비로봉 일대에 연중 매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부는 칼바람 때문에 그 일대에는 나무가 살 수가 없다. 허허벌판에 천상의 화원이라 할 만큼 야생화가 지천이다.
가장 유명한 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야생철쭉이다. 꽃이 만개하면, 어쩌면 이곳이 서천꽃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본다.
심령사진이 다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며 찍어보는 거다.
지상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불어오는 천상의 칼바람은 내 영혼을 구속하고 있는 육신으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주고, 어쩌면 서천꽃밭으로 날려 보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칼바람이 불어온다.
집구석에 처박혀 글만 쓰다 보면 소백산 칼바람이 몹시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의 모든 글자는 구슬이다. 천년의 마음으로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 서천꽃밭으로 보내는 이 사무친 그리움은 야생철쭉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잊은 지 오래된 한 사람의 얼굴은 분홍색 철쭉꽃을 무척이나 닮았다.
구슬을 꿰고 또 꿰다 지쳐 술에 취하면 비로봉을 향해 가는 길 허허 들판 철쭉군락지 앞에서 만개한 꽃들 중에 분홍색 꽃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때 등 뒤로 불어오는 소백산 칼바람을 맞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진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6층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프기만 할 거 같다.
소백산을 좋아한다. 산 이름부터가 좋다. 약초가 많이 나는 약산이라 좋고 사람 하나 살려보겠다고 어떻게 연결된 심마니를 따라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았기에 다른 산보다 애정이 깊어서인지, 나는 소백산을 좋아한다.
기암절벽보다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 소백산은 울 엄마 품을 무척이나 닮았다.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비로봉을 향해 가는 길, 칼바람이 불어오는 이곳 철쭉군락지가 서천꽃밭이라면 그래도 너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는 있는 거라 다행이다.
하지만 칼바람에 섞어 보낸 내 울부짖음을 들었다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갔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