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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스타이즈본 레퍼런스

by 임경주


크리스마스 악몽을 함께하고 있는 12분의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약물중독환자 집중치료실.

진우의 아내가 펜을 들고 환자의 머리맡에 서 있다. 몹시 짜증 난 표정이다. 환자 진우의 턱 밑 가슴에는 이혼서류와 함께 재산상속에 관한 서류가 놓여 있다. 진우는 서명을 거부하고 있지만 그의 아들이 엄마가 들고 있던 펜을 가져와 강제로 진우의 손에 쥐게 하고 서명을 강요한다.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마약부작용으로 인해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서류의 서명란에 제대로 된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엄마? 아빠 약 때문에 손에 힘이 하나도 없나 봐. 안 돼.”

“손에 힘이 없어 못하면 입으로라도 하게 해.”

“아? 그런 방법이?”

진우의 아내가 말하자 아들이 진우의 입에 펜을 물리고는 기어코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만족한 표정으로 병실을 떠나는 모녀의 등을 향해 진우가 말한다.

“여보, 여기 내 옆으로 가까이 와봐.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춥다. 춥다는 말도 부족하다. 온 몸의 뼈가 다 시릴 정도다. 약물부작용으로 인한 지독한 한기가 진우를 괴롭히고 있다.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죽으면 끝날까?

진우의 부인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다시는 볼 일 없으니 마지막 청이라도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들은 그냥 병실 밖으로 나가며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재산 상속받았다고 말하는데 잔뜩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뭐야, 할 말이.”

“한글 말이야. 한글의 개수는 총 스물네 개야.”

그놈의 글. 그놈의 글이 우리 부부를 이렇게 만들었다.

“네, 그래서요?”

“자음이 열 두자 모음이 열자. 여기에서 쌍자모와 복합 자모까지 더하면 조합 가능한 글자 수는 일만 개로 늘어나.”

“네네.”

진우가 기침을 터트린다. 한번 터진 기침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터져 나왔다.

지겨운 인간. 도대체 언제 끝나나. 진우의 아내가 몹시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본다. 그저 무관심하다. 진우의 기침이 멈췄다.

“난 서은이가 이 글자들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좋아. 특히 이야기를 만들 때는 있잖아? 자유자재야. 거침이 없어. 옆에서 보고 있으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아이고, 그러셨어요?”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나. 잊히지가 않아.”

“네, 알겠습니다. 더는 못 들어주겠네요, 그럼 이만.”

진우의 아내가 시팔 하며 등을 돌리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진우가 통쾌하다는 듯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한다. 억지로 짜내고 있는 웃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새어 나온다. 진우의 기억은 서은을 처음 만났던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진우는 알코올 중독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남긴 주정뱅이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잔인한 폭력의 트라우마는 진우를 스타작가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글이 팔릴수록, 유명해질수록 고독과 불안은 깊어졌다. 술 없이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성공적인 사인회를 끝낸 그날도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목적지 없이 거리를 마냥 걷던 진우의 발걸음은 낡은 동네 서점 앞에서 멈추어 선다. 창가에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조는 한 여자를 보았다. 운명의 시작이었다.

서은, 실마리 서(緖)와 은혜 은(恩)의 조합은 모든 일의 좋은 실마리를 찾아 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그녀의 친할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처럼 그녀는 조용하고 부서질 듯 창백한 얼굴로 졸음을 이기고 나면 수첩에 무언가를 써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녀가 어떤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도대체 뭔 자신감일까? 진우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지만 유리를 거울삼아 긴 머리를 정돈하고 정신이 맑아진 척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뒤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풍경이 머리 위에서 울린다.

“어서 오세요.”

서은이 진우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머리를 수차례 털고 눈을 손등으로 비비는 것도 모자라 너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진우를 보고 또 본다.

진우는 곧장 책을 찾아 나선다. 딱히 없다. 그냥 들어왔다. 서은이 계산대에서 일어선다. 책꽂이를 사이로, 책을 정리하는 척, 책이 빈 공간을 통해 진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너무 놀라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서은이 행여나 발자국소리라도 들릴까 발끝을 세워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계산대로 돌아와 앉았다.

방금 전까지 읽었던 진우의 히트작 위에 올려둔 자신의 수첩을 내려다본다. 도대체 이 용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것일까?

“저기요.”

진우가 책을 찾고 있는데, 아니 찾고 있는 척하는데 서은이 옆으로 다가가 자신이 쓴 동화를 조심스럽게 건네준다. 그녀의 주문이다. 아몰랑.

“아무도 안 읽어줘요. 너무 유치한가 봐요. 그래도… 저는 이 세상에 어떤 빛을 보여주고 싶은데… 함 봐봐요.”

서은이 계산대로 도망쳐 버린다. 진우는 무심코 첫 페이지를 펼쳤다. 거친 폭력과 술 냄새 속에서 자란 진우에게 서은의 동화는 충격이었다. 섬세하고, 따뜻하며, 놀라울 정도로 천진난만한 천재성이 번뜩였다. 진우는 그 노트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잠깐이나마 걷어낼 수 있었다.

“저기요.”

“네?”

눈이 마주쳤다.

“아니에요.”

“….”

“저기요?”

“네…?”

“저 혹시 아세요?”

“알죠. 유명작가님이시잖아요.”

“그래서 보여준 거예요?”

“아니 그냥…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잘 썼어요. 정말 잘 썼어요. 저 깜짝 놀랐어요.”

“정말요?”

“네. 너무 좋은 글이네요.”

“와.”

진우가 서은이 건네준 수첩을 돌려주지 않고 진열된 책꽂이에 꽂았다. 서은의 수첩 옆에는 누구나 다 아는 대작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꽂혀 있다. 서은의 수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오노, 안돼요.”

서은이 달려와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 진우가 앞을 막아섰다.

“충분해요.”

서은이 진우의 어깨 너머로 자신의 수첩위치를 확인하기 바쁘다. 진우는 그런 서은이 너무 귀엽다. 진우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은이 불을 끄고 셔터를 내렸다. 진우는 그림자처럼 서은의 뒤에 서 있다.

“와, 대작가님께서 제가 뭐라고 세 시간씩이나 기다려주시고. 지금 이거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죠?”

“무슨 상황이긴요. 커피 한잔 사주시기로 했잖아요. 왜 좋은 글인지 고수의 가르침을 받는 대가로. 그래서 기다렸는데?”

“그러니까요. 이게 정말 뭔 일일까요?”

서은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황송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진우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저기요, 서은작가님?”

“네?”

“그거 다시 한 번 더.”

“네? 이거요?”

서은이 합장을 한 번 더 한다. 진우가 활짝 웃었다.

“이게 뭐가 좋아요? 뭐 원하신다면 얼마든지요.”

서은이 또 합장을 하자 진우도 따라서 합장을 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두 사람이 깔깔깔 웃는다.

누군가에게 매혹되는 것은 번개가 치듯 한순간이다. 그 한순간이 일 년, 때로는 십 년, 때로는 사람의 평생을 지배한다.

“작가는요, 뭘 어렵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서은이 진우를 똑바로 올려다본다. 가로등에 비친 진우의 갈색눈동자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가였다.

“근데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서은이 뭘 훔쳐보다 걸린 사람처럼 재빨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무 생각 안했는데요?”

“에이, 무슨 생각을 한 것 같던데.”

“음… 이를 테면?”

진우가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아, 왜요? 이를 테면?”

서은이 다시 묻는다. 서은도 지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이다.

“이 동네에 내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는지.”

“이를 테면?”

“세 시간씩이나 기다려 주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지.”

“이를 테면?”

“어떻게 글을 그렇게 잘 쓰는지.”

“이를 테면?”

“음….”

진우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한다. 서은이 멍하니 서 있더니 물개박수를 치며 소리 내어 깔깔깔 웃어버린다. 지금 두 사람은 진우의 히트작에 나온 남녀주인공의 이를 테면 대사를 따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 가시죠.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모실까요?”

“시원한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서은이 앞장섰다. 진우가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한가한 커피숍에서 진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탁자모서리에 밀어놓았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누가 지나가다가 살짝만 잘못 건드려도 떨어져 깨질 것만 같았다.

“불안하게 커피를 왜 거기 두세요.”

“이게 작가의 자세라고나 할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거 떨어져서 깨지면 수습하기 참 곤란하죠. 유리는 유리대로 쏟은 커피는 커피대로 치우는 사람은 치우는 사람대로 지켜보는 사람은 지켜보는 사람대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일어났으니 모두가 다 피곤하죠.”

“그러니까 그걸 왜 거기 두시냐고요. 술도 살짝 덜 깨신 것 같은데.”

“맞아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상황자체를 만들지 않죠. 하지만 작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커피 좀 안쪽으로 두면 안 될까요? 불안해서 무슨 얘기를 못하겠어요.”

“네.”

진우가 웃으며 커피를 탁자 중앙에 놓았다. 서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자기 커피를 진우처럼 모서리 끝까지 밀어본다. 아슬아슬하다. 이제는 진우가 말리고 싶다.

“일부러 이런 삶은 사신다는 건가요?”

“일부러는 아니고요.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불안한 자세에서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있죠? 전 의문인데요?”

“사람 나름이겠죠. 아무튼 전 그래요.”

서은이 위태로운 유리컵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조금만 더 밀어볼까? 깨지면 어때? 커피 좀 쏟으면 어때? 그런다고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이 뭐가 크게 달라지나? 아니야, 실수라면 모를까 일부러 이런 짓을 한다는 건 치우는 사람을 무시하고 죄를 짓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때였다.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님?”

진우가 턱을 괴고 서은을 지켜보던 그 자세 그대로 깊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서은이 그 모습에 풋, 하고 웃고 말았다.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도,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진우가 운전하는 차안에서도 서은은 글을 쓰고 또 썼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 웨이팅이 길어 줄을 서고 있는 동안에도 서은은 글을 썼고 진우는 그녀의 집중하는 모습을 애정이 듬뿍 담긴 얼굴로 지켜보았다. 진우의 가장 큰 행복은 하루를 마감하기 전 서은이 써내려간 글을 읽어보는 것이었다. 진우의 아낌없는 칭찬은 서은에게 큰 힘이었다. 더욱 더 분발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글쓰기 여행은 오직 서은의 작품완성을 위한 것이었고 그 시간은 한 달간 이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초판에서 진우의 히트작을 훌쩍 뛰어 넘었고 무려 6개월 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서은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천재성이 발현되며 거침없는 글쓰기 행보가 시작되었다.

드라마 판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방송편성이 이루어졌고 국내 유명한 배우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출연을 결정지었다. 서은의 천재성은 상업문학을 초월해 진입장벽이 높은 순수문학까지도 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그 높은 문을 허물고 들어간다. 국내 순수문학의 선두를 자랑하는 일간문학에서 서은의 작품을 인정해 등단과 함께 지면을 허락해준 것이다.

서은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림자로 머무르고 있는 진우는 서은에게 말하지 않았던 작업을 몰래 진행 중이었다.

그 작업은 굉장히 오래되었다. 서은이 해낸 것처럼 일간문학을 통해 순수문학작가로 등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은은 알고 있었다. 글쓰기 여행 도중 진우가 잠든 사이에 우연히 보고 말았다. 진우가 상업문학으로는 성공했지만 순수문학을 통한 정식 등단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었는지를 그 때 알게 된 것이다.

서은이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받는 날이었다.

“먼저 저희 일간문학을 아껴주시고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회신이 늦어 죄송합니다. 편집부는 한 달에 걸친 내부토의를 통해 무척 공들여 쓰신 원고로 그 의견을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송한 말씀을 전하게 되어 무척 송구스럽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저희 일간문학의 출판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출간이 어렵겠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작가님의 글이 저희 일간문학과는 인연이 없지만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진우는 일간문학에서 거절통보를 받고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서은이 빛이 되어 나아가는 동안 진우는 어둠 속으로 잠식되어 갔는데 마약에도 이미 손을 대고 있는 상태였다.

서은을 만난 지 1년 6개월이 되었다. 그 1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서은은 베스트셀러를 냈고, 드라마작가가 되었으며 거기에 진우가 평생 동안 뚫지 못하고 있는 일간문학을 단 한 번에 뚫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난 도대체 뭐란 말인가?

술과 마약 그리고 담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진우는 서은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지금 어디에요? 빨리 오세요! 저랑 같이 상 받아야죠!”

“그래, 그래. 축하해. 정말 축하해.”

진우는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조차도 모르겠다. 눈을 뜨니 빛이 너무 강하다. 스펙트럼처럼 눈 속으로 들어와 박혔다. 거울파편이 눈 속 깊숙이 박혀 빠지질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깨진다. 함께 일하는 편집자가 집으로 찾아와 운전을 해주어서 그나마 청룡영화제 시상식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는 있었다.

이미 방송연예기자들은 진우와 서은과의 관계를 불륜으로 대서특필한 상태였고, 이 때부터 진우의 부부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각본상 작가로 서은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서은이 스타배우들과 함께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박수를 받으며 일어서지만 무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진우를 찾는다.

서은이 더 늦을까봐 무대 위로 올라가 수상소감을 말한다. 진우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이 먼저다. 그 때 진우가 비틀거리며 실내로 들어와 무대 위의 화려한 빛 서은을 보았다.

너무 좋다. 너무 예쁘고 대견하다.

서은이 손짓을 한다. 작가님! 하며 소리치며 빨리 여기로 오라고 그런다. 진우는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눈이 부시다. 눈 속에 깨진 거울이 박혀 있다. 한발 앞으로 내딛는 것도 힘들다.

어떻게 무대 위로 올라와 서은의 옆에 서있는지 모르겠다. 서은이 울먹이며 진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또 전하는 그 때였다.

사람들이 모두 다 놀라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진우가 바지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이곳은 다시 약물중독환자 집중치료실이다.

이혼을 당하고 가진 재산을 모두 넘기고 홀로 남은 진우 앞에 서은이 찾아왔다. 드라마 후속 작도 대박이 터져 너무나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은은 일간문학에서도 새로운 작품을 하나 써달라는 요청에 3일 째 잠을 못자고 있다. 겨우 시간을 만들어 진우를 찾아온 것이다.

“으이그. 내가 작가님 땜에 진짜 못살아.”

“나 추워. 너무 추워.”

서은이 자신의 코트를 벗어 진우의 어깨에 감싸주었다. 진우가 서은을 보며 그저 좋아서 웃고만 있다.

“콱! 그냥. 사과 안 해요? 빨랑 사과부터 해요.”

“미안해.”

“정말 미안하긴 해요?”

“이를 테면?”

“됐거든요? 정말 미안하면 다시 일어나서 글 쓰세요. 그러면 봐줄게요.”

“나 이제 못 쓸 거 같은데.”

“엄살떨기는.”

“나 진짜 못써. 쓰기도 싫고.”

“밥은 먹었어요?”

“아니. 입맛도 없어. 술 좀 사주라. 돈도 많이 벌잖아.”

“네, 갑시다. 같이 술 먹고 그냥 확 죽읍시다.”

“죽어도 내가 죽지 우리 예쁜 서은작가님이 왜 죽어.”

“작가님.”

“응?”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작가님을 힘들게 해요?”

“나도 몰라.”

“아무튼 다시 일어나서 글 쓰세요. 안 그러면 다신 안 봐요. 저 엄청 바쁜 사람이거든요? 저 다시 보고 싶으면 꼭 글 쓰세요.”

진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서은의 전화기가 울렸다. 드라마감독의 전화인데 배우가 딴죽을 건대나 어쩐대나 이런 대사 치고 싶지 않다고 버티고 있대나 어쩐대나.

“알았어요. 제가 바로 갈게요. 금방 가요. 네.”

서은이 전화를 끊고 진우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가봐. 엄청 바쁘네.”

“작가님. 저랑 약속해요. 꼭 다시 일어서서 좋은 글 써주세요. 자, 약속요.”

서은이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진우가 그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엄지로 도장까지 찍었다. 손바닥을 스치며 카피.

“이거 복사했으니까 나중에 딴 말하면 소송 걸 겁니다.”

서은이 가방을 챙겨들고는 밖으로 나간다.

“서은아.”

진우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네?”

“코트.”

“춥다면서요. 저 바로 차타니까 괜찮아요. 덮고 계세요.”

서은이 재빨리 병실 문을 열고 나간다.

“서은아.”

“네네?”

서은이 멈춰서더니 다시 뒤돌아보았다.

“다시 보고 싶어서.”

“아, 네.”

서은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해보였다. 진우가 활짝 웃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사실 진우는 서은이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받을 때 실수한 것으로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있었고, 그 죄책감을 덜어내는 길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병실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 글을 썼다. 일간문학에 보냈다. 하지만 또 다시 퇴짜를 맞은 상태였다.

작가님의 글은 저희 일간문학의 출간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안 되는 걸까? 서은은 단 한 번에 해낸 일을 나는 왜 평생을 바쳐도 안 되는 걸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서은의 출판사 편집자가 진우를 찾아왔었다.

그 편집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떠나라. 서은작가 옆에 있지 말고 어디 해외로 나가라. 비행기 티켓은 마련해주겠다. 그러니 떠나라.

청룡영화제 시상식 후유증이 너무나도 크다. 출판사도 서은작가도 그 손해가 막심하다. 독자들이 반품에 정신적인 손해배상까지 요청하고 있고 어떤 독자들은 더러워서 못 보겠다며 두 사람의 불륜을 소송까지 끌고 가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했다.

진우는 또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떠나라. 서은작가 옆에 있지 말고 떠나라. 편집자의 말이 귀속에서 왱왱거린다.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엄마가 허리띠로 목을 메달아 죽었다. 진우가 서은의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로 병실 밖으로 나간다.

지하주차장, 자신의 차를 발견하고 올라타 세상 밖으로 탈출하듯 병원을 빠져나갔다.

동해바다를 향해 달린다.

서은과 함께 했던 한 달 간의 글쓰기 여행의 추억이 담긴 펜션을 찾아갔다.

주인장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함께 밥을 주었던 들 고양이도 그대로다.

다시 써볼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끝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서은의 편집자다. 떠나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수습하고 있는지 알기나 아냐.

진우가 다시 차에 올라타 숨겨둔 약을 찾는다. 글로브박스에 약과 함께 항상 준비하고 있었던 허리띠를 집어 들었다.

운전석 문이 열렸다.

약봉지가 떨어져 내린다. 허리띠를 바닥에 질질 끌고 비틀거리며 펜션 안으로 들어가는 진우의 뒤로 서은과 함께 먹을 것을 주었던 들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다.

같은 시간, 일간문학 편집부에서는 서은을 불러 출간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서은이 편집자들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멍한 표정만 짓고 있다.

“작가님? 무슨 생각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출간 일정이 잡혔다. 서은이 꾹 참고 있던 말을 기어코 꺼내고 말았다.

“진우작가님 여기에 투고를 꽤 오래 한 걸로 알아요.”

“네, 맞아요.”

“왜 안 되는 건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왜 안 되다니요?”

“네. 왜 안 되는 거냐고요.”

“아니, 작가님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요?”

“여보세요! 지금 이게 질문 같지도 않아요?”

“아니 작가님! 잠깐만요. 그런 말이 아니라 안 되니까 안 되는 건데 왜 안 되냐고 물으시면 저희가 뭐라고 대답 하냐고요. 근데 지금 말씀하시는데 가시가 있네요.”

“왜 안 되냐고요 왜! 왜!”

서은이 울먹인다.

“말해드려요?”

편집자도 화가 났다.

“네! 말해보세요!”

“그 작가는 죄다 카피에요. 두 분 불륜... 아니 연인이시니까 잘 알잖아요? 진우작가 히트한 작품들 보면 전부 다 남의 것 새로 고쳐 쓴 거라고요. 문학은요,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불륜 아니거든요? 연인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건 카피가 아니라 레퍼런스고요! 뭐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거에 대해 뭐 제대로 해명이나 한 번 하셨어요? 솔직히 우리도 작가님 모시는 거 난처해요.”

“아 그 얘기는 됐고요! 그래서 안 해주는 거였어요? 문학이 도대체 뭐죠?”

편집자가 대답하지 못한다.

“쥐뿔도 모르면서! 글 한 줄 써보라면 쩔쩔 매는 사람들이! 누가 뭘 복사했다고!”

서은이 결국 울먹이던 끝에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


진우의 장례식이 끝난 홍천화장터.

서은이 진우의 가족 곁에 머물지 못하고 몇 걸음 뒤에서 망자를 보낸다.

진우의 부인이 서은에게 다가왔다.

“고인이 된 사람 명예도 좀 생각합시다. 보니까 기자들 몇 명 따라왔네. 도대체 머릿속에 생각이 있긴 합니까? 도대체 글 쓴다는 사람들은 왜 이러나 모르겠네, 정말.”

“사모님도 이미 남 아닌가요?”

“참 어린 사람이 터진 주둥아리라고. 거 잠깐 몸 섞은 사람이랑 평생 몸 섞고 산 사람이랑 같아요? 이혼은 했어도 남은 가족들 관계도 있고 하니까 좋게 보내드립시다. 그만 가주세요.”

“사모님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네요. 작가님이랑 저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요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볼 걸 그랬네요. 안 믿어지죠? 믿고 싶지도 않겠죠?”

진우의 부인이 서은을 위 아래로 내려다본다. 딱 봐도 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이봐요 젊은 아가씨. 꼭 몸을 섞어야 바람인 줄 알아요? 부부는요, 남에게 마음만 주어도 바람인 겁니다. 이런 건 글 한 줄 쓸 줄 모르는 나처럼 무식한 여편네도 잘 아는 사실이고요. 알겠어요?”

진우의 부인이 뒤돌아서려다가 한마디 더 한다.

“거 뭐라더라? 그 양반이 그랬는데.”

서은이 더 듣기 싫어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음만 주어도 바람이라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한글이 총 일만 자인데 그걸 댁이 그렇게도 자유자재로 다룬대나 어쩐다나.”

“네? 일만 자요?”

“뭐 암튼 옛 방식들이 다 사라지고 있는데 그쪽이 글자 다루는 방식들이 너무 좋답니다. 사랑스럽고 예쁘다나. 암튼 울 전남편 대신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고 그러세요. 의심해서 미안하네요. 그럼, 이만.”

서은이 홀로 남았다.

화장을 하고 남은 유골은 납골당에 모신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차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화장터 위 먼 산 위로 산안개가 피어오른다. 갑자기 진우가 서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은아.

왜?

다시 보고 싶어서.

서은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려다 그만 무너져 엉엉 울고 만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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