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어디에서나 흐르고 만날 수 있거늘
도봉산 중턱,
외팔이는 고양이들에게 이끌려 무작정 걸어왔다. 거대민달팽이가 뚫어놓은 동굴 앞에서, 외팔이는 잠시 머뭇거린다. 고양이들은 갓 난 아기처럼 울부짖으며, 동굴 안으로 외팔이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팔이는 들어가질 못한다. 고양이들을 따라 함께 울부짖는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소년이 나타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외팔이 앞으로 다가온다. 여덟 살, 아니면 아홉 살 되어 보이는 미소년이었다. 외팔이는 소년을 향해 잇몸을 드러내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소년은 겁도 없이 손을 들어, 외팔이를 진정시키며 다가온다.
“괜찮아요. 해치지 않아요. 기억을 되찾아 드릴게요. 전, 당신 편이에요.”
소년은 매우 허약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선량한 미소가 확인될 정도로 착하고 순하게 생겼다. 그 천사 같은 소년 뒤에는 낡은 가사에 장삼을 걸친 노승이 서있었다. 고슴도치들이 밤송이처럼 스님 주변에 깔려 있다.
스님은 손에 들고 있던 중절모를 외팔이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순간, 외팔이는 보았다. 소년과 꼭 닮은 대머리 소년이 그들 뒤에서 뱀의 눈을 반짝이며, 뱀의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을.
***
기인이든, 혈인이든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떠난 뒤, 단비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가끔 아빠가 면도 후에 사용했던 스킨을 열어 멍한 표정으로 냄새를 맡았다. 단비도 따라 했다. 아빠의 냄새까지도 그리웠다. 고양이 울음소리도 그리웠다.
단비는 아빠가 생각날 때면 피아노를 쳤다. 힘들 때면 더욱더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엄마는 지쳐갔지만 어린 단비는 지친 엄마를 일으켜 세우며, -유리가 깨진 엄마의 사진을 다시 벽에 걸고- 피아노에 파고들었다. 꿈을 잃지 말라던 아빠의 글을 항상 품에 안고 다녔다. 어디선가 아빠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고양이 울음소리가 단비를 항상 따라다녔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한 여름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 속으로도 스며들어왔다.
여름이 되면 대문 밖 골목길에는 양쪽으로 봉선화 꽃이 길게 피었다. 단비는 꽉 찬 봉선화 씨앗주머니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 터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빠는 단비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한낮의 모기를 손부채로 쫓아 주었다.
단비는 몇 시간이고, 골목을 다 뒤지며 봉선화 씨앗을 터트렸다. 아빠는 일단 단비가 무엇인가에 심취하기 시작하면 일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그것이 질리도록 배려해 주었다.
단비는 대문을 빠져나와 골목길을 걸을 때면, 추억을 떠올린다. 혹시나 모기에 물릴까 봐, 뒤에서 몇 시간이고 손 부채질을 해주던 아빠. 좋아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게 해 주고, 응원해 주고 박수를 쳐주며 깊이 있게 빠져들게 배려해 주던 아빠.
단비의 일상에는 항상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이 있었다. 그 추억 속으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스며들어온 것이다.
추억과 함께, 그리움과 함께, 단비는 피아노에 파고들었다. 단비는 피아노가 좋았다. 갈수록 좋아졌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결국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단비는 작은 아빠 집에서 살아가게 되었는데, 형편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단비는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를 더 이상 칠 수가 없게 되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단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포기하고 기인사냥꾼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악하고 교활하게 괴롭히며 부려먹던, 사촌형제 둘을 입원시킬 만큼 두들겨 패주었고(품에 간직하던 아빠의 편지를 빼앗아 찢어버린 일로 단비는 터져 버렸다), 그날 학교에서도 3학년 선배 세 명을 구타해 입원시켰다.
집에 돌아온 날, 골목길에는 여전히 그때의 봉선화 꽃이 지고 있었고, 씨앗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단비는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앞을 무심코 지나친다.
세월은 어디에서나 흐르고 만날 수 있다 했거늘, 어찌할까……. 단비는 기억을 붙잡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12년 전에 일어난 일, 이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이상유전자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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