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 시절.
강원도 평창에 엄마는 3남 5녀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7살이 되던 해부터, 두 살 터울에 넷째 이모와
함께 농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여린 피부가 햇빛에 타고
뽀얀 손톱이 흙에 물들어 갔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이모와 엄마는 계절마다
어린 3명의 동생들 밥을 챙기며
아주 작은 손으로 키운 농작물과 소를 팔아
남은 가족의 결혼식과 학비를 댔다고 했다.
어릴 적 농작물 기계에 엄마는
손가락이 끼는 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인해 손가락 검지 하나가 반 이상이 없다.
그 당시 응급 처치라는 게 없고,
가까운 병원도 없었던 시절
피만 멎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고 했다.
엄마는 손가락 하나가 불편한다고 느끼기는커녕.
당차고 멋진 사람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불편함이 없어도.
자기는 일을 잘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음식 솜씨도 끝내준다.
물론 현재도 맛있다.
사고 얘기도 내가 이해할 만 나이가 돼서야
엄마는 내게 얘기해 줬다.
그렇게 시골에서 자라던 엄마는
여름이면 도로 건너편에 1 급수 강에 사는 다슬기를 잡고
겨울에는 집 뒤 산에서 포댓자루로 썰매를 탔다고 했다.
그러다 1 급수 강에서 어릴 적 물에 뜬 시체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중학생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와.
사촌과 그 강 근처만 가도 소리를 빼액하고 질렀다.
엄마의 성황에 못 이긴
아빠가 대신 잡아주겠다 해서 나는 돌아왔고
호되게 혼이 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 쓰는 거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엄마는
중학생이 되었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에 학비를 못 내고 그만 자퇴했다.
그 이유는
이모까지 시집을 가고 난 뒤
아래 여동생은 곱게 키우겠다는 할머니의 뜻에
엄마는
모든 농사일을 혼자 했다고 한다.
그러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지내던
엄마는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는 것
유일한 즐거움이자 취미가 되었다고 했다.
문뜩 나와의 추억 얘기를 시작하면.
항상 나오는 얘기다.
엄마의 엽서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걸 들은 정취자들이 답신을 보내왔다면서 가끔 흥분하면서 말했다.
"러브레터도 받았고"
"국문과 대학도 지원해 준다고 했어"
항상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 20개가 넘는
우편을 갖고 오자,
가까이 살던 큰 외삼촌한테 걸렸고,
식모살이처럼 살던 엄마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그동안 엽서로 모은 돈을 챙기고 짐을 싸서
밤 중에 가족들 몰래 서울 버스를 탔다고 했다.
이때의 엄마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엄마는
옆 좌석에 우연히 앉은 또래 여자 말을 걸어왔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추전 했다고 했다.
덕분에 입사했지만,
지낼 곳 이 없던 엄마에게
사장님 내외는
창고로 쓰던 방을 쓸 수 있게 내줬다고 했다.
그 당시 사모님은 초등학생 선생이셨고,
엄마의 엽서에 감탄해.
엄마의 공부를 도와주셨다고 했다.
어느 한 출근길.
엄마는 아빠를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