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첫째 아이의 엄마로.

엄마라는 이름의 두 글자.

by dodamgaon


아빠를 만난다는 사실에

회사. 동료분들이

전부 주위에서 만류도 하면서

다른 사람 소개를 시켜준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엄마의 말을 못 믿던

나는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 봤다.


그제야 눈이 커지면서

엄마의 얘기를 믿게 됐다.


사진 속

아빠는 구쟁이 모습 그 자체였다.

항상 아빠의 사진에는

친구들이 없는 적이 없는

인싸 중에 인싸였다.


나는 엄마를 보며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럼, 왜 결혼했어?"


딸의 질문에 엄마는

회사를 가기 위해 회사 옆 기숙사를 지나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창문에서 보던 은 시절에 아빠가

같은 방을 쓰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들렸다고 했다.


"저 여자, 내가 찜했다."


나로선 지금의 아빠를 보고 있니,

믿을 수 없는 행동과 말투였다.


'도대체 어디가 멋있었을까?'


엄마에게 엄청난 구애를 하던

아빠는 급기야

자그마한 하마 인형을 만들어

엄마에게 건넸다고 했다.


그렇게 둘의 연애는 시작됐,

하마 인형은 아직도

집에 있다.


시골 소녀는 점차 서울 소녀가 되어갔고,

서울 소년은 점차 순한 소년이 되었다.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에게

"어디 좀 같이 가자"하고 데려갔다고 했다.


단독 주택에 도착해.

엄마가 물어보니,

친구 아들 돌잔치라고 하면서 데려왔는데.

가보니. 아빠의 온 가족을 만나는 첫날이 되었다고 했다.


아빠의 부모님,

즉 할아버지, 할머니는

처음 보자마자.

엄마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23살 부모님은

할머니의 요청에 빠르게 결혼했고,

그렇게 아빠(부모님)의 집에서 살게 됐다고 했다.


일과 집안일을 하던 24살에 마는

내 위에 누가 들어선지도 른 채 아픔을 호소했고,

결국 떠나보냈다고 했다.


24살 일 밖에 몰랐던 엄마는 울음조차 삼켰다고 했다.


25살, 주위에서 애 안 낳냐는 말을 들었던

에게 첫째, 바로 내가 들어섰다.


엄마는 또 내가 들어섰는지도 모른 채 지냈고,

그러다 엄마의 배를 유심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단박에 아빠에게


"네 아내 임신 한 거 같다.! 얼른 가서 사와라!"


했고, 그제야 아빠는 밖으로 뛰쳐나가,

어렵게 하나를 사 왔고,

그 덕에

내 부모님은 날 가질 건 알아차렸고 했다.


할머니는 그 사실에 엄청 기뻐하셨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보름도 안 돼서

늦게 암이 말기까지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아픔 속에 눈을 감기 전

엄마에게 금붙이를 선물하시고,

끝내

날 보지도 못한 채 하늘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점차 자라기 시작하자,

엄마는 회사를 뒀고,

아빠는 돈을 더 주는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렇게 세 식구는 빠의 회사가 있는

강원도로 이사를 가게 됐다.


두 분은 날 위해 무엇이든 사주고자,

더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진 첩, 어린 내 모습은

하나 같이 전부 안 웃는 사진이 없다.


그 후. 2년 뒤 내 밑으로 동생이 태어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원도 시골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