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외롭지만 가장 우아하게 '트와일라잇 존'을 건너는 법
긴 다리 휘청이며 윤슬 긋는 왜가리
여울마다 붉은 물결
노랗게 바래 가는 기억들
...
영화 <애수(Waterloo Bridge)> 속, 안개 낀 워털루 다리 위로 사라지던 비비안 리의 트렌치코트 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독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고독을 무섭거나 외로운 것, 혹은 그 양면을 모두 가진 하나의 감정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타인에게 위압감을 주어 스스로를 격리하는 강인함, 속수무책으로 슬픔에 잠기는 쓸쓸함. 고독은 이렇듯 강함과 가련함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외롭니?
말을 걸자하니
미련 없이 후두득....
패션의 관점에서 트렌치코트는 강함과 연약함의 양극단을 통과해 마침내 투명해지는 '고독의 진화'를 상징합니다.
본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참호(Trench) 속에서 태어난 이 옷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 위한 생존의 도구였습니다.
영화 <애수>에서 비비안 리가 입었던 트렌치코트 역시, 전쟁의 상흔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를 강해 보이게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더욱 가련한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죠.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기까지, 트렌치코트는 '비극적 외로움'을 넘어 '고독한 당당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독과 시크함이 만나는 맑은 경계,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
제가 말하는 트와일라잇 존은 거창한 신비의 세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안개 낀 워털루 다리 위처럼, 때로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잠시 격리하는 '투명한 고독의 공간' 같은 곳이죠.
두려움(위압)과 외로움(상실)이 서로의 몸을 섞으며 정화되는 지점. 그 맑고 투명한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진짜 나'를 만나게 됩니다.
최근의 하이엔드 런웨이는 더 이상 고독을 무겁게 다루지 않습니다.
물결처럼 찰랑이는 실크나 비침이 있는 소재를 활용해 고독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도 하죠.
고독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관통해 버리는 기술. 그것이 우리가 트와일라잇 존을 건너는 세련된 방식입니다.
그러나 라코스테(Lacoste)의 2026 FW 컬렉션을 보면, 이러한 트렌치코트도 변천하고 있습니다.
라코스테는 이번 컬렉션에서 단순한 외투를 넘어, 악천후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고무 코팅 기술과 수작업 테이핑 등
매킨토시(Mackintosh)의 정통 방수 기술력에 라코스테의 우아함을 결합해, 실루엣과 소재의 진화를 눈앞에 보여줬죠.
오버사이즈 핏, 툭 떨어지는 어깨선, 이중 레이어 구조. 발수 가공된 코튼 개버딘이나 울 블렌드 소재를 사용해 유연하고 활동성 높은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디자인.
100년 전의 스토리텔링과 현대적인 하이테크 소재를 믹스매치하여 기능성 아우터를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우아하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물론, 스포티한 무드가 워낙 강하다 보니 정통 프렌치 시크 스타일의 클래식함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다소 거리가 멀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트렌치코트의 낯선 변주곡은, 어쩌면 현대의 풍요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또 다른 형태의 고독'을 나타내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워털루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때로는 휘청이는 왜가리처럼 불안하고, 때로는 삼키지 못한 사랑의 파편들에 찔려 아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음꽃 위에 시리게 새겨진 기다림 끝에는 반드시 맑은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제, 너무 깊은 곳까지는 몰라도 됩니다.
어찌 됐든 내일은 맑고 투명할 테니까요.
당신의 트렌치코트는 무서운 무기도, 외로운 섬도 아닌,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안락한 집이 되어 줍니다.
트와일라잇 존을 건너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당당함.
오늘 당신이 세운 코트의 깃이 그 눈부신 경계선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 너무 깊은 것까지는 몰라도 돼
어찌 됐든, 내일은 맑고 투명한 날
그리움의 끝이 보이는 날
- 시: 유수연, <그렇게 외롭진 않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