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절규 – 삼켜진 공포

붉게 물든 하늘, 들키고 싶지 않던 혼란

by 루안

붉게 물든 하늘, 감정의 이름을 붙이다


저 멀리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해가 지는 저녁, 평범한 다리 위에서 그는 문득 발밑이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감정시화첩》은 그런 순간을 붙잡는다.

명화 속에 남겨진 심장의 떨림을 바라보며,

그 그림을 그렸던 사람의 고백에 귀 기울이는 기록.


오늘 내가 이름 붙여줄 감정은,

뭉크의 붓끝에 남겨진 하늘의 절규 – 삼켜진 공포다.



하늘이 비명을 지르던 날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바라볼 때면 단숨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붉게 소용돌이치는 하늘, 비틀린 강변, 멀리 걷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앞에서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인물.


그 인물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세상이 지르는 비명을 듣고 있는 걸까.


1893년, 뭉크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다.

그 순간 그는 “자연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라고 기록했다.


그림 속에서 나는 하늘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막으려 손으로 귀를 덮지만,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진동은 막을 수 없다.


그가 그린 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이 덮쳐오는 순간의 심장 박동이었다.



‘삼켜진 공포’라는 감정


이 그림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인물이 아니라 배경 때문이다.

하늘은 평범한 노을빛이 아니라 불길하고 이질적인 붉음으로 물들어 있다.

그 속에 서 있는 인물은 공포를 외치는 동시에, 그 공포에 삼켜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순간을 맞는다.

갑작스러운 불안, 설명할 수 없는 압박,

아무 일도 없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그럴 때,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안의 색만 변해버린다.


뭉크는 그 순간을 ‘절규’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것을 ‘삼켜진 공포’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니라, 공포가 나를 집어삼키는듯한.



그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림 속 인물에게 다가가 속삭이고 싶다.

"그 소리를 다 막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쩌면 그는 외부의 소리를 막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서 솟구치는 소리를 막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귀를 막고, 눈을 부릅뜨고,

온몸으로 세상의 떨림을 견디는 시간.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지만 그 순간, 마음은 홀로이지 않았을까.

세상과 단절된 채, 온몸으로 밀려드는 떨림을 견디며

이 고립의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10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고백은 여전히 우리를 덮친다.

마치 우리의 불안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공포가 머문 자리에도, 숨은 남는다


어떤 날은 세상이 너무 크게 들린다.

작은 발자국 소리도, 바람 부는 소리도

모두 나를 향한 경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날을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때는 귀를 막아도 좋고,

눈을 감아도 괜찮다.

다만, 그 순간에도 숨을 잊지 말자.


삼켜진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작게, 그러나 꾸준히 들리는 숨소리는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이 글을 마치며,

그날의 붉은 하늘과 떨림을 남겨준 뭉크에게,

그리고 오늘을 견디는 우리 모두에게 짧은 시 한 편을 건넵니다.


하늘이 울부짖던 날

그 절규는 붓끝을 넘어
나의 숨결까지 번져왔다

그날의 떨림을
붓끝에 새겨 남겨준 당신

당신의 그 흔적이

오늘의 우리를

절망 속에 갇히지 않게 한다.




함께한 작품 :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퍼블릭 도메인 (WebMuseum at ibib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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