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생각합니다]#2. 시간 효율의 측면에서 자전거 바라보기
자덕.
자전거 덕후를 줄인 말입니다. 많은 시간을 자전거에 할애하는 사람들을 말하죠. 특히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그렇게들 많이 부릅니다. 인스타그램에선 #자덕 #자덕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가 흔하고요. 반팔 져지와 빕숏(반바지) 라인에 따라 피부가 까맣게 변해가는 걸 두고 '자덕 라인'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자덕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부끄럽습니다. 자전거뿐 아니라 뭐든 스스로를 '덕후'라고 하는 것이 좀 낯간지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인스타그램 피드에 자전거 사진이 하나 둘 늘어가면 주변에선 '자덕 다 됐다'고 말해줍니다. 자전거가 확실한 취미가 됐다는 것이겠죠.
자전거를 취미로 하다 보니 주변에서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전거 타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느냐"는 질문이 있고요. 뒤따르는 질문으로는 "나도 운동해야 하는데, 자전거나 타볼까?"라는 질문이 많습니다. 사실 이건 딱히 답을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겠지만, 저는 혼자 고민을 합니다. '이걸 추천을 해야 하나...'라고요.
사실 자전거를 취미로 삼는 일, 특히 '운동을 위한 자전거 타기'는 고민이 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천에 깔린 게 자전거인데, 무슨 유세냐!"라고 말하실 수 있는데요. 제가 말하는 '취미로서의 자전거' 그리고 '운동으로서의 자전거'는 로드 자전거, 혹은 로드 바이크를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타지는 않지만 전문 MTB(산악자전거) 역시 포함이고요.
사실 자전거 자체를 접하기는 쉽습니다. 집에 한대쯤 있는 자전거를 손봐서 타도 되고, 서울 등 지자체에서 서비스하는 공유 자전거를 타도 되고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온라인에서 10만원 안팎으로 생활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해서 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기를 본격적인 운동의 영역으로 끌고오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생활 자전거를 타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살랑살랑' 자전거를 타면 별 운동이 되지 않습니다. 운동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냥 기분도 내는 김에 운동도 '살짝'하기엔 충분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해야겠어!'라면서 따릉이를 타게 된다면 효율 면에서는 분명히 아쉽죠. 같은 시간에 달리기를 하거나, 다른 운동을 하면 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으니까요.
숫자로 따져보면 70kg의 남성이 10kg의 자전거를 타고 30.6km/h의 속도로 30분 동안 평지를 달릴 때 소모되는 칼로리가 482.8kcal이라고 합니다. 쌀밥 한 공기 칼로리가 300kcal라고 하니 꽤 소모가 크죠. 그런데 30km/h가 넘는 속도를, 그것도 따릉이로 30분간 유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로드바이크나 MTB를 타야 저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운동의 영역으로 넘어오려 하면 또 다른 장벽이 있습니다. 돈이죠.
입문 의사를 타진하는 주변이들에게 쉽사리 추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중고로 구매해 입문하게 된다고 해도, 소위 '쓸만한' 자전거를 구하는데 50만원에서 100만원이 오갑니다. 여기에 헬멧이나 의류 등 몇몇 장비들을 추가하고 나면 금액이 상당해지죠. 입문할 때 어떤 자전거를 골라야 할지에 대해선 나중에 다뤄 보겠습니다.
아무튼 야심 차게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섭니다. 운동이 잘 맞으면 참 다행이지만, 생각하던 것과 다르면 그때부터는 참 곤란해집니다. 보관하기도 마땅치 않고, 다시 중고로 팔기에도 귀찮죠. 자전거야 팔리지만, 한 번 사용한 장비들은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운동은 마음에 들어도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운동이 될 만큼 자전거를 타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장비들을 챙기는 일부터,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고 바퀴에 바람을 넣는 시간까지 다 포함이 되죠.
필드에 나가게 되면 한두 시간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집 근처를 후다닥 타고 오는 방법도 있지만, 점점 재미가 붙으면 새로운 코스에 대한 욕심이 나죠. 처음 가는 코스에 헤매기도 하고, 힘드니까 쉬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주말엔 네다섯 시간은 안장 위에서 보내게 됩니다. 여기에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여섯 시간 넘게 밖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하고요.
러닝이나 헬스, 요가, 필라테스 등 흔히 즐기는 운동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만큼의 시간 투자가 되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그래서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서든, 한강 산책에 나갔다가 슝슝 달리는 자전거에 흥미를 느꼈든, 로드 바이크 구입을 고려한다면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셨으면 합니다. 이왕 돈을 들인다면, 충분한 성과를 뽑아내는 것이 좋겠죠.
1. 평일 출근 전, 혹은 퇴근 후 2~3시간의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매일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집 앞에 잠시 나가서 타고 온다고 해도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납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가장 흔히들 가는 코스인 남산 한 바퀴만 돌고 오려고 해도, 잠실을 기준으로 이래저래 두 시간은 걸립니다. 퇴근 후 라이딩의 경우 복장 갖추는 시간은 별도입니다.
2. 매 주말 하루쯤 6시간 이상의 시간을 취미생활에 투자할 수 있는지. 주말엔 차를 끌고 멀리 가서 자전거를 타는 투어 라이딩이나 장거리 라이딩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미쳤다"소리가 나오겠지만, 100km 가까이 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거리도 최소한으로 후다닥 타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은 중간에 몇 차례의 휴식과 식사까지 포함되면 시간은 끝도 없이 늘어집니다. 운동은 짧은 시간 가볍게 즐기고, 다른 일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그래서 자전거를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3. 지속적인 유지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금전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주, 많이 타면 탈수록, 온갖 소모성 부품들을 교체해줘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먹는 '보급식'도 꾸준한 지출원 중 하나이고요. 기온 변화에 따라 의류를 추가로 구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총금액으로 치면 다른 운동도 운동복도 사야 하고, 회원 등록도 해야 하니 비슷할 수 있습니다. 돈이 든다고 유세 떠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전거에 있어서는 으레 '자전거만 사면 다 아니냐'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많아 하나 보태 보았습니다. 그래서 입문하신다면 이런 점도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이런 기준이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재미와 성과를 내기 위해 이 정도는 알고 입문하시면 어떨까~ 하는 정도이니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시간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운동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본인의 생활 패턴과 성향을 고려해 정하면 좋을 듯 합니다.
그래야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을 주고 산 자전거가 아깝지 않겠죠. 아니라면 가볍게 대여 자전거나 생활 자전거로 즐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전거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최근엔 아예 로드 자전거를 단기 대여해주는 곳도 있으니, 이런 곳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재미를 느끼면 시간을 더 투자할 수도 있죠. 아무튼 많은 분들이 현명하게 입문하고, 오랫동안 자전거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