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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Jan 19. 2017

10km를 달린다는 것

달리기 찬가 #2. 대회에서 달려보기

글 쓰는 일을 하지만, 퇴근 후엔 몸 쓰는 일을 즐기는 직장인. 대학생이던 2012년 무렵부터 취미로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운동에 손을 댔지만, 결국 러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뛸 때마다 잡스런 생각을 하다 보니 러닝을 하며 가장 튼튼해진 건 마음. 달리며 얻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한다.


 달리기에 입문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필자처럼 구기종목엔 영 재주가 없고, 요가나 필라테스는 지루해 보이고, 자전거를 타자니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지만 운동은 하고 싶다 보니 입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다이어트를 생각할 때 가장 확실해 보여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친구 손에 이끌려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그 뒤로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 달리기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실 대회를 참가한 뒤에  운동에 입문한다는 것이 영 앞뒤가 맞지 않지만, 대회라는 것이 주는 흡인력은 엄청나다.


  입문자들이 발을 들이게 되는 대회는 대부분이 10km 단축코스이다. 보통 'OO마라톤' 이름을 내건 대회에서는 풀코스(42.195km) 뿐만 아니라 10km, 하프코스(21km)의 세 가지 코스를 모두 제공한다.


최근에는 10km 코스만 운영하는 대회도 부쩍 늘었는데, 주로 스포츠 브랜드에서 개최하며 '~런'이라는 이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나이키의 '위 런 서울', 아디다스의 '마이런' 등이 있다. 


  이런 대회는 수만 명의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이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홍보하는 덕에 운동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의 관심도 쉽게 잡아챈다. 그 덕에 평소 달리기를 즐기던 친구, 연인의 손에 이끌려 참가 신청을 하기도 하고. 달리기와는 아무 연이 없던 이들도 재미 삼아, 혹은 '우리 운동하자'라는 식의 목표를 내걸고 단체 참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략 이정도 거리가 된다. (2013년 나이키 대회 코스)

  10km. 광화문을 시작으로 시청-충정로-마포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의 거리가 딱 그만큼이다. '버스 타고도 30분은 걸릴 텐데!' 싶지만. 신호등도 없이 계속 달리는 것을 계산하면, 경험상 평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중간에 한두 번 걸으면서라도 1시간 남짓에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거리가 된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운동을 안 했더라도 10km 정도는 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이런 질문이 날아들기 마련이다. 소위 '말 되는' 질문이라 반박하기도 쉽지 않다.


굳이 왜 돈을 주고 10km씩 뛰는 거야? 한강변 뛰면 되잖아?

  이런 이들을 위해, 혹은 친구나 연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덜컥 10km 대회를 신청해버린 예비 러너들을 위해 달리기 대회에서 10km를 달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대회 후기를 한 번 풀어보려 한다.


  시즌 막바지인 2016년 11월에 있었던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 당시의 기록이다. 앞서 말했듯 풀코스부터 5km까지 다양한 코스가 존재하는 꽤 큰 달리기 대회 중 하나이다. 


  후일 다루겠지만, 필자는 지난해 5월경 종아리 부상을 입고 근 4개월간 고생한 뒤 9월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11월까지 재활을 거쳐 겨우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대회를 목전에 두고 매일 3km씩 2주 정도 달린 것이 훈련의 전부였다. 


  대회는 일요일 오전 8시. 토요일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라 집회 취재를 마무리하고 2시에 취침, 6시에 일어나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는 7시 30분쯤 도착. 옷을 갈아입고 허겁지겁 출발선으로 이동했다. 이미 수백, 수천의 달림이들이 몸을 풀고 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지만 달리기를 쉬었던 탓에 55분이 목표였다. 마침 함께 달리기로 한 동호회원들이 50분을 목표로 뛴다고 해 우선은 이들을 쫓아 뛰어보기로 했다. 


시작. 대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구간이다. 시작은 했지만 시작하지 못하는. 어차피 기록은 내 발에 달린 자그마한 칩(다 나눠준다)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1km.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구간이다. 시작부터 걸어가는 사람. 손 잡고 뛰어가는 연인들을 헤치고 속도를 높여본다. 컨디션을 가늠해보는 구간이기도 하다.


2km. 잠시 숨이 차오른다. 여전히 뭉쳐있는 사람들을 피해 달리느라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이곳저곳으로 뛰어야 해 체력 소모가 큰 구간. 자연스레 오버페이스를 하게 되기도 한다. 


3km. 어느 정도 주로 확보가 되기 시작한다. 내 페이스를 찾고 호흡도 안정화한다. 땀이 살짝 나면서 몸이 풀려가는 구간. 


4km.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기분 좋게 달리는 구간. 잠실대교를 건너는 코스인 덕에 다리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숨도 별로 차지 않고 '힘들다'는 기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기분이.

아, 이 정도라면 쉽게 뛸 수 있겠는걸?

5km. 잠실대교 끄트머리에서 반환해 다시 돌아간다. 킬로미터 당 4분 30초 정도의 속도. 생각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막상 기록을 보고 나니 욕심이 생기면서도 숨이 차오른다. '이미 절반 왔다'는 생각과 '온 만큼만 뛰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서 오버페이스를 해본다.


6km.  잠실대교 내려와서는 오버페이스(킬로미터 당 4분 20초)를 멈추고 조금 천천히 뛰면서 숨을 고른다. 이미 정신은 반절 나간 상태. 


무리했다. 그냥 그만 뛰어야지.


7km.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다리도 멀쩡한 데다 페이스도 늦춰져 호흡이 다시 돌아온다. 얼핏 계산해보니 50분이라는 기록도 깰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한번 이를 악물어 본다. 


8km. 마지막 급수대. 물을 집어 들고 얼굴에 끼얹었는데 포카리스웨트였다. 땀과 섞여 말 그대로 '단짠' 액체가 입으로 흘러든다. 다시 내뱉으며 분노의 질주 시작.


9km. 다시 종합운동장 주차장 쪽에 도착. 응원단이 눈에 들어온다. 짧지 않게 동호회 활동을 한 덕에 아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이팅' 한 마디에 힘을 내며 막판 스퍼트


10km. 결승점이 눈앞에 보인다. 조금이라도 기록을 줄여보려 힘을 쥐어짜 달린다. 걸을 힘조차 없는 것 같지만 어디서 또 힘이 나 달리는 나를 본다.


결승선.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본다는 대포 카메라들이 우릴 기다린다. 귀신같이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힘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친절하게 메일로 보내준다. 모공까지 선명하게 찍히지만, 잘 나와본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결승선에서 찍힌 사진(가운데)

쥐어짜 달린 덕에 기록은 목표했던 50분 보다도 단축된 49분. 겨우 1분? 싶지만 달려보면 안다. 수능 때 1점 보다도 더 아슬아슬한 숫자 1이라는 것을.


달리기 대회의 공식 기록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면 문자메시지로 날아든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달리는 모습이 다른 만큼이나, 달리며 드는 생각도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달리기는 나와의 대결이다. '포기하고 싶다'는 나와, 그래도 '끝까지 가 보고 싶다'는 나의 60여분 간의 대결.


나와의 대결이라고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나를 휙 지나치는 다른 주자들과 벌이는 묘한 경쟁도 달리기 대회의 묘미이다. 굳이 평화로운 일요일 새벽부터 돈을 내고 10km를 달리는 이유다.


하나 더. 차를 타고 지나며 바퀴로만 느끼던 도로를, 유리창 너머로만 바라보던 풍경을 두 다리로 거닐며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꽤 큰 매력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일단 한 번 달려 보시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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