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 연기

창작 편집

메타포에 막 눈을 뜬 요즘, 나는 40여 년 전의 노래 ‘이 어둠의 이 슬픔’을 소환한다. 이 노래 가사는 한 편의 애달픈 이별 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자신의 마음을 도시의 거리와 불빛에 투사하고, 그것을 다시 바라보며, 스스로 슬픔을 확인하고 있다.


“꺼지는 듯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가슴에 흐르는 너 나의 슬픔이/한 조각 슬픔 노래 소리로/어둠에 흩어져 가네” ‘꺼지는 듯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은 이별을 목전에 둔 화자의 눈동자다. ‘도시의 가로등’이 흔들리는 것은 이미 화자가 울고 있어서일까?


화자는 ‘가슴에 흐르는 너’를 놓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에서 화자는 슬픔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노래로 바꾸어 어둠에 날리고 있다. 화자는 너를 붙잡고 싶지만, 이미 늦었음을 안다. 크게 울지도, 완전히 놓지도 못한 채, 슬픔을 노래처럼 흘려보내고 있다.


“허공을 가득 메운 눈물 같은 네온등/이슬에 흐려지는 그대의 눈빛이/한 조각 어두운 바람 소리로/한없이 깊어만 가네” 이제는 화자의 슬픔은 더 깊어지고 있다. ‘눈물 같은 네온등’은 화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네온등만큼 밝아졌다. 화자의 눈물 빛이 허공을 가득 메우니, 도시 전체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


연인도 이별을 예감하며,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둘의 슬픔은 눈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 세계에 전파되어 바람 소리가 된다. 화자는 떠나는 이를 바라보며,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깊어지는 감정은 빠져나올 수 없는 심해로 흘러, 화자가 천천히 잠기고 있다.


“돌아선 그대 다시 한번 말을 해주오/오직 나만을 사랑했다고/떠나는 그대 다시 한번 고백 해주오/나 그대만을 사랑했다고” 화자의 슬픔은 폭발한다. ‘오직 나만을 사랑했다고’, ‘나 그대만을 사랑했다고’ 반복해서 매달리는 심정은 어떨까?


이별이 바로 눈앞에, 와닿는 순간, 화자는 남겨둔 사람을 토로하고 있다. 이별 직전의 고백이 나에게는 낯설다. 화자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 저 심연에 머물러 있던 애절함을 쏟아내는 것일까? 사랑을 다 소진함으로써, 이별을 견디려는 몸짓일까?


“불빛에 머문 젖은 나의 눈빛/허공 속에 뿌려 버리고/가슴을 태운 이 어둠의 상심/허무한 사연이어라” 화자는 참고 있던 눈물을 마침내 허공으로 뿌려 버린다. 화자는 떠나가는 연인을 더는 붙잡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인가? 슬픔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 도심의 밤하늘에 두려는 것일까?


나는 이 대목에서 팝송 가사, “Smoke gets in your eyes.”가 겹친다. 팝송의 화자는 연인의 눈동자에서 눈물 연기, 그 흐릿함을 바라보는 순간, 화자도 왈칵 눈물을 쏟는다. 이 장면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나도 오춘기가 온 건가?


‘이 어둠의 이 슬픔’의 화자는 연인이 이미 떠나버려서 도시 불빛에 머문 나의 눈빛을 보면서, 눈물을 허공에 뿌리고, 이 어둠의 상실을 허무한 사연이라고 토로하지만, 팝송의 화자는 떠나는 연인의 눈동자에서 연기처럼 보이는 눈물을 들여다보면서, 자신도 따라서 울고 있다. 같은 실연이지만, 슬픔의 온도가 미묘하게 다르다.


두 노래는 한국어와 영어, 서로 다른 언어로, 동일한 이별의 밤을 건너고 있다. ‘이 어둠의 이 슬픔’은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 ‘눈물 같은 네온등’, ‘불빛에 머문 젖은 나의 눈빛’을 빌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어둠의 슬픔을 천천히 비추고 있다.


팝송은 ‘smoke’라는 단어에 화자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싣는다. 두 화자는 직접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불빛을 흔들고, 공기를 흐리게 하며, 시야를 번지게 하고, 슬픔을 풍광으로 바꾼다. 도시의 어둠이 울고, 눈동자에 고인 연기에 우리 모두는 젖어든다.


이것이 메타포의 힘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마음을 말이 아닌 장면으로, 눈물이 아닌 풍광으로, 고요히 승화시킨다. 결국 두 노래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흔하디 흔한 실연을 식상하지 않게, 아픔을 견디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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