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의무와 미덕
"진짜 사랑에 대해선, 그 완전한 모습에 대해선 몰라요.
그 조각조각들은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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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이 말했던 조각은, 몇날며칠 밤잠을 못 이루게 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모습을 잃은 화분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애지중지 아꼈던 화분은 한때의 사랑이겠지. 그것은 어느 날 파편이 되어 흩어졌고, 흩어진 조각들은 이별이 남긴 기억이겠지. 조각은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 혹은 푸르거나 분홍의 빛깔을 띈 나무, 혹은 손에 쥐기 좋은 둥근 조약돌의 생김새를 닮았겠지.
몇 번의 사랑이 남긴 그것들은, 이따금 흔들린 당신의 마음을 따라 진동했겠지. 그 소란스러운 떨림은 조각들이 가진 색채와 모양을 뒤흔들었고, 당신은 온전했던 화분을 떠올리며 어느 이름들에 대한 감상을 남겼겠지.
그건 당신이 수집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당신이 짊어져야 하는 수집가의 의무와 미덕이 있다고. 그 대신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내어줘야 한다면, 오래된 한 가지 속내 정도는 밝혀야 공평하겠지.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게 두 개의 심장이 있다면, 하나는 오직 사랑만을 위한 것으로, 나머지 하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할 거야. 그럼 첫 번째 심장이 아플 때 두 번째 심장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두 개의 심장은 언제나 하나로 포개어져 있지. 그래서 사랑은 행복하기만 한 일이 아니야.」
「만약 사랑이 -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라면, 포개어진 두 개의 심장처럼 우리 몸 어딘가에서 박동하고 있다면,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슴을 열어볼 거야. 그리고 톡톡 두드려 깨우며 말할 거야. "오늘도 힘내렴. 행복을 위해 뛰어주렴." 그리고 매일밤 눈을 감기 전에 가슴을 열어 볼 거야. 그리고 토닥토닥 재우며 말할 거야. "오늘도 사랑하느라 힘들었구나."」
마음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화분의 파편들로 가득한 그것을 마음껏 헤집을 수 있겠지. 눈물 같은 빨간 물감으로 손끝을 물들일 테지. 그러나 수집가는 그래선 안 된다.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마음속 깊고 어두운 곳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별처럼 빛나는 조각들을 찾으려 더듬거리다 애꿎은 화분만 또 깨뜨릴 테지. 그러나 수집가는 그래선 안 된다.
당신이 수집가로서 짊어지는 의무란 이렇다.
<조각수집가의 의무>
첫 번째 의무,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푹신한 공간을 만들어둘 것. 그곳에 특히 소중한 조각을 보관할 것.
두 번째 의무, 작고 여릴수록 소중히 보관할 것. 작은 화분의 파편일수록 쉽게 잊혀지므로.
세 번째 의무, 오래된 조각들은 종종 애써 들여다볼 것. 언젠가는 더 이상 새 조각들을 수집할 수 없게 되므로.
네 번째 의무, 잊겠다-버리겠다-는 다짐은 함부로 하지 말 것. 언젠가 선물하게 될 당신만의 화분을 위한 것이므로.
다섯 번째 의무, 어떤 조각들보다도 화분을 더 소중히 여길 것.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과거의 조각이 아닌 살아있는 단 하나의 화분이므로.
...
그 밖에도 조각수집가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세세한 의무가 있다면, 화분수집가에게 의무란 없다. 단지 하나의 미덕이 있을 뿐.
<화분수집가의 미덕>
첫 번째이자 마지막 미덕, 선물 받은 화분에 걸맞는 꽃을 피워낼 것.
화분수집가에게 의무가 없는 이유는, 화분은 누군가 당신에게 내어주는 것이고, 당신은 화분을 받아줄지 선택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화분과 꽃의 안녕에 대한 의무는 화분을 건넨 자의 것이다. 당신에겐 어떤 의무도 없다. 다만, 훌륭한 화분수집가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새겨둘 만한 조언이 있다.
<화분수집가를 위한 조언>
첫 번째, 가장 좋은 화분은 볕이 드는 곳에 둔 화분이다. 아무리 튼튼하고 아름다운, 아무리 값비싸고 희귀한 화분이더라도,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선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 마음의 날씨는 맑음이 잦아야 한다. 물론 비바람도 필요한 법이다. 딱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만큼만.
두 번째, 화분만으로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 꽃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화분을 보살피는 이의 시들지 않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 관심은 당신이란 꽃을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는 마음, 먼지 앉을 새 없이 화분을 보살피는 마음이다.
세 번째, 그러므로 화분을 선택하는 일은, 그것을 건넨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가 건넨 화분의 성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어떤 화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별하는 안목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네 번째, 이 세상 어떤 화분도 완벽하지 않다. 모든 화분은 유약하다. 한 번 금이 간 화분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실금이 화분을 산산조각 내고, 그 조각은 결국 당신이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조각수집가의 의무를 짊어지게 한다.
다섯 번째, 언젠가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아 당신의 화분을 선물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를 위해, 당신만의 화분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화분의 성분은, 당신이 조각수집가로서 간직해 온 조각들로 만들어진다.
사랑은 등가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라는 나의 주장의 근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엄마의 탯줄로 숨 쉴 때부터, 백국白菊 화관을 쓸 때까지
사춘기 짝사랑으로부터, 아련한 추억에 이르기까지
떨리는 첫사랑으로부터, 노년의 백년해로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첫날밤으로부터, 차가운 이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여기기에
때로 행복하고, 때로 감사하고, 때로 증오하고, 때로 슬퍼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짝사랑임을 인정하면,
그가 내게 주는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 집니다.
원래 내가 더 사랑하는 게 당연하므로,
비단 짝사랑이란, 주는 것 하나 없이 받는 것들로만 가득한 것이므로.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는 티끌만 한 아쉬움을 한 점 남기긴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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