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좀 우러나긴 했다
젤 네일 이후에도 나의 호작질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프랑스 자수나 쌀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서 다녀오기도 하고, 회사에서 제공해 준 마크라메 원데이 클래스도 다녀왔다.
문제는 원데이 클래스의 추억이 원데이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도 해보겠다며 재료를 왕창 사들고 와서 집에서도 본격적으로 호작질을 이어나갔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하게 되며 이 흐름은 날개를 달았다. 조리원에서 심심할 거라며 자수 상자에 글루건까지 들고 들어가서는 아이 낮잠 이불에 이름 자수를 새겨주기도 하고, 낮잠 이불 가방에 달아놓을 자수 배지도 만들었다. 퇴소 후에는 아이가 자는 시간 틈틈이 베이킹 재료를 준비하고 계량해서 빵을 만들었고, 육아휴직 동지와 만날 때 가져가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복직 후엔 마크라메 동영상과 DIY 키트를 제작해 스마트 스토어에 팔아보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엔 내 키트가 좋은 교보재가 되었는지, 단체 주문도 종종 들어왔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마크라메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망한 취미로 전락할 뻔했던 젤네일은, 처음 퀄리티에 실망하지 않고 실패포인트를 찾는 여정을 계속했다. 인스타그램 인기 네일샵을 팔로우하며 디자인이나 퀄리티를 연구했고, 과정을 블로그에 남기기도 했다. 내 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주며 피드백도 받아봤다. 나름 만족도가 있었던 나의 도화지고객님 중 한 분은 웨딩 네일을 부탁해오기도 했었다.
지금은 마음이 심란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상황 따라 기분 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손을 움직이며 집중하다 보면 머리가 한번 비워지고, 그 자리는 다시 무언가를 담아낼 그릇이 된다. 완성된 결과물이 좀 서툴러도, 심지어는 작품으로 완결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취미들이라 더 그렇다.
어느 하나 제대로 푹 우려내지 못해 담갔다 빼고 담갔다 빼는 나지만, 그러면 어떤가. 내 육수는 수많은 재료들이 거쳐가며 처음보다 더 진하고 향긋해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