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2
어린왕자는 오래전부터 인류의 정신문명을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정신문명의 기본이 되는 종교, 신화, 철학을 만화로 남겨 놓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는 총 3권으로 된 시리즈로, 문명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종교·신화·철학으로 나누어, 이들이 어떻게 성립되고 변화했으며 현대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만화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어린왕자는 “종교, 신화, 철학은 문화의 가장 기초가 되는 뿌리지요. 하지만 요즘은 너무 쉽고 간편한 것들만 추구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시작했어요. 책을 통해 ‘어렵다’는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었으면 해요.”라고 집필하게 된 동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어린왕자에게 설명이 너무 많아 사실 좀 짜증이 난다고 솔직히 말했더니,
“만화는 분명 폭넓은 관점을 제시한다거나 깊은 내용을 소개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교양만화는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살면서 꼭 알아야 할 상식을 최대한 담으려고 하는 시도예요. 독자들에게 가르친다기보다, 소개한다는 의도에서 쓴 거죠.”라며, 그는 웃으며 변명했다.
‘종교 편’은 고대 종교에서 시작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를 아우르고 있었다.
“우리 별은 서구 종교에만 치우친 편향성을 보이고 있어요. 힌두교나 이슬람교, 유대교 등 세계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의식 자체가 서방에 기우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타종교에 대한 배척과 몰이해는 문명의 충돌과 민족 간 갈등의 원인이 되죠.”
어린왕자는 “우리가 말하는 신화 역시 그리스·로마 신화에 편중돼 있다.”고 비판한다. ‘신화 편’은 원시시대 신화의 출발에서 시작해, 신화 속의 주인공들, 삶과 죽음을 다루며 동양의 신화와 서양의 신화를 두루 소개했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에 신화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예요. 신화의 비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상상은 감성에 메말라 가는 현대인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어린왕자는 시리즈 중 마지막인 ‘철학 편’을 쓰며 “글로벌 시대에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서구 문명과 경쟁하려면, 그들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중세·르네상스 시기, 계몽주의, 반계몽주의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까지 폭넓게 다뤘다.
“철학은 현대 문명 사회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식의 산실이자 삶의 지혜죠. 신과의 갈등 개념 없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동양 철학은, 다음 기회에 독립적으로 다루어 보고 싶어요.”
어린왕자는 종교 또는 문명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책은 장면마다 재치가 번뜩인다. 나는 어린왕자가 이런 만화적인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간 ‘만화가’로서 쌓아온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만화가로서의 노하우는 마치 요리사가 재료를 요리로 먹기 좋게 만들어 내는 것처럼, 철학과 신화 같은 딱딱한 주제를 독자가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을 그림으로 버무릴 줄 아는, 프로 작가였던 것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재미가 없다면, 누가 만화를 보겠는가. 물론 어린왕자도 점점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학생들과는 유머 감각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긋남조차도 나는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자기 생각을 유쾌하게 전하려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가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라는 작품을 쓰게 된 데에는, 뮌스터대학교에서 디자인과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경험과, 철학 교수인 그의 큰형의 존재가 분명히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어른들은 이 책이 한 번 읽고 마는 만화책이 아니라, 여러 번 읽으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양서가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어린왕자가 그려낸 정신문명의 풍경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삶의 깊은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어린왕자는 그 긴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장미꽃인 인간의 정신문명의 풍경을 그려내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시간을 들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그 꽃을 위해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라는 그의 말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