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은 밤에 핀다.
서초동 법원 417호 소법정. 나는 판사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천장의 오래된 누수 자국이 몇 개인지 세고 있었다. 저 얼룩들은 이 방에서 증발해버린 수많은 진실의 눈물 자국일까.
"피고인, 징역 10월에 처한다."
기계처럼 무감정한 목소리가 낡은 법정에 울렸다. 방청석에서 피고인의 어머니인 듯한 노파의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상습 절도, 이번이 네 번째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행유예라는,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읊어야 하는 주문을 외우는 것뿐이었고, 판사는 내 주장을 2초 만에 기각했다. 또 하나의 패배. 아니, 애초에 승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법정을 나와 창문 하나 없는 지하 1층의 국선 변호사실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스산한 공기 속에서 모두가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정원사'. 그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불안과 대중의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낸, 잔혹한 예술가의 호칭이었다.
"어젯밤 뉴스 봤어? 세 번째 희생자, 소름 끼치더라."
"인터넷에선 거의 영웅 취급이야. 썩은 세상 청소한다나 뭐라나."
"영웅은 무슨. 그냥 미친놈이지. 그런데 흔적 하나 안 남긴다며? 경찰은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정원사'. 최근 몇 달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마의 별명이었다. 그는 젊은 여성만을 노렸고, 자신의 범죄 현장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완벽하게 통제했다. 외부 침입 흔적 없이, 피해자는 자신의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잠든 듯 발견되었다. 살인마의 유일한 서명은, 희생자의 심장 위에 놓인 한 송이의 새하얀 치자꽃이었다. 그 흰 꽃잎은 순수와 죽음의 역설적인 조화를 이루며 현장에 기묘한 정적을 드리웠다. 언론은 그의 범죄를 단순 살인이 아닌, 부패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잔혹한 퍼포먼스라 떠들어댔고, 그 잔혹한 낭만성에 대중은 열광하고 공포에 떨었다.
내 사무실은 전쟁터에서 막 퇴각한 참호 같았다. 서류더미는 아무렇게나 쌓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고, 구석의 낡은 소파 위에는 언제 벗어뒀는지 모를 겉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은 나의 패배가 쌓여 만들어진 무덤이었다. 열정은 십 년 전에 이미 소진되었다. 내가 믿었던 진실이 나를 배신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진실을 쫓지 않기로 맹세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월급날을 기다리는, 법률 기술자에 불과했다.
그때, 사무실 구석에 놓인 작은 TV 화면에 속보 자막이 떴다.
[속보] 연쇄살인 '정원사', 네 번째 희생자 발견... 서초동 자택에서...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명문대 음대생 안희연. 스물세 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증명사진 아래로, 앵커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현장에서는 '정원사'의 시그니처인 치자꽃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사무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세 건의 완벽한 범죄로 경찰을 조롱하던 '정원사'가 마침내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그의 거대한 연극의 일부일까. 그 후 이틀 동안, 세상은 안희연 사건으로 들끓었다. 경찰은 전례 없는 압박감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한다며 허둥댔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길은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대중이 원하는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는 것.
"용의자, 피해자의 연인 김민석 긴급 체포!"
TV 화면에 흐릿한 CCTV 영상과 함께 김민석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평범한 회사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선량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나는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비어있는 캔버스였다. 그리고 미디어와 경찰은 그 위로 '두 얼굴의 연인', '정체를 숨겨온 희대의 살인마'라는 제목의 그림을 거칠게 그려대기 시작했다. 대중은 그 그림이 진실이라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악마의 꼬리가 잡혔다며 안도했다. 이 사회는 진실보다, 불안을 해소해줄 하나의 완벽한 서사를 더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부으며 중얼거렸다. "불쌍한 놈. 이제 어떤 국선 변호사가 저 폭탄을 떠안게 되려나."
그 폭탄이, 정확히 24시간 뒤 내 책상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