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여성의 틴더 체험기
2025.08.10
틴더를 했다. 이틀 정도. 이유는 간단했다. 심심했고, 주변에서 틴더 후기를 많이 들었다.
걱정이나 불안이 많은 나는 꽤 복잡한 방법을 강구해서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틴더를 켜면 아는 사람이 한둘은 나온다. 그들도 나를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장애 여성이라는 것, 나아가 내가 걷는 모습까지도. 그런 상대는 껄끄러웠다.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취약한 것을 알고 안 좋은 의도로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 (틴더에서 의도를 따지는 게 웃기지만.)
그리하여 서울에 사는 친구가 나인 척 틴더 프로필을 꾸몄다. 남자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내가 직접 채팅할 수 있는 인스타 계정으로 연결했다. 이를 수상하게 느끼는 남자들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로맨스 스캠이라고 오해한 것 같다. 고생 끝에 일곱 명 정도 인스타를 통해 연락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원나잇을 원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데이트메이트? 처음에는 큰 의미없이 심심풀이로 시작했는데 노골적인 메시지를 받자 재밌는 것이 생각났다.
이것을 프로젝트로 만들면 어떨까?
다섯 명 정도 실험군을 잡은 뒤, 대화를 이어가다가 직접 만나는 프로젝트. 그들은 내 얼굴 사진을 보고 관계를 요구하거나 이어지기를 원하는데 막상 내가 장애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지점은 무척 흥미로웠다. 틴더를 비롯하여 비대면으로 알게 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서로를 비장애인으로 여긴다. 이는 우리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여기는 인간상이 비장애인이라고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히 나는 그것을 깨고 싶었고 프로젝트를 위해 남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
A : 점심 뭐 먹었어요?
나 : 계란이랑 방울토마토요.
A : 너무 가벼운데, 식단해요?
나 : 아뇨. 가볍게 먹는 게 좋아요.
A :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나 : 20대 후반이요.
A : 곧 서른이네.
A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렸고, 그 이후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
B : 성수에서 저녁 먹을래요?
나 : 오늘은 약속 있어요.
(오후 열한 시 정도)
B : 지금 뭐해요?
(다음 날 오전 열한 시)
나 : 이제 봤네요, 출근했어요.
B : 바쁘시네요. 오늘은 뭐해요?
나 : (재미없어.)
*
C : **동에 살아요? 어디쯤이에요?
나 : 하천 근처요. (친구 집의 위치)
C : 저도 그 근처인데 술 좋아하세요?
나 : 아뇨, 많이 못마셔요.
C : 저도요. 다음에 같이 술집 가요.
나 : (?)
*
D : 오늘 저녁에 뭐해요?
나 : 약속 있어요. (실제로 줌 미팅이 있었다.)
이후 D는 연락하지 않았다.
*
E : 왜 인스타로 연락해?
나 : 회사에서도 연락하려면 틴더 알림 뜨는 것보단 인스타가 더 나은 것 같아.
E : 그건 그래. 그럼 틴더는 왜 해? 친구 사귀려고?
나 : 그치. 친구들한테 틴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E : 친구들이랑 틴더 얘기를 하는구나.
(이 사람과는 대화가 좀 이어졌다. 한 30분 정도.)
E : 누나라고 불러도 돼?
나 : 응, 편하게 불러.
E : 근데 확실히 여자들은 틴더 조심해야 돼. 콘돔도 필수고.
나 : (?)
*
이 외에도 자신은 근처에 산다고 어필하는 남자 (그러나 그는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살고 있었다.), 자신의 직업을 말한 뒤 잠수를 타는 남자, 대뜸 넷플릭스를 보자고 하는 남자, 거리낌없이 나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남자... 많은 남자를 접했다.
틴더를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난 밤, 거울 속에서 건조해진 얼굴을 발견했다. 즐겁지 않아. 중얼거리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디엠의 진동을 느끼며 나는 잠을 설쳤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정작 디엠으로 온 연락은 한 개였다. 다른 것은 전부 해외 뉴스 알림, 증권사 어플 알림이었다.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프로젝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원하기를 바라고, 욕망의 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음을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부끄럽다.
프로젝트의 핵심이 될 요소는 남자들의 반응이었다. 사진만 보고 마음에 들었던 여자가 사실 불구였다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런 반응을 노리고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내 몸을 도구로 삼았고, 지금까지도 그것에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애초에 장애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것은 내 몸을 어느 정도는 도구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게 내 몸은 창작 소재 자판기, 원한의 집합, 욕망이 새는 항아리 정도다. 그 외에 내가 내 몸을 특별히 알아가고 싶거나 정리하려고 한 적은 없고 그래야 하는 순간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처음이었다. 가볍고 노골적인 욕망을 직접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몸을 내려다본 것은. 누군가에게 욕망 당하고 싶어. 이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말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깊게 생각한 적 없다. 지금까지 나는 중요한 단서가 누락된 것도 모르는 채로 말을 재생한 것이다.
너는 어떻게 욕망 당하고 싶어?
이 단순한 한 줄의 질문조차 하지 못하고 욕망을 하는 것과 당하는 것에 대해 중언부언 말하던 날들. 외면했던 질문에 집중하면 새로운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너는 네 몸과 함께 어떻게 욕망 당하고 싶어?
네 몸이 욕망에서 어떤 위치가 되면 좋겠어?
너는 왜 욕망을 당하고 싶은 거야?
단 한 개도 대답할 수 없었다. 내게 새로운 숙제처럼 떠오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 프로젝트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틴더도 탈퇴했다. 친구와 고생했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삼 일만에 개운한 잠을 잤다.
*
고백할 것이 있다. 지금껏 나는 연애를 해 보거나 누군가와 성애적으로 연결된 적이 없다. 기껏해야 번호를 따이면 친구들에게 얘기하며 낄낄거린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에게 욕망하고 당하고 싶다. 이것은 연애를 경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에 나도 새끼손가락을 걸고 싶다는 말을 다르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전부 내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를 좋아하겠니? 적어도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몸을 가진 사람과 연애할 자신도 없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나를 좋아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누가 좋아한대도 당황할 것 같다. 불구로서 글을 쓰고, 장애를 드러내며 프라이드를 가진 척하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 내 몸을 조금도 사랑하지도, 마주하지도 않는다.
욕망에 대해 말하기에 나는 별다른 경험이 없다. 욕망에 엮여 본 적 없고, 단지 욕망하고 있다는 절실한 감각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감각도 착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틴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막연하게 욕망에 대해 말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내 몸, 장애가 있고 질병이 있고 시선을 받고 넘어지고... 엉망진창인 이 몸은 분명 어느 순간 관계를 망가뜨리는 전부가 된다. 누구나 쉽게 욕망할 수 없게 생겨먹었으니까. 틴더를 하면서 나는 욕망 받으려고 급급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일단 좋아해 봐! 그럼 내가 나를 보여주고 너를 실험대상으로 쓸 테니까! (문득 실험조차 욕망을 올곧게 바라보지 못한 회피처럼 느껴진다. 너무 깊고 오래 회피한 탓에 나는 직면과 회피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일까?)
모든 과정 속에서 나의 욕망은 빠져 있었다. 내 욕망은 뭉뚱그려서, 아마도 장애학 책에 쓰인 대로, 욕망부터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욕망의 대상으로 몸이 가시화 되어서 관계가 되거나 프로젝트가 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어떤 식이든 남자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의 가볍거나 그렇지 않은 욕망, 혹은 표현을 읽으면서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런 거 재미없네.
그렇다. 나는 막연하게 나를 언뜻 보고 다가오는 것들이 싫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약 이십칠 년을 살고 알게 되었다. 틴더를 하는 내내 나는 마술사의 무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얼굴만 드러내고, 밑은 모두 가린다. 내가 관객을 향해 웃으면 누군가는 나를 좋아한다. 그때 마술사가 내 몸을 가린 검은 담요를 가벼운 몸짓으로 거둔다. 비틀린 몸과 함께 나는 무대 앞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바라본다. 마술사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너는 원하는 게 따로 있고 내가 가린 것은 네가 모르는 네 마음이었어.
틴더를 통해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얼굴만 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적당히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며 시작된 관계가 무척 의미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몸을 모르는 사람과 시시한 농담을 나누는 게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
나는 오늘 밤 만날 수 있는 남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어떤 장면일지 모르지만, 아 이 사람과 나는 연결되고 있어, 라고 두 사람이 공명할 한 순간을 원한다. 그 순간에 장애가 무엇일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그 순간, 그 사람과 나에게 장애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