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목적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을만치 누추한 곳이었다. 그러나 뜻하는 바가 있어 온 곳이니만큼 성숙한 자세로 겉치레에 연연할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 2시간 30분을 운전하는 일이 내게는 희소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있음을 감각하려는 의지로 트렁크에 수건 5개, 양말 5개, 속옷 5벌을 챙겨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불교선원이었다. 그렇다고 불교의 색채를 띄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적 색채를 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극동심리연구소라는 곳에서 장성숙교수님의 리드로 이루어지는 집단 상담이다.
4번째 온다. 2번째 온다. 아들하고 같이 왔다. 등등 처음이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익숙한 경력자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이후 진행자는 없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아마도 경력자님이 입을 뗐다. 바로 옆 자리에 앉으신 분의 닉네임을 부르며 "풀꽃"님은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자연스럽게 호명받은 풀꽃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토킹스틱이 오고 가는 평화로운 서클로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었다.
여기는 그 어느 곳보다 살벌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다시 묻는 과정에서 화자의 논리적 결함이나 맥락을 읽어내지 못함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이를 지적하고 의식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어질 때 즈음 "벗"님이라는 장성숙 교수의 매끄러운 연결이 이어진다.
생글생글 웃던 수능을 본 여학생을 순식간에 직면하게 하고 울음이 터지게 하기도 했다. 때론 조금은 긴 침묵도 이어진다. 대화에 참여할까? 듣고만 있을까? 한마디 했다가 나한테 화살이 돌아오면 감당할 수 있을까? 고요한 침묵이 이어져도 모든 이들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장성숙 교수님은 모든 참여자들과 개인 상담을 이미 진행해오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날카롭게 질문을 던져 직면하게 하기도 했다.
그분의 별명이 장 칼(Carl)이란다.
그 분과의 첫 만남은 참으로 극적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연락처를 가지고만 있었지 차마 찾아갈 의욕도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죽을 만큼 힘들고 보니 붙잡을 데라곤 거기밖에 없었다. 주말 내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고 기다리다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니 급작스럽게 연락이 닿고 당장 2시간 후에 시간이 비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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