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해
“죽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냥 너무 지쳤던 거야.
햇빛이 너무 환한 아침이면
나는 내가 너무 또렷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나조차 나를 피하고 싶었는데
세상이 나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밤이 좋았다.
밤이면 나가서 조용한 골목을 걸었다.
몸이 무거워서 걷는 것도 귀찮은 날은
그냥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내 손에 익숙하게 들린 건,
복숭아맛 과일맥주 하나.
그게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입 안을 씻어내주는 기분이라서 마셨다.
어쩔 땐
담배 연기 하나에 나를 씻어내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골목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은 밤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발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고,
누가 나를 부르면 심장이 철렁했다.
가끔 길을 지나가다
누군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숨고 싶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면
인사하기 싫고, 웃기 싫고, 말 섞기 싫었다.
친구들이 내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한두 번은 그냥 못 받은 척했지만
그다음엔 고의적으로.
나를 찾아주는 그 마음도,
왜인지 그때의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무너지고 싶었다.
말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삼신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해 준다고 했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 같은 애를 세상에 보냈을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나는
어쩌면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느껴야 했던 거절,
화목하지 않는 집안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
그리고 나를 보호해 줄 어른 하나 없었던 그 시간들.
그걸 겪고 나서
나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 원했던 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살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 너무 일찍 들어왔다.
“죽고 싶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그건 나한테 너무 오래된 말이 되었다.
나는 단지
더는 살 이유가 없었다.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떠들고,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조차
이제는 의미 없는 반복이었다.
밤이면,
나는 어둠 속에 숨어 지냈다.
사람들은 내가 무표정하니까
별일 없는 줄 알았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멀어지는 게 익숙했고,
먼저 차단하고, 먼저 떠나는 게
내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