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따 써먹어?

2장 (5) 평등은 안정감이지만, 동시에 답답함이다

by 작가

평등은 안정감이지만, 동시에 답답함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평준화’다.


“누구나 같은 교과서, 같은 진도, 같은 시험범위!”

평등하게 출발하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이쯤 되면, ‘평등한 공교육’은 참으로 따뜻하고 안전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평등이 누군가에겐 족쇄가 된다.


“나는 이미 이걸 다 아는데, 또 해?”

“나는 더 배우고 싶은데, 진도가 느려…”

“문제 다 풀었는데, 왜 계속 설명만 해요?”

이런 말들이 교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럴 때 선생님은 난감하다.

“얘는 심심해하고, 쟤는 아직 모르고, 나는 빨리 가면 안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애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는다.


그 이름도 찬란한…‘사교육 탈출 루트’

아이러니하다.


공교육은 모두에게 평등한 출발선을 제공하지만 바로 그 평등이 답답한 최고치가 될 때 아이들은 조용히 이탈한다.

자기 학년 교과서는 ‘숙제용’, 진짜 공부는 ‘학원용’인 경우도 허다하다.


이건 비극인가?


아니. 한국에선 이게 생활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공교육은 ‘기본 제공’, 사교육은 ‘프리미엄 패키지’ 예요~”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안정감 사교육은 더 앞서고 싶은 자의 탈출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에서 아이들은 점점 이중생활을 한다.


낮에는 ‘공교육 시민’ 밤에는 ‘사교육 전사’로 자라고 있다.


결국 이 평등의 출발선은 점점 불균형한 결승선으로 이어진다.


처음엔 다 같이 뛰었는데

어느새 절반은 자전거 타고

나머지는 킥보드

몇몇은 전동 킥보드

심지어 어떤 애는 헬기 타고 날아간다.


그러고 나선 결승선 앞에서 “얘는 왜 아직 안 왔어?”라고 묻는다.


안 왔긴요.

걸어서 왔죠.

교과서랑 발로만.....


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탓할 수도 없다.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모두의 평균을 고려해야 하니까


너무 빠르면 뒤처지는 애들이 생기고

너무 느리면 앞서가는 애들이 졸기 시작한다.

그래서 중간 속도로 간다.


늘 중간.

쭉 중간.

정중앙.


문제는 그 속도가 모두에게 딱 맞는 속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평등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이 가장 먼저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애들이 먼저 알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엄마, 나도 학원 보내줘.”

“쟤는 벌써 선행했다던데요?”

공교육이 아무리 평등해도 정보와 시간과 돈은 평등하지 않다.


그러니 진짜 불평등은 출발선이 아니라 결승선에서 벌어진다.


결국 이 구조 안에서 우리는

"진짜 평등이란 뭘까?"

"출발을 맞추는 건가, 도착을 맞추는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평등이란 것이 꼭 같은 속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빠르거나 느려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진짜 공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공교육의 진짜 목표는

‘앞서가는 아이’나 ‘뒤처지는 아이’를 줄이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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