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사인 하나에 울고 웃고
32화 사인 하나에 울고 웃고
그 날은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요즘 학교는 작가도 초대하고, 시인도 오고, 화가도 초대한다.
엄마인 나는 ‘이런 게 다 교육이지~’ 하며 흐뭇했다
그 때 담임선생님의 공지가 눈에 보였다.
“작가님이 오십니다. 구비된 책이 부족하니 개인적으로 구입하시길 바랍니다.”
오케이 책 구매 완료.
책값이 문제냐 우리 준이가 작가 사인을 받는다는데!
생전 처음 작가한테 직접 이름을 적은 사인을 받는다니 그 설렘을 생각하니 나까지 들떴다.
전날 집에서 사인 연습까지 시켰다.
“준아, 작가님이 ‘이름 써줄까?’ 하시면 뭐라 해야 돼?”
“네! 감사합니다!”
“그렇지~ 그리고 작가님 눈을 봐야 해 고개 숙이지 말고!”
‘작가 사인 예절 특강’ 이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나는 준이가 책을 들고 줄 서서 기다리며, 작가님 앞에서 수줍게 웃고, 사인받을 때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아… 감동적이다.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으면 액자에 걸어두고 싶었다.
그런데!
하교한 준이의 손에 책이 없다.
“책은?”
“작가님께 드렸어.”
“어? 받았어가 아니라 드렸다고?”
“응. 작가님이 책 받아가셨어.”
순간 머리가 띵— 했다.
“그럼 사인은?”
“몰라. 그냥 주고 왔는데…”
헉.
이럴 수가.
많은 선생님, 학부모회, 친구들까지 다 있었는데 누구 하나 “준아, 책 챙겨야지~” 한 사람이 없단 말인가?
나는 웃음 반 허탈한 마음이 반이었다.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아이.
하지만 낯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
'이걸 누가 일일이 챙겨 준단 말인가?
스스로 해 내기가 이렇게나 어렵단 말인가?'
사인을 받는 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처음 누군가가 자기이름을 써주는 순간
처음 내가 ‘그책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걸 그냥 흘려보냈다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다 교훈이네, 교훈.
역시 인생은 늘 교훈을 주는 일을 만나는 여정이야.”
또 한 번 ‘관심’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날 밤, 준이는 계속 "아이고야~~내 책~~작가님 갔어? 내 책은 ?"하고 물었다.
“준아, 작가님한테 책 줬을 때, 뭐라 하셨어?”
“음… 아무 말도 안 했던 것 같아.”
"담임선생님께서 안계셨어?"
"담임선생님이 내 책 가져 갔어"
"?????"
나는 다시 한번생각해 보았다.
"담임선생님이???그럼 혹시??담임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건 아닐까?"
"그런가? 내 책 찾을 수 있어?"
"어 내일 엄마가 담임선생님께 여쭈어 볼께 걱정말고 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더 잘 보이게 만드는 건
결국 나 같은 부모의 눈이 필요하다.
다음날 우리의 예상대로 담임선생님께서 책을 보관해서 돌려 주셨다.
별일 아닌 이런 일들이 준이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종일 고민하게 했다는 것이 답답하다.
그래도 또 하나 나는 배웠다.
내 생각보다는 준이를 돌봐주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준이를 더욱 더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준이 덕분에 사인보다 값진,
‘마음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