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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이야기

31화 선사인 준이의 위대한 도전

by 작가

31화 선사인 준이의 위대한 도전


박물관을 다녀온 날 준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돌멩이 하나에도 역사를 보겠다는 그 깊은 눈.


엄마인 나는 그 눈빛을 이미 수차례 경험해왔다.

그 눈빛이 향한 곳마다 언제나 일이 커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엄마, 나 선사 체험 할래요.”

순간 살짝 긴장했다.


‘선사 체험’이라… 뭐, 박물관 체험 키트 정도겠지?


그런데 이어진 준이의 말.

“진짜 돌로 뗀석기 만들어볼래요. 간석기도!”

...응?


나도 학교에서 배웠다.

뗀석기, 간석기.

그거 인간의 진화에 있어 대단히 의미 있는 유물이긴 하지.

하지만 그걸 집에서 직접 만든다고?

게다가 우리 집 거실에서?


“준아, 그거 진짜 돌로 한다고?”

“응! 돌 주워와서 갈면 돼. 선사인들은 다 그렇게 했어!”


말은 맞다.

하지만 선사인들은 베란다 없이 흰 벽지 없는 시대에 살았다.

거실 한가운데에 돌가루 뿌리며 “엄마, 선사시대 체험 중이에요”라고 외칠 시대가 아니었다.


“엄마, 이 돌 좀 봐봐. 딱 뗀석기용이야.”

준이는 근처 산책길에서 주워온 돌멩이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나는 그 돌에서 ‘호기심’보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준아, 그 돌이… 좀 위험하지 않을까? 날카롭고, 먼지도 나고…”

“선사인들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이럴 줄 알았다.


그의 역사적 몰입력은 언제나 ‘나의 현실 감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묘안을 냈다.

“좋아. 그런데 말이야, 준이.너 지금 선사시대 사람이 되는 거잖아?”

“응. 나는 이제부터 선사인 강준이야.”


“좋아. 그럼… 현대 문명은 포기해야겠네?”

준이는 눈을 깜빡였다.

“무슨 뜻이야?”


“선사인은 스마트폰, 닌텐도, 전기 없는 시대 사람이잖아. 그럼 이제 게임도, 폰도, 냉장고도, 전기불도 없는 삶을 살아야지.”

준이는 잠시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 ‘돌’과 ‘닌텐도’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돌은 거칠고, 닌텐도는 반짝였다.

돌은 갈아야 하고, 닌텐도는 버튼만 누르면 된다.


역사는 결국 ‘편리함의 진화’로 흐른다더니, 그 결론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재연되고 있었다.


“그럼 밥은?”

“나가서 아무거나 따먹어야지.”

“그럼 유튜브는?”

“유튜브는 없지!.”

준이는 그제야 심각해졌다.


눈빛이 점점 흐려지더니 마침내 말했다.

“...그럼, 난 현대인으로 살래.”

그의 손에서 돌이 툭 떨어졌다.


마치 신석기 시대의 마지막 인류가 문명으로 건너가는 순간 같았다.

나는 그 돌을 슬며시 치우며 말했다.

“그래, 준아. 현대인도 위대하단다. 선사인은 돌로 도구를 만들었지만, 현대인은 전기로 세상을 움직이잖아.”


“그럼, 나 닌텐도 좀 해도 돼?”

“그건 안 돼.”

“왜? 나 현대인인데?”

“현대인 중에서도, 엄마의 아들은 아직 ‘구몬인’이야. 구몬부터 해”

준이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사는 참… 쉽지 않구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쉽지 않지.


하지만 이런 대화 하나하나가 바로 ‘살아 있는 공부’였다.


잠시 후, 준이는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돌은 그냥 버리면 안 돼. 이건 내 도구니까.”

역사를 배운다는 건, 단지 옛날 걸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일이니까.


돌 하나에도 진심을 담고, 세상과 연결되는 상상력을 가진 아이.

그게 얼마나 귀한가.

나는 그 돌을 정성스레 씻어 베란다에 올려두었다.


그날 밤, 준이는 닌텐도를 하며 말했다.

“엄마, 내가 선사인 아니고 현대인이라 불 피우는 건 포기했지만, 대신 게임에서 불화살 만들었어.”


나는 웃었다.

아주 훌륭한 진화다.

그 어떤 교과서보다 생생한 배움의 시간.


오늘도 우리 집엔 문명과 선사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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