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피스 빌런이다 #12] 렛뎀 이론의 직장생활 활용기
덤앤더머 & 사오정 동료들은 팀장에게 맡기고
나는 나의 평화를 지키기로 했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가능한 '덜' 분노하며 살기로 했다. 왜냐하면, 무능한 동료들에게 화내봤자, 내 하루만 무너진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아무리 답답해 한다고 해서, 결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개선이 가능한 존재였다면, 지금 이 모습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덤앤더머’와 ‘사오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잘 듣거나 읽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메모조차 않기 때문이고, 정말 최악인 점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두 명이서 해결책을 찾는 엉뚱한 논의'를 한다는 점이다. 정말 영화 <덤앤더머>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덤앤더머 : 1994년 코디디 영화로 주인공 2명이 좀 모자라는 친구 캐릭터로 나온다. 영화의 흥행 이후 바보같은 두 사람을 지칭하는 말의 대명사처럼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놓아주려 한다. 그들을 '패스의 달인' 팀장에게 노룩 패스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계기가 뭐냐고? 책 <렌뎀 이론>을 읽고 나서다. 책 주제는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하다.
Let them that way (그들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나둬라)
Let me focus on myself. (나는 내 감정·목표·가치를 지키기)
즉,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면 나는 고통스럽고, 나를 중심으로 살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안녕~~ 덤앤더머&사오정들아!
며칠 전 회사에서의 일이다.
내가 업무를 하면서 정리해 놓은 자료를 공유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후속으로 할 일에 대해 명확하게 설면해 주었다.
“이 건은 최근 3개월 데이터를 업데이트해서 옆팀과 사전 협의하고 나서, 상무님에게 보고하시면 됩니다.”
사오정 동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메모를 하지 않았다. 회의 내용을 녹음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말해준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그러나, 사오정 동료의 눈빛은 ‘오늘 점심 뭐 먹지?’ 같은 평화로움과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
며칠 후, 사오정은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내가 말해 준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었다. 그 대신 ‘감으로 봤을 때 긍정적’이라는 문장이 굵은 글씨로 박혀 있었다. 게다가 옆팀과 사전 미팅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그는 내 설명을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척’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오정’이라 부른다. 듣는 듯하지만, 다른 세계의 언어를 쓰는 사람. 그 결과, 내 말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고, 그의 머릿속엔 전혀 다른 내용이 남는다.
또 다른 날, 팀장과 동료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회의 주제는 ‘서비스 만족도 하락’이었다. 그런데 덤앤더머 팀원은 회의 시작 3분 만에 말했다.
“일단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나는 놀랐다. 다양한 관점의 해석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 디자인이 원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다른 사오정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는 거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용자들이 요즘은 색감에 예민하잖아요.”
그들은 현상과 문제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서로에게 확신을 주는 방식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그 모습이 영화 ‘덤앤더머’의 한 장면 같았다.
깜짝 놀라을 정도의 확신, 근거 없는 낙관,
그리고 이유 있는 듯한 이유 없음.
나는 그날 회의에서 아무 말도 말하지 않았다.
덤앤더머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Let Them That Way!!!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건 우리 팀의 성과 문제가 아니라, 내 에너지의 소멸 문제구나.”
그래서 나는 전략을 180도 바꿨다.
첫째, 그들을 NPC (Non-Player Character)로 취급하기
NPC는 게임 속 배경 캐릭터를 의미한다. 게임 설계자가 프로그래밍한 대로만 헹동하고 말하는 존재다. 영화로 치면, '지나가는 행인 1' 정도다. 그래서, 게임 진행에 전혀 영햘을 주지 않는 존재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된다.
나는 덤앤더머&사오정들을 NPC 취급하기로 했다. 그들이 또다시 황당하고 멍청한 말과 행동을 하면,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띠링! 오늘도 덤앤더머 NPC가 정해진 대사를 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속으로 웃음이 났고, 상승하려던 화는 꼬리를 내렸다.
두번째, 감정을 기록으로 바꾸어 승화하기
그들 때문에 답답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메모장에 썼다.
“이건 내 다음 글의 소재가 될 거야.”
그렇게 하자마자, 빨간 게이지로 타오르던 분노는 하늘색 창작의 빛으로 변했다.
세번째, 내 뇌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설명하기.
그들이 바보스럽고 멍청한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내 뇌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나에 대한 생존 위협이 아니야. 그들의 무능이고, 회사와 팀장이 해결해야할 문제야.”
이렇게 속삭이면, 묘하게도 심장의 흥분이 진정되었다.이 주문 확언은 마음의 호흡법이자, 정신보호막이었다.
[참고] 무능한 동료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이젠 나는 그들의 무능을, 무능하면서 월급을 타먹는 기새웅 같은 모습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으로 그들에게 ‘직장인 기본기 3종 세트’를 선물하고 싶다.
1️⃣ 맥킨지의 문제해결 프로세스
문제를 정의하지 않으면 답도 없다.
2️⃣ 로직 트리(Logic Tree)
복잡한 문제는 가지치기하듯 쪼개라.
3️⃣ 두괄식 요약 말하기
결론부터 말하라, 사람들은 당신의 서론에 관심 없다.
그들이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익히면, 내 하루가 조금은 덜 피곤해질 것이다.
나는 어설픈 직딩일 뿐이다.
덤앤더머&사오정은 유능한 팀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한때 최고를 지향했다. 모든 걸 완벽히 해내고 싶었고, 동료들의 실수를 대신 커버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깨달았다. 그것은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자기소모였다.
이제는 덤앤더머와 사오정이 여전히 내 옆에 있어도 괜찮다. 그들은 내 분노를 자극하는 존재에서, 내 평정을 단련시키는 스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은 '유능한' 팀장에게 200% 떠 넘기기로 했다. 내가 그들에게 "A를 오늘 2시까지 작성해서 보내세요."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팀장에게 메일을 쓴다. "사오정 과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성했습니다."라고...
물론 여러분은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팀장이 유능했으면 덤앤더머&사오정 동료들이 저렇게 계속 행동했을까라고... 그러나, 이런 불필요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뭉쳐 멀리 던져버린다. 휘이익~~~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설프게 살겠지만, 덤앤더머와 사오정이 있어도 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