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선언' 이란 모순
'비혼 선언'이라는 웃지 못할 자기 선언
요즘 SNS를 둘러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비혼 선언'이라는 문구와 마주하게 된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SNS에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표하고, 그 선택을 지지하는 이들과 열띤 댓글 토론을 벌이는 풍경.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를 왜 저토록 비장하게 '선언'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무것도 안 하면 비혼인데, 왜 굳이 '선-언'을 하는가
결혼은 행동으로 성립되는 제도다. 그렇다면 비혼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상태 그 자체다. 굳이 선언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혼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여전히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영향력 아래에 있음을 증명한다.
나는 이것이 마치 실력은 안되면서 "난 서울대 안 갈 거야"라고 외치는 학생의 모습과 같다고 본다. 그 말 속에는 '서울대'라는 목표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기준 안에서 자신을 평가받고 있다는 불안감이 내포되어 있다. 진짜 비혼주의자는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타인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선언'이라는 행위는 결국 "나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발현에 가깝다.
'골드미스'의 재림, 포장만 달라졌을 뿐
나는 이 현상을 보며 20년 전 유행했던 '골드미스' 열풍을 떠올린다. 당시 TV에서는 능력 있는 여성 연예인들을 앞세워 결혼하지 않아도 멋지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하지만 그 본질은 '결혼 안 한 여성'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캠페인에 불과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당당하려면, '돈'과 '능력'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또 다른 압박이었다.
지금의 '비혼 선언'은 그 골드미스 담론의 디지털 버전일 뿐이다. 과거에는 "결혼 안 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결혼 안 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포장지는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결혼 중심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기방어적 태도가 깔려있다.
자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또 다른 폭력
"자기 삶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 전시하고, 거기에 태클을 거는 이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은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진짜 자유로운 사람은 타인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댓글 전쟁에 참전하는 순간, 그들의 자유는 이미 타인의 승인에 종속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선언'들이 아직 경험이 적은 어린 친구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SNS에서 '비혼'은 자유롭고 멋진 삶으로, '결혼'은 낡고 억압적인 제도로 단순화되어 소비된다. 결혼이 주는 책임감, 관계의 깊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의미 같은 복잡한 가치들은 생략된 채, 편향된 이미지만이 각인된다.
나는 결혼을 하든 못하든, 그것은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거나 상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사람이다. 결혼을 꿈꿀 만한 상황이 단 한 번도 내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혼 선언'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나는 한 가지 진실을 말하고 싶다. 진짜 자유는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책임지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굳이 떠들 필요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