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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편의점, 타인의 하루를 치우는 시간

by Yong

새벽 편의점, 타인의 하루를 치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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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새벽 근무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청소, 그리고 하루 동안 쌓인 쓰레기통들을 비우는 일이다. 편의점답게 그 양은 어마어마하다. 나는 20대 초반에 시작해서 8년 가까이 담배를 피웠고, 금연한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인지, 새벽의 정적 속에서 마주하는 흡연자들의 흔적은 나에게 더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흡연자들이 남기고 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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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앞을 치우다 보면 어김없이 흡연자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바닥에 비벼 끈 담배꽁초의 검은 재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분리수거함에는 플라스틱 컵과 캔 사이로 꽁초와 담배갑이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다. 한두 명의 흔적만으로도 금세 지저분해지는데, 하물며 수십 명의 흔적은 오죽할까. 어쩔 수 없는 나의 일이지만, 그 무심한 흔적들을 치우고 있노라면 왜 흡연자들이 비난받고 그들의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지를 몸소 이해하게 된다.


물론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알뜰살뜰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먹다 남은 맥주 캔이 그대로 버려져 악취를 풍기고, 75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로도 부족할 만큼 쌓인 일반 쓰레기 속에서 다시 비닐과 컵라면 용기를 손으로 골라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더욱 양심 없는 이들은, 집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를 통째로 봉지에 담아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마주치는 풍경이다.


신도시의 건물들이 쓰레기 버리는 곳이나 화장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건물주의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무책임이 쌓여 만들어진 당연한 결과다. 나는 오늘도 남들이 버리고 간 하루의 흔적을 치우며, 굳게 닫힌 문들의 이유를 생각한다.


시스템의 얼굴, 그리고 감정의 무게


의외로 남자 손님들은 청소하는 모습을 보거나 "이렇게 버려달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집에서 분리수거를 더 많이 해봤을 법한 주부님들은, 내가 옆에서 청소하는 것을 떡하니 보면서도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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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 모든 뒤처리는 그저 '그 사람의 일'일 뿐이다 라는 의식으로 자신이 지불한 돈이 모든 불편함의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이것도 엄연한 시스템의 한 모습이고 손님과 시시비비를 가려봤자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심함은 계산대 앞에서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5개 묶음 할인 상품을 3개만 사면서 왜 할인이 안되냐고 실랑이를 벌이는 손님 앞에서, 아르바이트생은 무력하다. 그들의 요구는 사실상 "사장인 당신이 손해를 보고 나에게 물건을 깎아달라"는 말과 다름없지만, 사장도 아닌 아르바이트생에게는 그 어떤 권한도 없다. 본사가 만든 시스템은 절대적이고, 우리는 그저 화면에 찍히는 대로 팔 뿐이다.


과일 가게도 아닌 편의점에서 과일이 비싸다고 불평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점점 사무적이고 말을 아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반복되는 피로감 때문이다. 도와주려고 길게 설명하면 오히려 컴플레인만 더 길어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을 택한다. 그것이 불친절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억울하거나 사실 기분이 나쁜 수준까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의 심리를 나도 아니까. 다만 이런 것이 바로 '사회'라는 것을 배울 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논리를 주장하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편함과 오해를 누군가는 묵묵히 감당해야 하는 것. 나는 오늘도 시스템의 얼굴이 되어, 그 모든 감정의 민낯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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