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조카가 제대했다. 녀석이 논산 훈련소로 입대하던 날, 나는 누나와 함께 차를 몰아 직접 녀석을 데려다주었다. 군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들은 이미 진작에 많이 해주었고, 누나 역시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크게 걱정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담담하게 논산으로 향했다.
훈련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다 창밖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행렬이 지나가는데, 그들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런닝 차림에 작은 가방, 손에는 생수통을 든 그들은 행군이라기보다 가벼운 조깅에 나선 학생들처럼 보였다. "군대가 많이 편해졌다"는 말을 머리로만 알던 것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충격이었다.
(식사후 입소대대로 가는 도중 "야전삽 짱재" udt 출신 유투버가 컨텐츠를 찍고 있는걸 봤다. 입대하는 아이들 대상으로 머리를 잘라주는 영상 촬영 중이었다. 실제로 본 그는 생각보다 작은 키와 작은 덩치를 가졌었다.)
그날의 진짜 충격은 입소대대 연병장에서 시작되었다. 입대 인원은 2,500명 남짓이었지만, 그들을 배웅하러 온 가족까지 합치니 입소대대 주변은 만 명이 넘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귀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엄마, 아빠, 형제, 조부모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한 모습은 군 입대가 하나의 거대한 가족 행사처럼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입대자들의 3분의 2 이상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온 모습이었다. 입고 온 옷은 어차피 소포로 집에 보낼 것이고, 필요한 것은 고작 핸드로션 하나 정도일 텐데. 그 바리바리 싼 짐들을 보며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저 애들 아빠들은 다 미필인가?" 군대가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저럴 수는 없을 텐데.
입대식은 기대와 달리 어딘가 어설펐다. 무대 앞에 늘어선 입소대대 기간병들의 경례는 각도도, 타이밍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들은 훈련을 지휘하는 조교가 아니라, 입소 절차를 돕는 행정 인력일 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군대의 첫인상은 칼날 같은 엄격함이었는데, 조카가 마주한 첫 풍경은 이토록 헐겁고 산만했다.
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줄지어 입소대대 안으로 사라지자, 연병장 곳곳에서 가족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나와 나는 조카의 얼굴을 확인한 뒤,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 한편에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묘한 감정이 스쳤지만, 이상하게도 무덤덤했다. 아마 내가 이미 겪어낸 시간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고, 조카에겐 이제 막 시작된 세계였다.
요즘 군대는 훈련병 시절부터 일요일에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카 역시 카톡으로 "삼촌 때랑은 다르네, 진짜 편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직 군 생활의 진짜 무게를 겪기 전인 훈련병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정도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조카가 유난히 건장하고 노동에 익숙한 아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녀석은 자대로 공병대에 배치되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공병 노가다'가 아니라 폭파물 설치라는 특수 주특기를 받아 상대적으로 편하게 복무했다. 장비를 차에 싣고 이동하니, 내가 겪었던 지긋지긋한 행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행히 조카는 건강하게 제대했고, 지금은 복학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녀석의 군 생활은 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지만, 나는 안다. 세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져도, 군대라는 공간이 한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던 그 아이가 진짜 어른이 되어 나오는 곳. 그곳이 여전히 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