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물흐물한 존재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

by 이땃쥐

L&S 타워의 모든 공간은 기준의 통제 아래 있었다.

모든 사무실은 동일한 조도, 동일한 시스템 가구, 동일한 백색소음으로 채워져

예측 가능한 안정성을 제공했다.

단 한 곳, 17층 동쪽 가장 구석에 위치한 ‘창의 부화팀’의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기준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공기의 질감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공기마저 끈적하게 느껴지는 미묘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복도를 채운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냄새.

마치 거대한 인큐베이터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기준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의 직원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껍질이 없는 계란을 사람 모양의 틀에 부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얇고 반투명한 막이 위태롭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안으로는 희미하게 비치는 짙은 노른자위가 핵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딱딱한 사무용 의자가 아닌, 움푹한 둥지 같은 빈백 소파에 몸을 싣고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 천천히, 그리고 무기력하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기준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데이터로 변환되었다.


[시스템 경고: 규정되지 않은 업무 환경. 생산성 예측 불가. KPI(핵심성과지표) 측정 불가. 상태: 심각한 비효율.]


그는 혐오감을 감추지 않은 채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그의 등장에도 대부분은 미동도 없었다.

몇몇이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렸지만, 초점 없는 시선은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기준의 발걸음이 한 직원의 책상 앞에서 멈췄다.

그의 모니터에는 하얀 화면만 띄워져 있었고, 직원은 미동도 없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준이 그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직원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화면 중앙에 검은 점 하나를 찍었다.

그게 전부였다. 지난 5분간의 업무 결과가 고작 점 하나라니.


“아… 팀장님. 어서 오십시오.”


어느새 유일하게 사람의 형상을 온전히 갖춘 박하준 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는 기준이 분석한 회사 인력 데이터에

‘박하준 팀장, 15년 차. 특이사항: 회사 내 유일한 심리학 전공자’라고 기록된 인물이었다.

그는 흐물거리는 직원들 사이에서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존재였다.


“보시다시피, 저희 팀은 조금... 방식이 다릅니다.”

박 팀장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압박 속에서 나오지 않으니까요. 충분히 이완하고,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 친구도 지금 화면에 점 하나를 찍었지만, 저 점이 다음 분기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릴 캠페인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기준은 아무런 표정 없이 대답했다.

“씨앗이 발아할 확률은 얼마입니까? 그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 비용을 데이터로 환산해 보셨습니까? ‘어느 순간’이라는 불확실성에 회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박 팀장은 곤란한 듯 뺨을 긁적였다.

“씨앗은... 흙 속에서 조용히 자라는 법이니까요. 모든 걸 숫자로 계산할 수는...”


기준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박 팀장의 변명이 차가운 데이터로 변환되고 있었다.


[분석 결과: 비논리적 변명. 감상적 접근. 측정 불가 변수 남용. 결론: 개선의 여지없음.]


기준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박 팀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너무 모든 걸... 베어내려고만 하진 마십시오. 때로는 기다려주는 게...”


그의 말은 기준에게 닿지 않았다.

기준의 머릿속은 이미 완벽한 수술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이러스의 존재와 활동 방식,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에 미치는 악영향까지 모두 확인되었다.

그는 확신했다.

저 흐물흐물하고 비효율적인 존재들을 그대로 두었다간,

이들이 뿜어내는 비합리성의 포자가 단단하게 구축된 시스템 전체를 썩게 만들 것이다.


바이러스는 확인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박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