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중독에서 벗어나 존재로 증명하는 삶
1장. 무대 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무대가 끝났습니다. 조명이 꺼지고, 뜨겁던 환호성이 멎습니다. 그 텅 빈 객석에 홀로 남겨진 기분. 우리 모두는 그런 순간을 압니다.
열심히 준비한 발표가 끝나고 동료들의 칭찬이 쏟아지던 순간, 야심 차게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폭발하던 그 순간. 우리는 짜릿한 성취감과 함께 '내가 가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박수 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이상하리만치 공허합니다.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번에는 저번만큼의 박수를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리는 인정의 정점에서 가장 큰 공허를 만납니다.
2장. ‘좋아요’가 나의 가치가 될 때의 위험성
우리는 왜 이토록 타인의 '좋아요'에 목숨을 거는 걸까요? 스크롤을 내리며 확인하는 그 작은 숫자가, 마치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성적표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위험한 신호입니다.
'좋아요'가 100개일 때의 나와 10개일 때의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일까요? 타인의 평가가 나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될 때, 우리는 모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파도(타인의 무관심)가 한 번 밀려오면, 나의 존재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수 있으니까요.
3장.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는 뇌 (뇌과학: 도파민 루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
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신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이건, 음... 우리의 뇌 문제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말이죠.
타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순간,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강력한 쾌락 물질이 터져 나옵니다. 문제는 이 도파민이 '중독성'을 갖는다는 겁니다. 더 강한 자극, 더 큰 칭찬, 더 많은 '좋아요'를 원하게 되죠. 이것이 바로 '인정 중독 메커니즘'입니다.
우리는 사실 칭찬 자체가 고픈 게 아니라, 그 칭찬이 가져다주는 도파민의 즉각적인 보상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10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그 손가락은, 사실 뇌의 간절한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4장. 나는 왜 끊임없이 비교하는가 (심리학: 사회적 비교 이론)
뇌가 '중독'을 원한다면, 심리는 '비교'를 부추깁니다.
심리학에는 '사회적 비교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하고 안정감을 얻는다는 거죠.
과거에는 그 비교 대상이 고작 동네 친구나 직장 동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SNS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하고,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가장 완벽한 순간'만을 골라 우리 눈앞에 들이밉니다.
이건 공정한 비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화려한 '하이라이트'와 나의 초라한 '일상'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이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타인의 무대 아래 관객으로 남을 뿐입니다.
5장. 성과만이 존재 이유가 될 때의 함정
"이번 프로젝트 성공했어. 그러니 나는 가치 있어."
"승진에 실패했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성과 중심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무엇을 했는가(Doing)'에 달려있다고 말이죠. 높은 연봉, 멋진 직함, 많은 팔로워... 그것이 당신을 증명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박수는 언젠가 멈춥니다.
만약 성과가 사라지면, 나의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지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인정의 시대'가 파놓은 가장 무서운 함정입니다. 우리는 '하는 나(Doing)'에 매몰되어 '있는 나(Being)'를 잃어버렸습니다.
6장. 나의 존재는 이유가 필요 없다 (철학: 사르트르, 노자)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해내야 가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로 말입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합니다. 우리가 '무엇'(의사, 작가, 인플루언서)이 되기(본질) 이전에,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나 명함, 타인의 평가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존재하기에,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갖습니다.
이것은 서양 철학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자(老子)가 말한 '무위(無爲)'를 떠올려보세요. 이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무기력한 외침이 아닙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성과에 얽매여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나 자신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 중심 사고'의 핵심입니다.
7장. 내적 독립의 구조화: 자기 시스템 만들기
그럼 어떻게 타인의 박수 없이 나를 지탱할 수 있을까요? '내적 독립'을 위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 글은 그것을 '내적 시스템'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내적 시스템'이란, 거창한 게 아닙니다.
타인의 박수가 사라져도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조용한 엔진'입니다. 외부의 전원이 꺼져도, 내면의 불빛으로 나를 다시 켜는 힘입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3단계를 제안합니다. 이건, 글쎄요, 완벽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분명 당신에게 단단한 토대가 되어줄 겁니다.
1️⃣ 외부 자극 절식기
가장 먼저, 외부의 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몸을 위해 음식을 조절하듯, 마음을 위해 '자극 절식'이 필요합니다. 의도적으로 SNS 피드백을 확인하는 시간을 줄여보세요. 성과 보고나 칭찬에 과도하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해보는 겁니다.
처음엔 불안할 겁니다. "혹시 나만 뒤처지는 거 아냐?", "사람들이 날 잊으면 어떡하지?"... 괜찮습니다. 당신의 가치는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타인의 평가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시간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시간입니다.
2️⃣ 내면 대화 복원
외부의 소리가 줄어들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루에 딱 10분만 시간을 내어 기록해보세요. 거창한 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 "그 선택은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나, 나의 기준 때문이었나?"
이건 반성문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대화'입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의 기준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이 아닌 '나'를 중심에 두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3️⃣ 조용한 확신 루틴
마지막 단계는 '조용한 확신'을 쌓는 겁니다.
타인의 시선이 없는 시간에, 오직 '나에게 의미 있는' 행동을 반복하는 겁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 퇴근 후 30분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 주말 아침 오롯이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는 시간.
이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타인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 나아가는 사람이다"라는 단단한 내적 확신을 만듭니다.
8장. 실패한 예술가에게서 배우는 것 (일화/사례)
우리는 종종 '박수받지 못한 예술가'들의 삶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반 고흐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지독한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동시대의 인정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적 시스템'을 가동해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볼까요? 아예 '박수를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어떻습니까? 그는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만의 무대'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의 문제를 파고들며 글을 썼습니다.
에밀리 디킨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세상에 단 몇 편의 시만을 발표했지만, 홀로 1,800편에 달하는 시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탐구했습니다.
그들은 박수를 '잃은' 사람들이 아니라, 박수가 애초에 '필요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인정보다 더 중요한 '존재 그 자체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9장. 스스로를 초월하는 힘 (철학: 니체)
철학자 니체는 '자기 초월'을 말했습니다. 진정한 힘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데서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이 '내적 시스템'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SNS 속의 그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객은 타인이 아닙니다.
비교의 대상을 외부에서 내부로 가져오십시오. 타인의 박수 소리가 아닌, 나의 성장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는지, 나의 기준을 스스로 지켜냈는지...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10장. 내가 나의 첫 번째 관객이 된다
박수 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공허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시끄러운 타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나는 '내면의 무대'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무대에 당신을 첫 번째 관객으로 초대하십시오.
당신의 서툰 시작에 스스로 응원을 보내고, 당신의 작은 시도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십시오. 당신의 실패에 낙담하는 대신, 스스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십시오. 내가 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세상 그 어떤 평가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맺음말: 인정을 지나 존재의 시대로
우리는 '인정의 시대'를 지나 '존재의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과가 없어도 나는 가치 있습니다.
박수가 없어도 나는 존재합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박수보다, 내 안의 고요가 더 큰 음악이 됩니다.
나는 나의 첫 번째 관객이자,
마지막 무대의 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