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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당신의 전부다

업적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들

by 하레온

우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을 설명하나요?


누군가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종종 직함이나 소속, 혹은 우리가 이뤄낸 성과 목록을 꺼내 듭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아무개', '몇만 팔로워를 가진 크리에이터', '연봉 얼마를 받는 프리랜서'. 그것이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나를 증명하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과 중심 사회에서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숫자는 명확하고, 업적은 객관적이라고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토록 원하던 성과를 손에 쥐고, 숫자를 증명해내도 마음 한편이 공허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정말 나일까?' 일이 잘 되어도 행복하지 않거나, 다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지쳐 번아웃을 겪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직함과 숫자를 떼어냈을 때, 과연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까요? 우리는 정말 업적으로만 증명되는 존재일까요?


만약 당신이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에 지쳐있다면, 혹은 성과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글은 '나'를 정의하는 기준을 '업적'에서 '태도'로 옮겨오는 여정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의 태도는 진실하다'는 평온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탐구입니다.




1장: 업적이 만든 거울 — 우리는 왜 스스로를 숫자로 평가할까

Image_fx - 2025-10-24T205414.064.jpg 숫자와 그래프만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을 바라보며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의 미니멀한 실루엣.


우리는 왜 이토록 스스로를 숫자로 평가하게 되었을까요.


현대 사회는 '측정 가능한 가치'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성과평가, 조회수, 팔로워 수, 연봉, 아파트 평수.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되고 서열화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강력한 기준이 됩니다. 복잡다단한 한 사람의 가치를 아주 빠르고 쉽게 판단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문제는 우리가 그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 숫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숫자는 우리의 '행동'을 보여줄 뿐, 우리 '존재'의 깊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비추는 모습, 즉 '업적이 만든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듭니다.


이 거울은 지독히도 변덕스럽습니다. 내가 밤새 노력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거울은 '너는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인정과 피드백이라는 외부 조건에 따라 내 모습이 시시각각 변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적 자존감'은 이처럼 타인의 평가나 성과에 의존하기에 지극히 불안정합니다.


우리가 번아웃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노력이 아닌, 오직 결과로만 평가받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계속 더 높은 숫자를 향해 달려야만 합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도록 발버둥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나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요? 우리는 그 거울 앞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2장: 태도의 힘 — 결과를 넘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

Image_fx - 2025-10-24T205444.197.jpg 결과와 상관없이 의식적인 선택을 상징하듯, 어두운 흙에 빛나는 작은 묘목을 정성껏 심는 손 클로즈업.


길을 잃었다면,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던 '업적의 거울'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태도의 결'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 글에서 제안하는 '존재의 태도학(Attitude of Being)'입니다. 결과보다 방향을, 속도보다 온도를, 성과보다 성실의 질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아주 오래된 지혜인 스토아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상의 일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업적'이나 '결과', '타인의 평가'는 명백히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속합니다. 반면, '나의 태도', '나의 노력',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해석'은 온전히 통제 가능한 영역입니다.


고대의 스토아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내면의 평화를 소모하지 말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조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 말은, 예측 불가능한 결과(업적)에 내 존재 가치를 저당 잡히는 대신, 오늘 하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한 팀원이 모두가 기피하는 데이터를 정리하며 밤늦게까지 발표 자료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발표자는 그 노력을 몰랐을 수도 있고, 그 공은 팀장의 이름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업적의 거울'로 본다면 이 팀원의 노력은 '0'입니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고, 성과로 기록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존재의 태도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순간은 완벽한 '증명'의 순간입니다. 그는 타협할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됐어"라며 자신의 성실함과 진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그 작은 순간의 선택,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심리학자인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이론(SDT)'은 이러한 내재적 동기가 왜 중요한지 설명합니다. 인간은 외부의 보상(성과, 돈)이 아니라, 자율성(스스로 선택), 유능감(잘 해내고 있음), 관계성(연결됨)을 느낄 때 진정으로 행복하고 몰입합니다. 우리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자율성'의 표현입니다.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성실함, 칭찬받지 못한 노력.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쌓여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결을 만듭니다.




3장: 나를 정의하는 문장 —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것인가’

Image_fx - 2025-10-24T205508.749.jpg 태도로부터 만들어진 평온한 자존감을 상징하듯, 내면에서부터 은은하고 고요한 빛을 내뿜는 단단한 주춧돌.


우리는 서문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을 설명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업적의 거울'이 아닌 다른 대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정체성의 재정의'이며 존재의 선언입니다. 나의 가치는 숫자에 있지 않고, 나의 모든 순간의 태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불완전함의 선물』에서 외적인 인정이나 완벽한 성과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수하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태도가 바로 그 용기입니다.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진실함을 선택하는 용기,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성실함을 지키는 용기 말입니다.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마감 기한을 어기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나는 동료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내가 지키려는 작은 태도들이 모여 '나'를 정의하는 문장이 됩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윌 듀런트가 아름답게 해석했듯,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We are what we repeatedly do. Excellence, then, is not an act, but a habit.)


여기서 '습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태도'입니다. 업적은 단 한 번의 행동(act)으로 사라질 수 있지만, 태도는 반복되는 습관(habit)으로 남아 우리 자신이 됩니다.


성과 중심 사회에서 '태도'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느리고 답답한 길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과로만 자신을 규정하는 삶은 조급하고 불안합니다. 반면, 태도로 자신을 규정하는 삶은 '평온한 자존감'을 줍니다. 결과가 나빠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태도는 진실했으니까요.


결국, 태도는 업적이 사라진 뒤에도 남습니다. 당신의 삶에 남기고 싶은 것은 스쳐 지나가는 숫자입니까, 아니면 당신 존재 자체의 단단한 결입니까.




에필로그: 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화려한 무대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은 흩어집니다. 우리가 그토록 쫓았던 성과(업적)는 그렇게 기록되어 과거가 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땀 흘리던 모습,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끝까지 애쓰던 눈빛, 혹은 혼란 속에서도 동료에게 건넸던 다정한 말 한마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업적은 한순간 우리를 '증명'하지만, 태도는 평생에 걸쳐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숫자와 성과는 언젠가 빛이 바래지만, 당신이 오늘 하루를 대한 진심 어린 태도만큼은 당신이라는 사람의 고유한 향기가 되어 곁에 머뭅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향기를 남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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