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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우주에서 엑시트하라

휩쓸리는 감정의 파도 아래 단단한 나만의 바닥을 만드는 법

by 하레온

타인의 우주에서 길을 잃다


우리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도, 정작 지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폭풍우는 감지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은 왜 당신 자신보다 남을 더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상사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친구의 무심한 카카오톡 답장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불쾌해하는지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합니다. 마치 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인 나는 객석으로 밀려나 있고, 타인이라는 관객들이 무대 위를 점령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타인 지향적인 삶은 필연적으로 세 가지 치명적인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첫째는 선택 기준의 상실입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이직이나 결혼 같은 중대한 결정까지, 우리는 습관적으로 묻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하지? 이것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까? 내 욕구보다 타인의 평가가 우선순위가 되는 순간,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결재를 받는 행위로 전락합니다. 둘째는 감정의 과잉 해석입니다. 상대방의 침묵을 거절로, 무표정을 비난으로 해석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합니다. 팩트는 그저 그가 말이 없었다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 공백을 나의 부족함이라는 소설로 채워 넣으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셋째는 정체성의 흐릿함입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다 보니, 어느 순간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버린 것입니다. 다 좋아, 아무거나 괜찮아라는 말은 배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자아의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성격 탓으로 돌리며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할까,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 하지만 이것은 당신의 성격적 결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정답을 맞히는 훈련은 받았지만, 나만의 답을 만드는 훈련은 받지 못했습니다. 칭찬과 인정이라는 외부 보상에 길들여진 뇌는 타인의 피드백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기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순히 용기를 내라거나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식의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을 것입니다. 감정적인 위로는 진통제일 뿐, 병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분석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사고 구조를 해부할 것입니다. 왜 우리의 뇌가 타인의 시선에 그토록 취약하게 설계되었는지, 그 오작동하는 회로를 어떻게 끊어내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논할 것입니다. 이 글은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감상적인 여행기가 아니라, 타인의 우주에서 탈출하여 나만의 중력을 회복하는 정교한 기술 지침서입니다.




본론 1: 왜곡된 마음의 지도 읽기

Image_fx (1).png 캄캄한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홀로 서 있는 사람과 흐릿한 관객들의 형상


변화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잘못된 사고 회로 때문에 감정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결과값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감정을 억누르거나 달래려고 애쓰는 것은 파이프가 터져 물이 새는데 바닥만 닦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수도꼭지를 잠가야 합니다. 즉, 감정을 만들어내는 인지 구조, 사고의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뇌는 진화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원시 시대에 무리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맹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고 식량을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타인의 표정을 읽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달시켰습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 와서 이 생존 본능이 불필요한 과잉 경보를 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SNS의 좋아요 숫자가 적다고 해서, 직장 동료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물리적 생존이 위협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뇌의 편도체는 이를 사자가 나타난 것과 동일한 위기 상황으로 인지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쏟아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는 인정 욕구와 사회적 평가 공포의 진화 심리학적 기원입니다.


여기에 인지 편향의 일종인 조명 효과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조명 효과란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내가 입은 옷의 작은 얼룩, 회의 시간에 더듬거린 말 한마디를 남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 실험들은 타인이 우리의 행동이나 외모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절반, 아니 10분의 1만큼도 관심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대에서 주인공 노릇을 하느라 바빠서, 당신이라는 조연의 실수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습니다. 타인은 당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파국화라는 사고의 오류에 자주 빠집니다. 한 번의 실수가 인생 전체를 망칠 것이라는 비약적인 논리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망치면 승진에서 누락될 것이고, 그러면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고, 결국 패배자가 될 것이다라는 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 시나리오입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허구의 공포 영화입니다. 이러한 왜곡된 마음의 지도를 가지고는 인생이라는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감정이 아닌 시스템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이러한 뇌의 오작동을 인지하고 멈춤 버튼을 누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안이 올라올 때 아, 내 뇌가 또 원시 시대의 생존 경보를 울리고 있구나, 저 사람들의 시선은 실체가 없는 홀로그램일 뿐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을 주관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로 처리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사고 구조의 해체이자 진짜 자기 인식의 시작입니다.




본론 2: 내면의 나침반 설계하기

Image_fx (2).png 혼란스러운 회색 소용돌이 배경 속에서 황금빛으로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든 손.


잘못된 지도를 버렸다면, 이제는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부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적 기준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3단계의 사고 프로세스를 제안합니다. 이 과정은 추상적인 다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훈련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분리입니다. 나와 내 감정 사이에 거리를 두는 메타인지 훈련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화가 난다라거나 나는 불안하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나와 감정을 동일시하는 언어 습관입니다. 이를 나는 내 안에서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라고 바꿔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CCTV 룸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는 경비원처럼,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위치를 선점해야 합니다. 이 관찰자 시점이 확보되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정립입니다. 선택의 순간에 타인의 기준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를 지키는 검문소를 세우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습관적으로 남에게 묻기 전에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십시오.


이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진짜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 배우자,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이 결정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타인의 평가는 기껏해야 일주일, 길어야 한 달입니다. 하지만 내 선택의 결과는 내 인생에 수년, 혹은 평생 남습니다. 유효기간이 짧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유효기간이 긴 내 인생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인가? : 타인의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상수로 두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나의 태도와 행동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값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통합입니다. 이러한 기준들이 머릿속의 이론으로만 남지 않고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루틴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도구는 기록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정 일기가 아닌 사실 관찰 일기를 써보는 것을 권합니다. 오늘 내가 타인의 눈치를 보며 하지 못했던 말은 무엇인지, 반대로 용기 내어 내 기준대로 선택한 일은 무엇인지 기록합니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합니다. 자신의 선택과 감정의 패턴을 데이터로 축적하다 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취약해지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빅데이터가 바로 당신의 직관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나침반이 됩니다.




결론: 흔들리지 않는 중력의 중심


자기 인식이란 결국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중력의 중심을 만드는 일입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제각각의 궤도를 돌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이라는 확실한 중력의 중심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면에 확고한 기준이라는 중력이 생기면, 타인이라는 수많은 위성들이 주변을 맴돌더라도 충돌하거나 궤도를 이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궤도를, 나는 나의 궤도를 돌 뿐입니다.


불안을 다루는 가장 우아한 기술은 거리두기입니다. 타인의 평가는 그 사람의 사정이고, 나의 가치는 나의 사정입니다. 이 둘을 섞지 않는 것, 타인의 감정을 내 책임으로 떠안지 않는 것이 건강한 관계와 자존감의 핵심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오해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해명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에게는 해명이 필요 없고, 당신을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해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바다를 상상해 보십시오. 표면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칩니다. 하지만 깊은 바닷속 바닥은 언제나 고요합니다. 타인의 기대, 사회의 평가, 유행과 시선들은 표면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소란을 피웁니다. 하지만 당신의 내적 기준, 당신이 스스로 정립한 가치관은 그 아래 깊고 단단한 바닥입니다. 파도는 바닥을 흔들 수 없습니다.


진짜 나를 만난다는 것은 파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을 파도가 치는 표면이 아닌 고요한 바닥에 두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우주에서 걸어 나와, 온전한 나만의 우주를 유영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정해준 속도가 아닌 당신의 호흡으로, 남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닌 당신의 나침반을 믿고 걸어가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대는 밀려오는 파도이고, 당신의 기준은 그 아래 단단한 바닥입니다. 파도는 결국 흩어지지만, 바닥은 영원히 당신을 지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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