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분, 뇌의 자동항법에서 벗어나는 기술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잠결에 알람을 끄고, 가장 먼저 집어 든 스마트폰으로 밤사이 온갖 소식을 훑어봅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점심 메뉴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잠들기 직전 침대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스크롤합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방금 당신이 1분간 스크롤하며 본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아마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건 당신의 기억력이 나빠서도, 집중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뇌의 ‘자동항법 장치(Autopilot)’가 아주 성실하게 작동한 결과일 뿐이니까요. 이 글은 바로 그 무심코 켜두었던 장치를 자각하고, 아주 잠깐이라도 우리 삶의 조종간을 되찾아오는 ‘의식의 스위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하루는, 얼마나 ‘당신’의 것인가요?
우리가 왜 생각 없이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살짝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놀라운 기관이지만, 사실은 꽤나 게으른 ‘에너지 절약가’입니다. 뇌는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최대의 효율을 내고 싶어 하죠. 그래서 익숙한 상황에 대해서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 즉 ‘습관’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동항법 장치’의 핵심 원리입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설명했습니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고 빠르며, 거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 조종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는 것, 익숙한 길을 운전하는 것 등이 모두 시스템 1의 역할이죠. 반면 시스템 2는 신중하고 느리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기장입니다. 복잡한 문제를 풀거나, 낯선 곳을 찾아갈 때 비로소 등장하죠. 문제는 현대 사회가 너무나 많은 선택과 정보로 가득 차 있어, 우리 뇌가 대부분의 시간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스템 1에 의존하려 든다는 점입니다.
직장에서의 회의를 떠올려 볼까요? 상사의 지루한 이야기에 고개를 셔틀콕처럼 끄덕이고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주말 계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있지만, 실은 방금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아끼려는 뇌의 정교한 자동항법 장치입니다. 결코 당신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뇌가 자신의 효율적인 운영체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자동항법 장치를 끄고 산다는 것, 즉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모든 순간을 철저히 분석하고 통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영적 스승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했듯,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Being in the Now)’ 능력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동항법 장치가 켜진 삶에서는 커피를 ‘마셔 없애고’, 점심을 ‘해결하며’, 사람과의 대화를 ‘처리’합니다. 모든 것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죠. 하지만 깨어 있는 삶에서는 커피의 따뜻한 온기와 깊은 향을 음미하고, 음식의 맛과 질감을 느끼며, 상대방의 눈빛과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자동 조종사(시스템 1)에게 맡겨두었던 조종간을 잠시 기장(시스템 2)이 넘겨받아, 비행의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무의식적인 반응은 우리를 후회할 만한 말이나 행동으로 이끌기 쉽습니다. 하지만 ‘깨어 있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 짧은 공간 덕분에 우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현명한 선택을 내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줄고, 관계가 깊어지며,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의식의 스위치를 켰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거창한 다짐은 필요 없습니다. 깨어 있는 삶은 아주 작고 사소한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당장, 이 글을 읽는 자리에서 바로 실험해볼 수 있는 세 가지 ‘의식의 스위치’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스위치: 3초의 호흡 관찰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 1분 실험:
바로 지금, 딱 3번만 자신의 호흡을 느껴보세요. 숨이 코를 통해 들어오고, 배가 살짝 부풀었다가, 다시 숨이 나가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는 겁니다. 어떤 판단도, 분석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 자체에만 집중해보세요. 흩어졌던 의식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 스위치: 의도적인 선택 멈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무의식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 자동화된 선택의 고리를 딱 한 번만 끊어보는 연습입니다.
▶ 1분 실험:
다음 식사 때, 늘 먹던 메뉴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메뉴를 선택하기 직전, 딱 5초만 멈춰보세요. 그리고 메뉴판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천천히 다시 읽어보세요. 정말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를 주문하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당신은 ‘습관’이 아닌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스위치: 하루 하나의 짧은 기록
자신이 언제 의식의 스위치를 켰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아주 짧게 그 순간을 기록해보세요.
▶ 1분 실험:
오늘 밤 잠들기 전, 휴대폰 메모장이든 작은 수첩이든 좋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했던 순간을 딱 한 가지만 적어보세요. 예: ‘엘리베이터에서 스마트폰 대신 창밖 풍경을 봤다’, ‘화내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 작은 기록은 당신이 삶의 조종간을 잡았던 소중한 증거가 되어줄 겁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가 가진 ‘자동항법 장치’는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돕는 매우 효율적이고 고마운 도구입니다. 매 순간 의식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엄청난 피로를 유발할 뿐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자동항법 장치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필요할 때 잠시 멈출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 양치할 때, 설거지할 때는 고마운 자동항법 장치에 운전을 맡겨두세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대화를 할 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때 잠시 의식의 스위치를 켜는 겁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세 가지 스위치는 너무나 작아서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어두운 방도 가장 작은 스위치 하나로 밝힐 수 있듯, 당신의 하루를, 그리고 나아가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은 바로 그 가장 작은 스위치를 켜는 단 한 번의 알아차림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