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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이제 그만

취향으로 찾아가는 가장 확실한 나

by 하레온

당신의 MBTI는 진짜 당신인가요?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MBTI, 애니어그램, 퍼스널 컬러 진단 같은 유형론에 열광하는지도 모릅니다. 네 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나’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니까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게 정말 내 전부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조금 다른 대답입니다. 거창한 이론이나 복잡한 검사가 아닌, 우리 삶의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감각, 바로 ‘취향’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제안합니다. 당신이 무심코 고른 커피, 반복해서 듣는 음악,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속에 이미 당신이라는 우주가 담겨 있다고, 이 글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자기 탐색의 지도를 건네고 싶습니다.




Part 1: 좋아하는 것들, 당신의 세계를 넓히다

Image_fx - 2025-09-13T103715.587.jpg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하고 복잡한 별자리 지도로 뻗어 나가는 나무로 성장하며, 개인의 세계 확장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자아 탐색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기분 좋은 기억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될 때, 우리 뇌에서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 ‘신경가소성’이라고 부르지만, 쉽게 말해 낯선 동네에 자주 가다 보면 새로운 지름길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장르인 재즈 음악을 우연히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처음에는 그저 멜로디가 좋았을 뿐인데, 어느새 당신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을 찾아 듣고, 주말에는 재즈 클럽을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재즈의 역사, 다양한 아티스트, 즉흥연주의 규칙 등을 탐색하며 당신의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 자체가 다채로워지는 경험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탐험하는 행위는 닫혀 있던 감각의 문을 열고, 당신이라는 세계의 영토를 확장하는 가장 즐거운 방법입니다.


BTS의 RM이 꾸준히 책과 미술에 대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미술관에 가고, 인상 깊었던 책 구절을 팬들과 나눕니다. 그의 이런 지적인 취향은 BTS 음악의 깊이와 철학적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체성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취향이 그의 세계를 넓혔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세계까지 확장시킨 셈입니다.




Part 2: 싫어하는 것들, 당신을 선명하게 만들다

Image_fx - 2025-09-13T103803.527.jpg 거친 대리석 조각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깎여 나가며, 그 안에 선명하게 빛나는 사람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모습의 일러스트


반면,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때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좋아함’보다 ‘싫어함’의 감정일 때가 많습니다.


심리학에는 ‘분화(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저 똑같은 옷 말고 내 스타일대로 입을래”라고 마음먹는 순간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를 통해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참을 수 없는지를 아는 것은 불필요한 것들을 쳐내는 행위와 같습니다. 마치 조각가가 거대한 돌덩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어 작품의 본질적인 형태를 드러내는 것처럼, ‘싫어함’이라는 감정은 우리 정체성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핵심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린다”는 아주 단순한 취향을 전 세계적인 정리 철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방식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기술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물건에 둘러싸여 감정을 소모하는 것을 싫어하고, 오직 설렘을 주는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그녀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무엇이 나에게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빌리 아일리시의 패션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타이트하고 노출이 있는 의상 대신, 몸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헐렁한 옷을 고집합니다. 이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음악적 정체성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녀가 싫어하는 것(타인의 시선,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오히려 그녀를 Z세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Part 3: 당신의 지도를 그리는 시간, 취향 기록법

Image_fx - 2025-09-13T103836.465.jpg 펼쳐진 노트 위에 만년필이 자신만의 고유한 지도를 그려나가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본, 취향 기록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이제 이론을 넘어, 직접 당신의 취향 지도를 그려볼 시간입니다. “읽고 끝나는 글”이 아닌 “저장하고 다시 꺼내보는 글”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안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기록’입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감각들을 붙잡아 눈에 보이는 언어로 정리해 보세요.



7일 취향 기록 챌린지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아래 질문에 답하며 당신의 취향을 기록해 보세요.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솔직하고 간단하게,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일차: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음식’ 3가지와 그 이유 (예: 할머니의 김치찌개 -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느껴져서)


2일차: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장소’ 3가지와 그 이유 (예: 사람 너무 많은 쇼핑몰 - 기가 빨리고, 내 속도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3일차: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성격/태도’ 3가지 (예: 유머 감각 - 심각한 상황도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여유가 좋아서)


4일차: 참을 수 없이 거슬리는 타인의 ‘말투/행동’ 3가지 (예: 말을 끊는 것 -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5일차: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빠져드는 ‘콘텐츠(음악, 영화, 책 등)’ 3가지 (예: 자연 다큐멘터리 - 경이로운 생명력을 보며 위로를 받아서)


6일차: 내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소비’ 3가지 (예: 좋은 원두 사기 - 하루의 시작을 내가 좋아하는 향으로 채울 수 있어서)


7일차: 지금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의 취향 지도’ 그리기 일주일간의 기록을 쭉 훑어보세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나 감정이 있나요? 그것들을 연결해 당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찾아보세요. (예: #안정감 #솔직함 #존중 #나만의 속도 #성장 #유머)


이 키워드들이야말로 MBTI 네 글자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당신’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




결론: 당신은 이미, 당신의 취향 속에 있다


우리는 종종 ‘진짜 나’는 어딘가 멀리 있거나, 특별한 계기를 통해 찾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당신이 발견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취향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고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이 무심코 고른 커피, 반복해서 듣는 음악,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 속에 이미 당신이라는 고유한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취향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미래의 당신을 안내할 나침반입니다.


당신의 취향은 사소한 기호가 아니라, 앞으로의 길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그 불빛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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