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일 퇴사를 상상할까?

번아웃 너머, 당신의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

by 하레온

나도 모르게 시작된 마음의 이동


언제부터였을까요. 제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 다른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야근이 잦아서, 혹은 이번 프로젝트가 유독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작은 낯섦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어제와 같은 사무실, 같은 동료, 같은 일인데 모든 것이 희미한 막 뒤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글은 거창한 퇴사 성공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결심이 내려지기까지,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망설임과 미세한 신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을 함께 들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부: 그 신호, 무시해도 괜찮을까? (징후의 발견)

Image_fx - 2025-09-14T092218.934.jpg 사무실 벽시계 앞에서 민들레 홀씨 하나가 바람에 날려 떠나가며, 일상 속 미세한 마음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미지


1장. 회의실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의욕 상실의 징후)


A씨는 회의실에서 자신이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 몸은 자리에 앉아있는데, 영혼은 회의실 밖을 떠도는 기분이었죠. 모두가 뜨겁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동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어젯밤 보았던 드라마의 다음 내용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누구보다 먼저 의견을 내고 동료들을 설득하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반박해도 굳이 설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네, 그것도 좋은 의견이네요'라며 쉽게 물러섰죠.


이것이 바로 의욕 상실의 가장 흔한 징후입니다. 열정이 식었다기보다는, 그 열정을 쏟아부을 이유를 잃어버린 상태에 가깝습니다. 일의 결과물보다 과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성과를 내도 예전 같은 기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당신도 회의실 한가운데서, 혹은 모니터 앞에서 스스로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진 적 없으신가요? 그건 당신이 나태해졌다는 증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더 이상 지금의 일에 '연결'되고 있지 않다는, 아주 중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2장. 이직 앱은 왜 자꾸 켰다 끄는 걸까? (행동 패턴의 징후)


B씨의 스마트폰에는 3개의 이직 앱이 깔려있었습니다. 딱히 지금 당장 이직할 생각은 없었지만, 마치 인터넷 쇼핑을 하듯 습관적으로 앱을 켰습니다. 점심시간에, 퇴근길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죠. "내 연차에 이 정도 대우면 괜찮은 건가?", "이런 회사도 있구나." 남의 가게를 구경하듯 이런저런 공고를 기웃거렸습니다.


이 행동, 낯설지 않으시죠? 이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욕구'와 '현재 상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결합된 신호입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나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자꾸만 시장에 자신을 내놓고 가격표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당장 떠날 용기는 없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손에 쥔 채 위안을 얻는 것이죠. 그저 호기심이라고 치부하기엔, 당신의 손가락은 너무 자주 그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를 향한 아주 작은 노크일 수 있습니다.



3장. "의미 있는 일"이라는 낯선 질문 (가치관 변화의 징후)


C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높은 연봉, 안정적인 직장, 인정받는 성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분기 실적 보고를 마치고 박수를 받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의미' 있는 일일까?"


경력이 쌓이고 삶의 경험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What)'에서 '왜 이 일을 하는가(Why)'로 질문의 무게중심을 옮겨가곤 합니다. 연봉이나 직급 같은 외적인 보상만으로는 더 이상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시기가 오는 것이죠. '의미', '보람', '기여' 같은 낯선 단어들이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징후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더 이상 숫자로 증명되는 성공이 아닌, 당신의 영혼을 울리는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특별부록. 내 안의 사직서 확인하기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지난 3개월,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아래 질문들을 천천히 읽으며 마음속으로 체크해보세요.


출근길 발걸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잦다.


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 침묵을 지키는 편이다.


업무 관련 소식보다 업계의 이직이나 창업 소식에 더 눈길이 간다.


퇴근 후나 주말에 회사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딱히 이직 계획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채용 공고를 확인한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동료들의 성과나 승진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하기보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 기대보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월급날에도 예전만큼의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의미 있는 삶이란 뭘까?"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7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당신 안의 사직서는 꽤 큰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시간입니다.




2부: 사직서가 말을 걸 때 알아야 할 것들 (징후의 해석)

Image_fx - 2025-09-14T092254.341.jpg 한 손에 들린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이 아닌, 빛나는 작은 묘목을 가리키며 새로운 성장의 방향을 암시하는 이미지


4장. 그것은 번아웃이 아니라 터닝포인트의 신호 (징후의 재해석)


1부에서 발견한 신호들을 보며 많은 분들이 '아, 내가 번아웃이었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는 '터닝포인트'의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요.


번아웃이 '방전'이라면, 터닝포인트의 신호는 '대기' 상태에 가깝습니다. 자동차가 좌회전을 하기 위해 잠시 멈춰 방향 지시등을 켜고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도 다른 길로 접어들기 위해 잠시 현재의 속도를 줄이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의욕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제는 다른 곳에 의욕을 쓰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신호들을 '나는 지쳤다'는 좌절의 언어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는 가능성의 언어로 읽어낼 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문이 열립니다.



5장. 당신의 커리어는 '이직'보다 넓습니다 (커리어 전환 유형 분석)


마음의 신호를 '터닝포인트'로 재해석했다면, 그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디로 가야 하는가'로 이어집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직'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커리어 지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다채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업계 안에서 잠시 역할을 바꾸며 숨을 돌립니다. 마케터가 데이터 분석가의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무기를 얻는 것처럼요. 이를 수평적 이동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현재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더해 시야를 넓히는, 안정적이면서도 현명한 방법이죠.


또 어떤 사람은 한 우물을 깊게 파며 자신만의 성을 단단하게 쌓아 올립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팀원에서 팀장으로,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성장하는 수직적 이동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성장의 경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조금 더 느린 길을 돌아 완전히 새로운 지도를 그립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작은 공방을 차리거나, 엔지니어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기술 전문 작가가 되는 것처럼, 자신만의 이름으로 삶을 다시 디자인하기도 합니다. 바로 방향 전환입니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일을 완벽하게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죠.


'퇴사'는 이 모든 가능성으로 향하는 하나의 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가 어떤 지도를 가리키고 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세요.



6장. 성공 사례보다 중요한 '망설임의 기술' (준비 과정의 중요성)


"그래서, 퇴사하라는 건가요?" 이 글은 결코 성급한 퇴사를 부추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당신이 충분히 '망설일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성공 사례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와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빛나는 결과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심의 속도가 아니라, 준비의 깊이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B씨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이직 앱을 들여다보던 자신의 작은 습관을 신호로 삼아, 조용히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C씨는 '의미'라는 낯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말마다 심리학 강의를 들었죠. 이처럼 '망설이는 시간'은 결코 멈춰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더 선명하게 듣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나의 무기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작은 실험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를 따라 하는 것보다, 당신만의 '망설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설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당신의 다음 발걸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맺음말: 지금 그만두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당신이 성급한 퇴사를 결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당장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지금 당신 안에서 들리는 그 작은 목소리만큼은, 부디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드는 회의감, 습관처럼 누르게 되는 이직 앱,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낯선 질문들. 그 모든 것이 당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건 당신이 멈춰 선 것이 아니라, 마침내 다른 방향을 향해 첫걸음을 떼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내일은 아주 조금,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시작할 겁니다. 그 작은 변화의 시작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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