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변화

by 레몬향품은

산 꼭대기에 있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아들을 맞이하러 발걸음을 재촉하며,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산을 거쳐서 매일 출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이라 생각하며 즐기려 했다. 그렇게 1년쯤 다녔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시간이 되어서 마무리를 하고, 긴 비탈길을 거쳐 큰길에 내려오다가 길 모퉁이에서 주저앉았다. 갑자기 심하게 나타난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청년 시절부터 쉬지 못하면, 종종 졸도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크게 걱정도 의심도 하지 않았다.

‘왜 이리 덥지? 목도 마르네, 물이라도 가지고 올 걸. 왜 이렇게 미련하냐.’

‘그늘에 조금 앉아 있다 가야겠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별스럽지 않게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번의 어지러움 증상들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종종 산책길을 걷곤 했는데, 하루는 땅 밑에서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지럼증이라고 하기엔 너무 상태가 심한데... 그저 피곤한가 보다 생각할 뿐, 병원을 가 봐야겠단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초음파 검사 하러 오셨어요?”

“네.”

“유방 검사 하시는 것 맞죠?”

“네.”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자주 피곤하고, 어지럼증 반복되는 횟수가 늘어서, 기본 검사도 해보고 여러 검사를 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본 검사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실에 들어갔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OO 씨 아니에요?”

“아! 여기에서 근무하세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검사받아 보려고요.”

“가슴 검사하면서 갑상선도 해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 OO 씨, 담당 진료과에서 정밀 검사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검사 당당하는 의사였다. 유방 검사를 하는 김에 갑상선까지 검사를 해 주었다. 확인 차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담당 외과 선생님을 만나 초음파 결과를 확인하고, 세포 검사를 진행하기고 했다.


검사를 위해 큰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아픈 것은 그나마 참을만했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검사 결과가 무려 일주일 후에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마음은 심란하고, 몸은 지치고, 의욕도 없고, 무기력했다. 그래서일까. 정작 결과를 듣고 나서는 무척 담담했다. 그간의 정신적 고통이 컸던 탓이었을까. 아마 결과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갑상선 암 3기입니다. 급한 건 아니지만, 수술을 하셔야 됩니다.”

“그래요. 그럼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해 주세요.”

어쩌면 나는 세포 검사를 할 때부터 암일 거란 걸 짐작한 것 같다.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몸이 계속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들을 느끼면서, 큰 병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히려 결과를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술 잘하고 회복 잘하면 되는 거지 뭐.’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수술일이 다가 올 수록 피곤함은 극에 달했고, 불안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36세.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술일만 기다리고 있기엔, 아직 젊은 나이였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억울함에 슬프기만 했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는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남자들이 하는 힘든 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힌 채 글을 썼다.


‘엄마! 혹시라도 내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서를 쓴 것이다. '아직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몇 개월 전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우울감이 회복도 안 된 어머니를 어떻게 떠나나' 마음의 짐이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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